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철갑옷은 대체로 긴 철판을 이어 만든 판갑옷이며 이외에 삼각형의 철판을 이어 만든 판갑이나 작은 철판 조각을 비늘갑옷 등이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된 갑옷은 큰 철판 20~30매를 이어서 만든 판갑옷이다. 4세기 말 광개토대왕의 고구려군이 신라를 도와 가야을 정벌하면서 금관가야가 쇠퇴하게 되었으며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비늘갑옷 등 다양한 형태의 갑옷과 말에도 갑옷을 입힌 중장기병이 도입되었다. 4~5세기에 조성된 가야 고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갑옷들이 출토되고 있어 당시 무사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가야의 갑옷과 투구>
<가야의 갑옷과 투구>
힘, 가야는 힘이 없었나요? – 철의 무사
42년부터 562년까지, 520년간 가야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가야의 힘은 문화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철에 있었습니다. 당시 철을 최고의 첨단 소재로서 철을 다루는 기술은 곧 나라의 국력과도 직결되었습니다. 장군들은 철로 만든 갑옷과 칼을 사용했고, 말도 철로 만든 갑옷과 투구를 썼습니다. 4세기 가야는 새와 고사리무늬 등을 장식한 종장판갑옷이라는 독창적인 갑옷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시대의 갑옷 대부분은 가야에서 만든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판갑옷은 큰 철판 20~30매를 이어서 만든 것으로 초기부터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판갑옷은 오른쪽 앞 몸통, 왼쪽 앞 몸통과 뒷몸통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뒷몸통과 앞몸통은 분리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가죽, 경첩 등으로 연결하여 갑옷을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도록 하였다.
<갑옷, 어깨가리개, 투구, 5세기, 고령 지산동 32호묘, 국립대구박물관>
<삼각판 갑옷과 차양주, 5세기, 김해 두곡 43호묘, 부경대학교 박물관>
<갑옷과 투구, 합천 옥전 28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갑옷, 4세기, 김해 대성동 2호묘, 국립김해박물관>
<갑옷, 부산 복천동 86호묘, 복천박물관>
<갑옷, 4세기, 김해 퇴래리고분, 국립김해박물관>
가락국의 판갑옷은 삼국시대 갑옷 중에서 가장 화려합니다. 판갑 표면에 특정 문양을 덧대는 것은 물론이고, 목을 둘러싸는 테두리에 동물의 털을 붙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투구와 삼각판 갑옷, 5세기, 함안 도항리 13호묘, 36호묘, 국립김해박물관>
<갑옷, 목가리개, 투구, 4세기, 보물, 부산 복천동 38호묘, 복천박물관>
가락국 초기 철갑옷으로, 갑옷을 구성한 개별 철판의 크기가 크고 이를 가죽끈으로 연결한 것이 특징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갑옷과 투구, 4세기, 김해 양동리 78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여러장의 긴 철판을 연결하고, 고사리 문양을 붙여 만든 갑옷과 투구입니다. 갑옷에 고사리 문양이나 새 문양을 붙이는 것은 가락국 갑옷의 특징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비늘 갑옷은 작은 비늘 모양의 철판 조각을 연결하여 만든 것이다. 판갑옷에 비해 움직임이 용이하여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많이 사용했다.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져 사무라이 갑옷으로 애용되었다. 비늘갑옷은 구조가 복잡하고 출토상태가 좋지 않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가야의 다양한 지역에서 비늘갑옷이 출토되었다.
<비늘갑옷, 목가리개, 투구, 남원 월산리 M5묘 M1-A호묘, 국립전주박물관>
운봉고원에 자리잡은 기문의 최고 지배자가 소유한 독특한 형태의 투구와 비늘갑옷입니다. 투구는 정수리 부분을 막은 복발이 마치 관모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이마 부분에는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챙이 달려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비늘갑옷, 5세기, 김해 열래리 II지구 40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비늘갑옷은 4세기 후엽부터 확산되기 시작하여 5세기 이후에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비늘갑옷이 유행하면서 종래의 종장판 갑옷은 점차 사라지는 대신 왜계 판갑옷의 수량이 늘어났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종장판 갑옷은 긴 철판을 세로로 두고 연결한 것이다. 판갑옷을 개량한 것으로 보이며 광개토대왕 정벌 이후 비늘갑옷으로 바뀌는 전단계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남원 월산리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전환기 갑옷과 투구의 보습을 보여주고 있다.
