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에서 지배층이 신분을 나타내거나 종묘와 궁궐 등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예기(禮器)라 한다. 청동으로 만든 예기로는 곡식 등을 담는 그릇, 술잔, 솥 등이 있으며 신분에 따라 사용이 제한되었다. 중국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는 종묘와 왕실 의식의 유물인 예기는 중국은 물론 한반도에서도 고대국가에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청동예기는 기원전 20세기 하나라 때부터 만들어지 시작한다. 이전에 사용했던 토기를 본 떠서 만들었는데 최초의 청동예기는 술을 데우는 세발 술잔인 가(斝, Jia)와 고(觚, Gu), 작(爵, Jue)와 고기를 삶는 그릇인 정(鼎, Ding), 력(鬲 Li) 등이다. 초기의 청동 예기는 형태와 문양이 단순했는데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릇의 종류와 무늬가 다양해진다.
정(鼎, Ding)은 청동예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원형의 용기에 세발이 붙은 형태로 음식을 조리할 때 사용하는 식기(食器)에 해당한다. 가장 많이 사용된 예기로 상(商)대부터 한(漢)대까지 사용되었으며 후대에는 향로로 많이 사용되었다. 궤(簋)와 함께 왕이나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예기로 여겨졌다.
<1.고기 삶는 세발솥(수면문정 獸面文鼎 Ding), Tripod Cauldron, 서주 전기 기원전 11~10 세기 전반>
신비한 무늬로 가득 차 있는 이 청동기는 고기를 삶을 때 사용한 세발솥(鼎)입니다. 하나라 때 등장한 뒤, 제사나 의례에 빠지지 않고 사용되던 가장 중요한 청동기입니다. 몸통에는 온통 동물얼굴무늬가 가득한데, 도철(饕餮)무늬라고도 합니다. 도철은 무엇이든 먹어치워 결국 자신의 몸도 먹어버려 머리만 남았다는 전설 속에 나오는 괴수입니다. 도철을 장식한 청동기는 신비한 힘으로 악령을 퇴치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때문에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하게 되어 왕이 사용하는 청동기에 장식되었습니다. 동물얼굴무늬는 상 중기부터 서주 전기까지 유행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2. 술 데우는 세발 그릇(연주문가連珠文斝 Jia), Wine Vessel, 하 후기, 기원전 18 ~ 16세기>
의례 때 사용한 울창주(울금향과 검은 기장으로 빚어 만든 술)를 따뜻하게 데워 담았던 그릇입니다. 아가리에 있는 두 개의 짧은 기둥은 술에 남은 찌꺼기를 거르는 망을 걸 때 사용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제작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다리의 빈 공간에 술이 고였습니다. 표면에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고 내부에도 흰색 찌꺼기가 붙어 있어 당시 실제로 술을 데우는 데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슬무늬 장식은 하나라 청동기의 특징이며 상나라 때 점차 없어집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작(爵)은 중국 청동예기 중 하나로 술을 따르는 용도로는 사용되는 주기(酒器)이다. 손잡이와 발이 셋이 있는데 크기가 작고 참새를 닮았다고 하여 작(爵)이라 한다. 서주 중기까지 사용되었다.
<3. 세발 술잔(수면문작 獸面文爵 Jue), 상 전기 기원전 16~15세기 중엽>
상나라 때는 세발 술잔의 아가리에 짧은 기둥 두 개를 세우는데 이 술잔은 모두 떨어져 버렸습니다. 두 개의 다리는 몸통 아래 양쪽으로 배치하고 한 개의 다리는 손잡이 아래에 배치하여 수평을 잡았습니다. 몸통 중간의 동물얼굴무늬 장식은 전형적인 상 전기의 양식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고(觚)는 작(爵)과 함께 술잔으로 사용되었던 나팔모양의 청동기이다. 오래된 예기(禮器) 중 하나로 어리터우(二里頭) 문화에서 도제(陶製)가 사용되었고, 상대에 청동제의 고가 유행하였다. 상부에는 파초문이, 중간과 하부에는 도철무늬로 장식되었으며 바닥 안쪽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4. 나팔 모양 술잔(수면문고 獸面文觚 Gu), Wine Beaker, 상 중기 기원전 15세기 중엽 ~ 13세기>
술을 마시거나 따르는 용도로 사용한 나팔 모양 술잔입니다. 원래 이름은 ‘동同’이고, 송나라 이후부터 ‘고觚’라고 불렀습니다. 이 술잔은 초기의 것으로 크기가 작고 굽다리에 십자형 구멍 3개가 있습니다. 굵은 선을 이용한 몸통의 동물얼굴무늬와 굽다리의 용무늬 장식 역시 이 시기의 특징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동물얼굴무늬(몸통) 용무늬(굽다리)>
가(斝)는 술을 데우는 비교적 큰 그릇으로 입 가장자리에 두 개의 삿갓 모양의 작은 기둥이 솟아 있고 측면에 하나의 손잡이가 있으며 다리가 셋이다.
