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중앙박물관특별전, 조선의 승려장인] 복장물, 생명력을 불어넣다.

복장(服裝)이란 불상과 불화에 안치하는 종교적인 성격을 갖는 물목으로 생명력과 신성성을 갖게 해 준다. 복장물의 핵심은 후령통으로 사리를 비롯해 오보병, 오곡, 오보, 오약, 오향 등 오방과 진귀한 물품이 들어간다. 이외에도 각종 다라니를 적은 진언과 경전, 비단천을 비롯한 복식 등이 들어간다. 복장을 안치하는 방식은 고려시대에 정립되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간행된 <조상경(造像經)>에 그 절차와 품목 등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60. 조각승 해심이 만든 불상과 닮은 여래좌상, 목조석가여래좌상, 조선 17세기 중반, 국립중앙박물관>

귀가 크고 턱이 발달했으며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상체가 길고 가슴과 배가 적당히 부푼 신체 표현이 특징입니다. 이 여래좌상의 정확한 제작 연대와 원래 봉안되었던 사찰은 알 수 없으나, 이와 비슷한 불상으로 전라북도 고창 <문수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이나 고창 <상원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이 있습니다. 17세기에 활동한 조가승 무염 밑에서 배운 해심이 이 불상들을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시에 출품된 이 여래좌상도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불상 안에서는 후령통과 직물로 만든 오보병(五寶甁), 경전과 다라니가 수습되었습니다. 수습 당시 후령통 안은 비어 있었습니다. 복장물이 완전한 형태로 전하지는 않지만, 조선 후기 복장물의 형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61. 석가여래좌상 몸 안에 있었던 신성한 물건, 목조석가여래좌상 복장물, 조선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1. 후령통(핵심적인 복장을 넣는 통), 2. 원경(둥근거울), 3. 진언(불교의 주문)>

<4. 다라니(신비한 힘을 가진 주문)>

후령통(喉領筒)은 복장물의 핵심으로 그 안에는 사리를 비롯해 오보병, 오곡, 오보, 오약, 오향 등 오방과 진귀한 물품들이 들어간다. 동(청색), 남(적색), 서(백색), 북(흑색), 중앙(황색)으로 방위와 색을 규정한 <조상경(彫像經)>을 절차를 따르고 있다. 다섯가지 보물인 종자(씨앗), 금강저, 채번(깃발), 산개(양산), 보병(병)을 직물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5. 오보병(다섯가지 보물을 담는 병)>

불상 조성이 끝난 다음 종교적 예배 대상이 되려면 또 다른 의식과 절차가 필요합니다. 불사리나 경전처럼 종교적 상징이 담긴 물건과 조성 기록을 적은 발원문을 내부에 넣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이처럼 불상 내부에 성스럽게 넣은 물건을 복장물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목조석가여래좌상 몸 안에 넣었던 복장물의 일부입니다. 불상의 복장물로 빈 후령통과 오보병의 일부 그리고 내부 공간을 채우는 용도 등으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경전과 다리니가 발견되었습니다. 오보병은 제 병이 아니라 다섯 가지 색깔의 직물로 만들었습니다. 동(청색), 남(적색), 서(백색), 북(흑색), 중앙(황색)으로 방위와 색을 규정한 <조상경(彫像經)>의 내용과 비슷합니다. 색깔별로 종자, 금강저, 채번, 산개, 보병의 형태를 한 세트로 만들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인조 때 일가족이 거의 몰살당할 때 살아남은 소현세자의 셋째아들을 모셨던 궁중 나인들이 발원한 보살상에 모셔졌던 복장물이다. 경안군이 오랜 귀향살이를 끝내고 결혼하게 되자 그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바램이 담겨 있다. 이 유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반영하고 있어 지금까지도 귀중하게 여겨지고 있다.

