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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있는 초간정 원림(草澗亭 園林, 명승)이다. 조선 중기 문신 초간 권문해가 처음 세운 정자와 주변 숲을 말한다. 용문산(770m)에서 발원하여 용문면 일대를 흐르는 금곡천이 암반 지역을 굽이쳐 흐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큰 암반 위에 세워진 정자와 정 아래에 형성된 좁은 계곡이 주변의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치를 만들고 있다. 용문사로 가는 골짜기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낙향하여 정자를 세우고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지냈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초간정 주변 숲>

<상류방향 개천을 건너는 다리>

<다리를 건너면 보이는 초간정과 주변 숲>

<초간정>

<암반지형을 뚫고 흐른 하천>

<초간정 아래 하천과 주변 숲>

<초간정 입구>

<초간정 건너편 숲>

<하류 방향>

예천 초간정 원림, 명승
예천 초간정 원림은 용문면 원류마을 앞 계곡 가의 암반 위에 세워진 초간정과 주변의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전통원림이다. 경치가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유산으로 관광지 및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다.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초간 권문해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선조 15년 처음 세운 후 여러 차례 화재로 불탔다가 다시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정자로, 영조 16년에 권문해의 현손인 권봉의가 원래 터에서 약간 서쪽으로 옮겨 지은 것을 고종 7년 후손들이 새로 고쳐지었다. 초간정이 세워진 바위를 위돌아 흐르는 계곡은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시원한 운치를 자아낸다. 이곳의 풍경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아름답게 여겼던 옛 선조들의 무위자연사상을 보여준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초간정은 권문해가 처음 세운 이래 여러번의 화재를 거치면서 다시 지어졌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 영조 때(1739년) 후손 군봉의가 원래의 위치에서 약간 서쪽으로 옮겨 지은 것이다.  암반 위에 돌로 쌓은 축대 위에 건물을 올렸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왼쪽 2칸은 온돌방, 오른쪽은 1칸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다. 대청마루에 앉아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은 구조이다. 옆에는 손님들을 위한 작은 살림집이 있다.

<예천 초간정>

<초간정 건물과 마당>

 <초간정>

<정면에서 본 모습>

<아래에서 본 모습>

<초간정에 딸린 살림집>

예천 초간정
초간정(草澗亭)은 조선 선조 때 문신 초간 권문해(1534~1591)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심신의 수양을 위해 세운 정자이다. 권문해는 퇴계 이황의 제자로서 문과에 급제하여 대구부사, 좌부승지 등을 지냈고,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인물이다. 선조 15년(1582)에 처음 세워진 초간정은 1592년에 화재로 불탔으며 권문해의 아들 권별이 인조 4년(1626) 다시 지었으나, 인조 14년(1636)에 다시 불탔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영조 16년(1740)에 권문해의 현손인 권봉의가 원래의 터에서 약간 서쪽으로 옮겨 지은 것을 고종 7년(1870)에 후손들이 새로 고쳐지었다. ‘초간정사’라는 현판은 소고 박승임의 글로, 정자에 여러차례 화재가 나면서 잃어버렸다가 훗날 다시 발견하였는데, 정자 앞 늪에서 영롱한 빛이 보여 파보았더니 현판이 묻혀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정자는 암반 위에 돌로 쌓아 만든 축대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졌다. 정면의 왼쪽 2칸은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나머지는 대청마루로 사면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 양식이다.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어우러진 초간정은 현재 관광지, 영화 및 드라마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