<5. 술 데우는 세발 그릇(수면문가 獸面文斝 Jia), 상 중기 기원전 15세기 중엽 ~ 기원전 13세기>
술을 데울 때 사용한 그릇입니다. 목과 몸통에 동물얼굴무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돌출된 눈을 제외하고 선의 굵기로 무늬의 차이를 표현하였습니다. 목에는 가는 선을, 몸통에는 굵은 선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표현 방법은 상 중기에 유행한 장식기법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6.고기 삶는 세발솥(수면문정 獸面文鼎 Ding), 상 전기 기원전 16 ~ 15세기 중엽>
배다 부른 몸통에 바닥이 둥글고 그 아래로 납작하며 끝이 뾰족한 용 모양 다리 세 개가 붙어 있습니다. 이런 다리를 가진 세발솥은 신석기시대 토기를 본 떠 만들던 세발솥이 청동예기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몸통에는 동물얼굴무늬를 한 줄로 두르고 그 아래위에 각각 구슬무늬를 장식하였습니다. 상 전기에 유행했던 무늬입니다. 솥의 바닥과 다리 안쪽에는 그을음이 있어 실제로 고기를 삶는데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다리 하나에는 용무늬가 없는데, 떨어져 나간 것을 뒤에 새로 붙이면서 용무늬가 생략된 것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7. 고기 삶는 세발솥, (수면문정 獸面文鼎 Ding), 상 중기 기원전 15세기 중엽 ~ 13세기>
이 세발솥은 상 중기에 만들었지만 전기의 형태를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두꺼운 두 귀와 몸체에 비해 비교적 길고 공간이 비어 있는 송곳 모양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귀와 다리를 일직선상에 배치하여 시각적으로 불안해 보입니다. 다리는 지면에 닿는 부분이 둥글게 처리되어 있어, 뾰족한 모양의 다리가 원기둥 모양으로 변하는 과도기 형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몸통에 동물얼굴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그 아래위에 모두 구슬무늬가 있습니다. 허난성 은허 유적 무덤에서도 비슷한 모양의 세발솥이 발견되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역(鬲)은 음식을 조리하는 식기(食器)에 해당한다. 고기를 삶는데 주로 쓰였으며 정(鼎)에 비해 크기가 작은 편이다. 서주때 조리기구로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8. 세발솥(수면문력 獸面文鬲 Li), Tripod Cauldron), 상 중기 기원전 15세기 중엽 ~ 13세기>
음식을 끓일 때 사용하던 세발솥으로 신석기새대에는 토기로 제작하던 그릇입니다. 상 중기 청동기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무늬의 면적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몸통에 한 줄의 띠로 무늬를 둘렀던 전기와 달리 중기부터는 몸통 전체에 장식하였습니다. 열을 가하지 않아 무늬와 색이 그대로 잘 남아 있습니다. 상 중기에는 이미 청동기 제작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잘 보여줍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1. 청동기 문화의 시작
중국의 청동그릇은 기원전 2천년 무렵 하나라 때부터 제작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토기를 본떠 청동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최초의 청동 그릇은 세발 술잔과 고기 삶는 세발솥입니다. 중국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청동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첫번째 나라인 하나라 때부터 입니다. 전설처럼 알려지던 하나라는 1959년 허난(河南)성 옌스(偃师)현 얼리터우(二里頭)에서 궁전유적이 발견되면서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하나라는 전설속의 우왕이 기원전 21세기에 세운 뒤 17대 걸왕에 이르기까지 500년 가까이 존속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라 사람들은 이 지역에 오랜 기간 계속되고 있었던 신석기시대 룽산(龍山)문화의 구리 가공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청동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신석기시대 토기의 모양을 본뜬 단순한 무늬의 세발 술잔이나 고기 삶는 세발솥이었습니다. 뒤이은 상나라 때에는 그릇의 종류와 무늬가 다양해집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우는 그제야 천자자리에 올라 …. 나라 이름은 하후, 성은 사씨라 하였다. <<사기>><하본기>
나라의 큰일은 제사와 전쟁에 있다. <춘추좌전>
<1. 굽다리 술잔 모양 토기 만들기>
<2. 바깥 거푸집 만들기>
<3. 바깥 거푸집에 무늬 추가, 4. 안쪽 거푸집 만들기>
<5. 거푸집 합치고 굽기>
<6. 쇳물 부어 완성>
<9. 청동기 주조 모형>
청동기의 제작