<62. 소현세자의 아들을 위해 궁중 나인이 발원한 보살상 복장물, 송광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물, 조선 1662년, 비단 등, 송광사 성보박물관, 보물, 1.저고리>

낡은 남색 저고리와 녹색 배자, 붉은색 비단 등은 모두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 관음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 내부에서 나온 복장물입니다. 복장물의 중심은 갖가지 성물을 담은 후령통이지만, 함께 발견된 남색 저고리와 초록색 배자, 목숨 ‘수(壽)’자와 영지무늬를 화려한 금실로 수놓은 붉은색 비단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저고리 안쪽에는 1662년 정월 궁중 나인이었던 노예성이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 경안군 부부 등의 장수를 기원하며 관음보살상을 발원했다는 내용이 정성스레 적혀 있습니다. 녹색 배자 안쪽에는 시주자 유씨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글도적혀 있습니다. 저고리와 같은 옷을 복장물에 넣는 풍습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입니다. 이 옷들은 시주자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동시에 핵심적인 복장을 넣은 후령통 같은 복장물을 고정하고 보호하며 공간을 채우는 기능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저고리 위에 덧입는 배자, 3. 발원문>

성품을 돌이켜 들으시고 원통을 깨우치셨네. 관음불이 관음의 이름 주시고 위로는 자비의 힘을 갖추고 아래로는 자애를 갖추게 하니 32응신(應身)이 온 누리에 두루 미치네. 경안군 이씨와 부인 허씨 두 분의 수명장원을, 경자생 박씨와 노씨의 수명장원을, 윤씨의 수명장원을 기원합니다. 신축생 나인 노예성이 발원하여 1662년 정월에 관음보살상을 삼가 조성하니 이로써 공덕이 두루 미치고 나를 비롯한 모든 중생이 함께 성불하기를 기원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4. 후령통>

<5. ‘수’자와 영지무늬가 있는 비단>

장수를 의미하는 ‘수(壽)’자 직물을 넣은 까닭
경안군의 아버지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귀국한 지 얼마되지 않아 세상을 떴고, 어머니 강씨도 인조 독살 시도라는 누명을 쓰고 사사되었습니다. 1647년 네살이었던 경안군은 제주로 유배를 가고 이듬해 두 형마저 죽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1659년 그가 경안군으로 복권되고 1661년 허씨와 혼인한 점을 고려하면, 1662년 완성된 보살상에서 나온 장수를 상징하는 ‘수(壽)’자가 수놓아진 직물은 더욱 특별합니다. 한 많은 삶을 뒤로하고 혼인한 경안군의 평온한 미래와 무병장수를 간절히 바란 나인들의 염원이 깃든 복장물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63. 조각승 여찬 등이 불상을 만들며 넣은 바람이 담긴 글, 문경 쌍계사 불상 조성 발원문, 조선 1723년, 종이에 붉은 먹, 국립중앙박물관>

경상북도 문경 쌍계사에서 아미타여래삼존상을 조성하며 마련한 발원문입니다. 현재 이 절과 불상은 모두 확인되지 않고 발원문만 전합니다. 상을 만든 승려 장인은 여찬과 삼인, 신찰, 지찰, 성현입니다.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여찬은 강원도 고성 유점사 대종을 고쳐 만들떄는 화원으로, 경남 고성 <옥천사 시오아도>(1744년)와 서울 <봉은사 목조사천왕상>(1746년)을 조성할 때는 복장물 시주자로 참여하며 다양한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불상은 전하지 않으나, 이 발원문은 불상 조성에 관여한 이들의 정보와 발원문 구성을 살필 수 있는 자료입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65. 화승 신겸이 그린 시왕도의 복장물, 시왕도 복장물, 조선 1829년, 국립중앙박물관, 1. 발원문, 2. 후렴통>