<종장판 투구, 남원 월산리 M1-A호묘, 국립전주박물관>
<목가리개, 5세기, 남원 월산리 M5호묘, 국립전주박물관>
말 탄 무사모양 뿔잔(국보)은 갑옷으로 튼튼하게 무장을 한 가야 기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높이 23.2 cm 크기의 인물형 도기로 나팔모양의 받침 위에 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말을 탄 무사의 형상을 올려놓고 있다. 표현방법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가야무사의 복식과 무기 등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무사는 머리에 투구를 쓰고 오른손에는 창을,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뒤쪽에는 중앙아시아 유목민들과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각배가 있다.
<말 탄 무사모양 뿔잔, 5~6세기, 국보, 전 김해 덕산리, 국립경주박물관>
<정면에서 본 모습>
무사는 갑옷을 입었고, 손에는 칼이나 창 같은 무기류와 방패를 들고 있습니다. 갑옷은 투구와 목가리개 등이 잘 표현되어 있고, 말에도 무사와 마찬가지로 몸 둘레에 갑옷을 걸쳤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가야 무사를 재현한 모습>
철갑옷과 중장기병
문헌 기록이 많지 않은 가야는 다양한 철제 무기와 갑옷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함안 마갑총과 고령 지산동 유적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철제 말갑옷이 실물로 출토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가야의 여러 무덤에서는 판갑옷과 비늘갑옷이 다양하게 확인되어 당시 가야무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철갑으로 두른 말을 다루기 위한 말갖춤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중국 북방 선비족의 영향을 받으며 가야의 말갖춤은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국보 말탄무사모양 뿔잔은 가야 중장기병의 실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말갑옷, 5세기, 함안 마갑총, 국립김해박물관>
<반대편에서 본 모습>
가야가 중장기병을 운용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중장기병은 북방의 고구려와 삼연(三燕) 등 정주화한 유목국가가 널리 활용하였습니다. 가야의 말갑옷은 제철기술과 국력이 주변 나라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말머리 가리개, 4~5세기. 1. 김해 대성동 1호묘, 국립김해박물관>
<2. 함안 말이산 6호묘, 국립김해박물관>
<재갈, 4~5세기, 3. 김해 대성동 2호묘, 국립김해박물관, 4. 함안 도항리 36호묘, 국립김해박물관>
<5. 고령 지산동 73호묘, 대가야박물관>
<6. 남원 월산리 M5호묘, 국립전주박물관>
<7. 말안장 꾸미개, 6세기, 고령 지산동 45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발걸이, 5~6세기, 8. 함안 도항리 54호묘, 국립김해박물관, 9. 고성 송학동 1A-1호묘, 10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10. 고성 송학동 1A-1호묘, 10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11. 고령 지산동 75호묘, 대가야박물관, 12. 합천 옥전 M3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말띠 드리개, 5~6세기, 13. 함안 도항리 4호묘, 8호묘, 54호묘, 국립김해박물관>
<13. 말띠 드리개>
<14. 고령 지산동 45호묘, 73호묘, 75호묘, 국립경주박물관, 대가야박물관>
<15. 말띠꾸미개, 6세기, 함안 도항리 4호, 22호묘, 국립김해박물관>
<15. 말띠꾸미개>
<말방울, 5세기, 16. 함안 도항리 8호묘, 국립김해박물관, 18. 고성 송학동 1A-1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17.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19. 기꽂이, 5세기,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가야의 중장기병
중장기병은 말과 말탄 사람 모두 철갑옷으로 중무장한 전사를 말합니다. 중장기병의 역할은 주로 적진을 향하여 돌진하여 보병의 대열을 흩트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중장기병은 발걸이에 발을 올리고 안장에 올라타 고삐를 쥐고 달렸습니다. 특히 발걸이는 안정된 자세로 활을 쏘거나 장이나 칼을 휘두를 때, 튼튼한 지지대와 같았습니다. 가야에서 중장기병의 존재를 보여주는 자료는 함안 마갑총, 고령 지산동 75호, 함천 옥전 M3호 무덤 등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왕이나 왕족과 같은 높은 신분에 해당하므로, 중장기병의 말갖춤이 소유자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실제로 전장을 누볐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어쨌든 가야 무덤에서 나온 말갑옷과 비늘갑옷은 국력에 직결되었던 제철기술과 군사력이 다른 삼국에 뒤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