상주시대에는 청동예기를 만들 때 먼저 흙으로 만들고자하는 형태를 만들고 여기에 진흙을 발라 바깥 거푸집을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 처음 만든 토기의 포면을 깎아낸 뒤 바깥 거푸집과 합쳐 그 사이에 쇳물을 붓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쇳물을 넣어 식힌 뒤, 바깥 거푸집을 부수고 청동기를 꺼내야 했기에 상주시대에 만든 청동기 중 똑깥은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 딱 하나만 존재합니다. 한편, 기원전 10세기 무렵 상나라의 분주법(分鑄法)은 복잡한 형태의 청동기 제작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분주법은 청동기의 손잡이나 다리 등 튀어 나온 부분을 먼저 주조한 뒤 이를 거푸집에 넣고 쇳물을 주입하여 몸통과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이로써 다양한 청동기의 제작이 가능해져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1921년 가을 <중국고대청동기, 신에서 인간으로>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중국에서도 청동예기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상하이박물관과 협력하여 고대 중국을 대표하는 형태의 청동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소개할 수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였다. 여러 박물관에서 단편적으로 볼 수 있었던 중국 고대 청동기들의 역사와 용도, 의미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였다.
<중국고대청동기, 신에서 인간으로>
전시를 열며
국립중앙박물관은 중국 청동기 대표 박물관인 상하이박물관과 협력하여 중국 고대 청동기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1928년 은허(殷墟) 유적에서 삼천 삼백여 년 전의 청동기가 대규모로 발굴되었습니다. 안개 속에 싸여 있던 상나라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났습니다. 황하문명을 세계에 알린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어진 발굴조사로 중국 청동기는 기원전 21세기경 하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되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전쟁과 같은 생사를 가르는 중대사를 결정할 때 왕은 직접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 의식에 사용하는 청동 그릇에 들이는 정성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무서운 괴수 얼굴이 떠오르는 기괴한 무늬, 탄성을 자아내는 압도적인 크기와 형태는 신에게 바치기 위한 제례 도구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신을 위해 사용되던 청동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왕과 제후의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에 철기가 사용되자 청동기는 일상용기로 쓰임새가 다시 한번 바뀝니다. 세계 다른 어떤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문화유산 중국 청동기, 이번 특별전에서 시대에 따른 중국 고대 청동기 문화의 변화상과 함께 청동기의 제작방법, 무늬,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중국 역사의 단면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웃나라 중국의 고대 역사를 담고 있는 그릇, 상하이박물관의 보물을 지금부터 만나 보십시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상하이박물관
1952년 개관한 상하이 박물관은 중국 동남부의 대표박물관으로 중국 국가박물관, 샨시역사박물관과 함께 중국 3대 청동기 박물관으로 세계 최고의 청동기 컬렉션을 자랑합니다. 청동기 이외에도 도자기, 회화 및 서예 작품이 유명하며 14만여 점의 중요 고대 유물을 포함하여 약 102만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건물 외관은 ‘천원지방’, 즉 둥근 하늘과 네모진 땅이라는 중국의 세계관을 반영하였고 위쪽에 솟은 반원형 장식은 세발솥을 모티브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외관으로 상하이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상하이박물관은 1950년대 중국에서 일어난 ‘쇠붙이 모으기 운동’을 기반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당시 항구가 있던 상하이에 가장 큰 제련소가 있었고 엄청나게 많은 청동기가 유입되었습니다. 이 중에 고대 청동기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3만 여점의 청동기가 상하이박물관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청동기의 진위문제를 말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이후 중국 내 유적 발굴이 활발해지면서 상하이박물관 소장품 대부분이 진품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 위키백과, 2023년
- 미술사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