<3. 열금강지방지도, 4. 진언>

시왕도에 봉안된 복장물입니다. 시왕도는 모두 열점으로 조성되었지만 복장물은 현재 다섯점만 남아 있습니다. 과학적 조사로 납작한 네모 형태의 종이 후령통 안에서 각종 곡물과 사리가 담긴 오보병, 불교의 주문인 진언과 여러 직물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함께 발견된 발원문으로 화승 신겸과 신선이 이 불화를 조성한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내부에 공간이 있어서 그 안에 복장물을 넣을 수 있는 불상과는 달리 불화는 낱장 형태여서 복장물을 넣기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러한 이유로 불화의 복장물은 주머니에 담아 그림 상단에 걸거나, 그림 뒷면에 쉽게 부착할 수 있는 납작한 종이 상자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공간과 재질에 맞춰 복장물을 제작했던 승려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64. 화승 신겸과 신선이 그린 지옥 풍경, 시왕도, 신겸 등 2명, 조선 1829년,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신겸과 신선이 1829년 북한산성의 중심 사찰인 중흥사에 봉안하려고 조성한 시왕도입니다. 신겸은 1828년에 의성 고운사에서 시왕도를 그렸습니다. 이때 그린 밑그림을 사용하여 1829년 중흥사 시왕도를 제작했습니다. 이 불화는 사후 세계를 다스리는 열 명의 왕 중 두번째인 초강대왕과 지옥의 형벌장면을 묘사했습니다. 성곽으로 구획된 지옥 안에서는 죄를 지은 영혼이 뜨거운 가마솥에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지옥문 바깥에는 그들을 구하려고 지장보살이 자리했습니다. 대부분 불화에 봉안된 복장물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 불화는 종이로 된 납작한 후령통과 복장물이 함께 전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생명력을 불어넣다
불상과 불화가 일반 미술과 다른 차이점의 하나는 제작을 마친 다음 종교적 예배 대상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의식과 절차를 거친다는 것입니다. 불상과 불화는 각각 입체와 평면이라는 공간을 감안해 복장물을 넣었습니다. 복장물은 불상이나 불화를 예배대상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함께 봉안하는 여러 신성한 물건을 의미합니다. 불상과 불화에 복장물을 납입하고, 신비한 힘과 권위를 부여해 종교적 생명력을 불어 넣는 점안(點眼)의식이 거행되면 금빛 찬란한 불상과 화려한 색의 불화는 비로소 부처의 세계로 바뀝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67. 문수사 지장시왕도를 그리며 남긴 기록, 문수사 지장시왕도 발원문, 조선 1774년, 종이에 먹, 서산 문수사>

설훈과 화승 일곱 명을 비롯해 1774년 불사에 참여한 승려의 이름과 조성시기, 봉안될 공간을 적은 글입니다. 화승 설훈과 증명을 맡은 국밀은 불화 뒷면에서 나온 편지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문수사 지장시왕도에서 나온 편지, 문수사 지장시왕도 서신, 조선 1773~1774년, 종이에 먹, 서산 문수사>

<문수사 지장시왕도에서 나온 편지>

<지장시왕도>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승려들이 주고받은 편지 여섯 통이 발견되었습니다. 그중에서 화승 설훈과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서산 삼길암의 승려 광률이 불상에 금을 다시 입히는 작업을 비밀스럽게 부탁하는 편지가 있습니다. 또한 광률이 문수사 청련암의 최고 어른 스님께 불상에 넣을 복장물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도 있습니다. 광률은 왜 비밀스럽게 요청했을까요? 어떤 이류로 불화 뒷면에 편지를 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화가 완성되기 전 불사 현장의 이모저모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66. 설훈 등이 그린 지장시왕도, 문수사 지장시왕도, 설훈 등 8명, 조선 1774년, 비단에 색, 서산 문수사>

뛰어난 그림 솜씨로 승려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던 화승 설훈이 충청남도 서산 문수사 청련암에 봉안하려고 조성한 지장시왕도입니다. 설훈은 불화뿐 아니라 불상 제작과 개금에도 참여했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18세기에는 불상 제작 수요가 줄어 들면서 화승이 불상 중수와 개금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에는 다채롭게 뻗어가는 신비로운 빛과 구름 가운데 지옥의 영혼을 구원하는 지장보살, 지옥에서 죄를 심판하는 시왕과 무리를 그렸습니다. 이 불화의 뒷면에서는 제작 당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승려들의 편지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과거 불사 현장의 생생한 흔적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불사 현장의 이모저모
사찰에 필요한 것을 만드는 일인 ‘불사(佛事)’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었을까요? 우리는 이미 완성된 불상과 불화만 접하므로 과거의 불사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충청남도 서산 문수사 청련암에는 불화를 그릴 때 현장에서 승려들이 주고 받았던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 이 편지는 18세기 후반 전문적인 화승 집단이 서로 어떻게 연락했는지, 불사 주문과 진행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알려 주며, 재료 수급 과정과 인맥에 따른 개인적인 요청 등 작업 현장의 이모저모를 생생히 보여 줍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2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3.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