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국보)>이다. <난중일기>로 잘 알려진 이책은 임진왜란 (1592~1596) 때에 이순신이 친필로 작성한 일기로 현충사에 7권이 남아 있다. <충무공전서>에 수록된 <난중일기>의 초본으로, 수군 통제에 관한 군사비책과 전황을 보고한 장계의 초안 등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7년 동안 왜적과 싸우면서 계속하여 쓴 것으로 당시 전황 및 군사제도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로도 가치가 높다.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1월부터 전사하기 직전인 1598년 11월까지 약 7년간 진중(陣中)에서 직접 쓴 친필 일기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해전 상황, 군사 기밀, 기후, 지형뿐만 아니라 선조 임금 및 조정과의 갈등 등이 가감 없이 기록되어 있다. 전쟁 기록 뿐 아니라 백성들에 대한 연민, 어머니에 대한 효심, 전염병과 가위눌림에 시달리는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슬픔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난중일기》란 이름은 정조가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붙힌 이름이다. <임진일기(1592년)><계사일기(1593년)><갑오일기(1594년)><병신일기(1596년)><정유일기(1597년)><속 정유일기(1597년)><7 무술일기(1598년)>로 구성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6년)

나도 왼족 어깨 위에 철환을 맞았다. 뒤로 뚫고 나갔으나 중상까지는 아니었다. 사부와 격군 중에서도 철환을 맞은 사람이 많았다. 13척을 불태워 없애고 물러나와 주둔했다. (1592년 5월 29일)

비가 내리다 맑았다 했다. 아침에 흰 머리카락 십여 가닥을 뽑았다. 하얗게 머리가 세는 것을 어찌 꺼릴까. 다만 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1593년 6월 12일)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어머님을 모시고 같이 한 살을 더했다. 이는 전쟁 중이라도 행복한 일이로 구나. 늦게 군사 훈련과 전투 준비로 좌수영으로 돌아왔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1594년 1월 1일)

아침부터 흐렸다. 늦게 큰 비가 내렸다. 농민의 바람을 가득 채워주었다. 기쁘고 행복한 것이 말할 수 없구나. 비가 오기 전에 훈련용 화실 5~ 순을 쏘았다. 밤새 그치지 않았다. (1596년 5월 일)

맑았다. 옥문을 나섰다. 남대문 밖 윤사행의 사내종의 집에 도착했더니, 봉과 분, 울과 사행, 원경이 한자리에 같이 앉아 있어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지사 윤자신이 와서 위로했다. 비변사 낭청 이순지가 와서 만났다. 한숨이 더욱더 깊어지는 것을 이길 수 없었다. 윤자신은 돌아갔는데, 저녁을 먹은 뒤에 술을 가지고 다시 왔다. 윤기헌도 왔다. 마음으로 권하며 위로했기에 사양할 수 없었다. 마지못해 술을 마셔 아주 많이 취했다. …. 술 에 취 했 다 . 땀 이 나 몸 이 젖 었 다. (1597년 4월 1일)

간담이 타고 찢어지고 또 타고 찢어졌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하늘이 정한 이치가 아니냐. 그런데도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치가 어찌 이렇게 어긋날 수 있느냐. 하늘과 땅이 캄캄하고 한낮의 해도 빛이 바랬다. 불쌍한 내 어린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받아야 할 하늘의 재앙이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목 놓아 서럽게 울부짖을 뿐이다. 하룻밤이 1년 같다. 하릇밤이 1년 같다. (1597년 10월 14일)

맑았다. 아침 8시에 유도에 도착했더니, 명나라 육군 제독 유정은 이미 군사를 진격시켰다. 바다와 육지에서 함께 공격했다. 적의 사기가 크게 꺾였다.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많았다. 수군은 드나들며 포를 선았다. (1598년 9월 20일)
이순신이 직접 쓴 《난중일기》 친필본이다. 일기가 작성된 연도에 따라 ‘임진일기’, ‘정유일기’와 같이 표지에 이름을 붙였는데, 정조의 명으로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할 때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수록하면서부터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6년)

