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군 동해면에 있는 내산리 고분군(사적)이다. 원래 100여 기의 무덤이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60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봉분의 크기가 10m 정도인 중간규모의 무덤이 40여기 이며, 15m 이상 대형 무덤도 20기가 있다. 소가야는 남해안 상교통로에 자리잡고 교역으로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해지역 금관가야와는 해상무역의 주도권을 다투는 대립적인 관계를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후기에는 해상무역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성 내산리 고분군(사적)>
내산리고분군은 당항포가 있는 내해 바다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위치하고 있다. 소가야 중심지인 고성과 남해 먼바다를 연결하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다. 언덕에는 60여기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다.
<내산리 고분군 무덤 분포(위성사진)>
<위쪽 1호무덤 부근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무덤은 위쪽부터 1호 무덤이 있으며 동쪽 마을 부근에 60호 무덤이 있다. 앞쪽 소나무 주위에 있는 29호 무덤부터 시작하여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
<구릉 중간에 보이는 무덤(5~9호 무덤)>
<유적지 입구에 있는 소나무>
<27호 무덤>
<29호 무덤>
<26호 무덤>
<28호 무덤>
<유적지 중앙에 위치한 무덤들(5 ~17호 무덤)>
<위쪽에 있는 무덤(1~5호 무덤)>
<2호 무덤>
<1호무덤 부근에서 보이는 아래쪽 무덤들>
<정비되기 전 무덤(14~15호 무덤)>
<안쪽에 있는 무덤(18~19호 무덤)>
<앞쪽에 위치한 무덤(30~32호)>
<동쪽 40~60호 무덤이 있는 지역>
내산리고분군을 지나 고개를 넘아가면 당항포 부근 바다를 볼 수 있다. 이 바다는 다리가 놓여진 좁은 입구를 제외하면 사방이 육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태풍이나 폭풍우를 피해서 배를 정박하기에 좋다. 소가야가 번성했들 때는 배들이 이 곳에 쉬었다가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으로 보인다.
<당항포 앞 바다>
<목걸이,경남 고성 내산리, 1999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쇠투겁창, 4~6세기, 1. 고성 내산리 34호묘, 국립진주박물관, 2. 함안 도항리 36호묘, 국립김해박물관, 4. 고령 지산동 75호묘, 대가야박물관>
<화살촉, 4~6세기, 7. 고성 내산리 21-1호묘, 34호묘, 국립진주박물관>
<말갖춤, 5~6세기, 2. 말띠꾸미개, 고성 내산리고분, 고성 송학동 고분, 국립김해박물관, 동아대학교박물관, 3. 발걸이, 고성 내산리고분, 고성 송학동고분, 국립김해박물관, 동아대학교 박물관>
<넓은입 구멍단지, 7. 고성 내산리고분, 고성 송학동고분, 국립진주박물관, 동아대학교 박물관>
<신라토기, 2. 고성 내산리 8호묘, 국립전주박물관>
<굽다리접시, 1.경남 고성 내산리, 1999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구멍단지, 2.경남 고성 내산리, 1999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굽다리항아리, 3.경남 고성 내산리, 1999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세기,>
<그릇받침, 5.경남 고성 내산리, 1999년 발굴>
고성 내산리 고분군, 사적, 경남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
고성군 동해면의 북쪽 끝에 위치하여 마산방면의 진해만에 근접해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이다.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28기 정도이지만, 61기 가량의 봉토분이 밀집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원래는 100여기의 고분이 있었다 하나, 많은 도굴과 파괴의 피해를 입었다. 1997년부터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가 연차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발굴조사를 통해 고분군의 특징이 알려지게 되었다. 대형봉토분인 제8호분과 제34호분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확인되었다.첫째, 고분의 봉토는 인공적으로 다져 쌓아 올려져, 지역적 고분축조의 특색을 나타낸다. 둘째, 중앙의 주곽(제8호분)과 돌방(제34호분)을 중심으로 봉토 내에 여러기의 돌덧널이 함께 만들어져 있어, 고성 송학동고분군과 함께 이 지역 가야고분의 특색을 보여준다. 셋째, 고리장식대부장경호와 굽다리접시 등의 토기, 큰칼과 철호살촉 등의 철기, 귀걸이와 팔찌 등의 금은장신구, 발걸이와 운주 등의 마구들이 출토되었다. 넷째, 제34호분에서 출토된 은팔찌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하며 굴식돌방무덤의 모양도 백제와 동일한 특색을 보여준다. 제8호와 제34호분은 출토된 토기와 마구로 보아 6세기 전반에서 중엽 경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곳에 있었던 가야세력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유적일 것이다. (안내문, 고성군청, 2011년)
<출처>
- 안내문, 고성군청, 2011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3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