<난중일기> 중에서,임진년 6월5일
아침에 출발하여 고성 당황포에 이르니, 왜선 한 척이 크가가 판옥선 같았는데, 배 위에 누각이 높았고 그 위에 적장이 앉아 있었다. 중간 배가 12척이고 작은 배가 20척이었다. 한꺼번에 쳐서 깨트리려고 비 오듯 화살을 쏘아대니, 화살에 맞아 죽은 자가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왜장 7명의 머리를 베었고 나마지 왜병들은 육지로 내려가 달아났지만, 나머지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 군사의 기세를 크게 떨쳤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0년)임진왜란 (1592~1596) 때에 이순신이 친필로 작성한 일기로 현충사에 7권이 남아 있다. 이 일기는 <충무공전서>에 수록된 <난중일기>의 초본으로, 수군 통제에 관한 군사비책과 전황을 보고한 장계의 초안 등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어 임진왜란의 전황 및 당시 군사제도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로도 가칙 높다. 전시된 책은 <난중일기> 초본을 1969년에 축소 영인한 것이다. 전시된 책은 <난중일기> 초본을 1969년 충무공기념사업회에서 축소 영인한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0년)

〈임진장초(壬辰狀草)〉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장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 전투의 경과, 군사 기밀, 그리고 장졸들의 공로 등을 선조 임금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장계(狀啓)의 초고를 묶은 책이다. 1592년 4월 15일 부산진 함락 소식을 듣고 급히 올린 첫 장계부터, 1594년(선조 27년) 1월까지 약 2년 동안 올린 총 62편의 장계가 연도별·날짜별로 정교하게 수록되어 있다.

신(이순신)이 피란민들이 들어가 살 만한 곳을 생각해 보니, (여수의) 돌산도만 한 곳이 없었습니다. 이 섬은 본영(전라좌수영)과 방답 사이에 있으면서, 봉우리로 겹겹이 물러싸여 적이 들어을 길이 사방으로 막혔고, 땅은 넓고 평평하며 흙은 비옥합니다. 그래서 떠도는 백성들을 알아듣게 타일러 차츰 들어가 살게 하여, 방금 봄갈이를 시켰습니다. – 《임진장초》 1593년 1월 26일 장계 –
1592년(선조 25) 4월 15일부터 1594년(선조 27) 1월 17일 까지 이순신이 약 2년간 올린 보고서를 후대에 다른 사람이 옮겨 적어 책으로 묶었다. 선조와 세자(훗날 광해군)에게 올린 공식 문서를 후대에 필사해 묶은 책이다. 임진왜란이 시작된 1592년에는 주로 초기 출전의 승전 보고가, 강화 협상이 시작된 1593년 이후에는 군사, 행정 보고가 중심을 이룬다. 전투 후 올린 장계에서 전공자, 전사자, 부상자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1·2·3등으로 나누어 상을 청하였고, 피란민들의 생계와 군량 확보를 위해 둔전 경영을 허락해달라고 청하였다. 그 외에도 전투 상황, 군사 운영, 수군 진영의 현황, 인사와 상벌, 군량 조달, 무기 개발, 피란민 대책 등 국가적 사안에 대한 내용과 이에 대한 이순신의 소신이 잘 정리 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6년)
서간첩은 이순신장군이 친척들에게 친필로 보낸 편지를 수집하여 만든 책이다. 크기는 세로 33 cm, 가로 44 cm로 글씨는 한문 초서로 쓰여 있다. ‘湖南國家之保障(호남국가지보장) 岩三湖南(약무호남) 是無國家(시무국가):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명도 없었을 것이다’란 유명한 글이 담겨 있는 편지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 본영(여수)에서 한산도(통영)로 군사 기지(진)를 전격 이동한 직후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湖南國家之保障(호남국가지보장) 后兰湖南 是云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
호남은 나라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만약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어질 것입니다. 이 때문에 어제 한산도로 나아가 진을 쳤고, 바닷길을 끊고 막을 계획입니다. <이순신이 현덕승에게 보내는 편지>
이순신이 한산도로 잔을 옮긴 다음 날, 1593년(선조 26) 7월 16일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순신은 이 편지에서 호남은 국가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므로 한산도에 나아가 진을 치고 바닷길을 끊고 일본 수군을 저지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외에도 편지에 일상의 안부와 선물에 대한 감사를 전하면서도 전란을 걱정하는 간절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서간첩은 이순신의 외가쪽 친척으로 추정되는 현건과 현덕승, 조카에게 보낸 이순신의 편지 7통과 큰아들 이회추가 현건에게 보낸 편지 1통을 함께 엮은 것이다. 이순신의 10세손인 이규대가 서간첩을 만든 경위를 기록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6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6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0년
- ‘국보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2년
- 안내문, 여수 진남관, 2012년
-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5.15 확인)
- OpenAI, <ChatGPT (GPT-5)>의 답변, 2026년 5월 15일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