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와 미이라(The mummy)는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을 잘 보여주는 흔적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인이의 영혼이 시신에 머문다고 생각하여 시신을 보존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사막지역인 이집트의 지리적 특징과 함께 많은 미이라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장례절차와 사후세계를 기록한 문서인 ‘사자의 서(Book of dead)’, 시신을 모셨던 관과 껴묻거리 등에는 오시리스 신화를 비롯하여 당시 사람들의 사후세계에 대한 바램과 살았던 모습 등이 남아 있다.
여성의 무덤에서 출토된 작은 피라미드이다. 네 면에 장식된 부조에는 이집트인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앞면인 감실과 뒷면에는 사후세계와 연관된 주요 신들인 오시리스와 레 신에게 죽은이가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 면에는 무덤 주위를 날아 다니는 인간의 머리를 한 새(‘바Ba’)가 부활의 상징인 제드 기둥에 앉아 있다. 왼쪽 면에는 호루스와 토트가 죽은 이의 미라를 앞에 두고 정화 의식을 행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으로, 대부분 지금으로부터 4천여 년 전인 고왕국 시대에 세워졌다. 석관 안에 미라가 없는 경우가 많아, 무덤이 아닌 장례신전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기자를 중심으로 100여 기 이상이 발견되었다. 가장 큰 피라미드는 제4왕조의 두 번째 파라오였던 쿠푸왕의 피라미드로 ‘대피라미드’라고 한다. 기원전 약 2500년에 지어졌고 헬레니즘 시대부터 7대 불가사의로 불렸다. 높이가 146.6cm에 이르며 지어진 뒤 약 3,800여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한 변이 230m 인데 각 변의 길이 차는 최대 4.4cm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정밀하다. 벽돌처럼 다듬은 돌 230만 개를 사용했는데 돌 하나의 무게가 평균 2.6톤이고 50~80토에 달하는 것도 있다. 대피라미드 안에서는 세 개의 방이 발견되었다. 지하에 미완성의 방이 하나 있고 중아 방과 석관이 있는 매장 방이 있다. 최근까지도 과학정 방법으로 조사 중이지만 현재까지 정확한 내부구조는 알 수 없다. 어떻게 지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바퀴 달린 차량과 크레인이 없던 때라 긴 경사로를 이용해 돌을 밀어 올렸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3만여 명의 인부가 10년 이상 참여했으며 전쟁포로, 노예, 그리고 나일강의 범람으로 농지가 침수되는 기간에는 농부들도 동원되었을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한번에 10만 명의 인원이 3개월 교대로 동원되었다. 돌덩이를 끌고 갈 길을 내느라 10년 동안 백성들의 고생이 계속되었다. … 길을 내고도 그곳에 돌을 쌓아 올리는데 다시 또 10년이 걸렸다. – 헤로도토스 <역사(The Histories)> 2권 124장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사자의 서(Book of dead)’는 이집트 신왕국 초기에 장례절차와 사후세계를 묘사한 고문서로 원래는 왕족이 아닌 사람들이 장례식 사후 안내서 역할을 했던 문서이다. 고왕국시절 피라미드 현실 벽면에 벽화 또는 상형문자로 적었는데 이를 ‘피라미드 문서’라고 부른다. 이런 내용이 중왕국시대 이후 귀족이나 부자의 관속에 문서로 적었으며, 신왕국시대에 들어서는 정형화된 형태의 ‘사자의 서’를 파피루스에 적어 관속에 묻었다. 여러 형태의 ‘사자의 서’ 문서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 묘사가 세밀하고 뛰어난 것으로는 영국 박물관에서 소장한 아니(Ani)의 필사본 ‘사자의 서’가 있다.
이 마라 붕대에는 죽은 자들의 영역에 있는 영혼에게 음식을 바치고, 그들에게 그 음식이 무사히 도달하기를 기원하는 <사자의 서> 제148 주문이 인용되어 있다. 죽은 이는 제드 기둥 앞에 서서 여신이 받치고 있는 오시리스레하라크(Osiris-Reharakhy) 형상에 향을 피우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 붕대에 기록된 것은 <사자의 서> 제18장으로 죽은 이가 맞이할 여러 평의회의 신들 앞에서 죽은 이를 변호해 달라고 신에게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 붕대의 오른쪽 글귀 부분과 떨어져 있는 곳에 ‘세번째’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데, 이것은 전체 미라 붕대 중 이 띠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알려 주는 표시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사자의 서>에는 심장을 다루는 주문이 많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마음이 있는 곳이 심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붕대에는 오시리스의 법정에서 죽은 이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하지 말아 달라고 심장에게 간청하는 주문이 쓰여 있다. 이런 주문은 미라의 심장 위에 놓이는 스카라브에 흔히 새겨지는 문구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카라브는 풍뎅이 모양으로 표현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것은 아문(Amun)신을 모시는 상당히 높은 지위의 신관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제15장과 제17장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제15장은 태양신에게 바치는 찬가이고, 제17장은 사후세계에서 문제에 봉착했을 때 난관을 극복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테베의 사제인 제드콘수이우에판크로, 태양신 레로르아크티(Re-Hor-akhty)앞에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세로로 쓰여진 글에는 죽은 이를 환영하는 신의 인사말을 비롯해 죽은 이의 이름 및 가계도가 적혀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저승의 서>에는 태양이 내세에서 12시간 동안 지나가는 길이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태양이 배를 타고 저승세계를 통과하여 아침에 다시 산자들의 세계로 돌아가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 이를 방해하는 적들을 물리치는 것을 보여준다. 이 파피루스는 태양이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 다시 떠오르기 직전인 12번째 시간을 다루고 있다. 이집트 사람들은 자신을 태양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사후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세력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제3중간기 이전에는 왕만이 이 문서를 사용할 수 있었으나, 이후 시기에는 고위 관료들도 사후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보조 도구로 이 문서를 이용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사자의 서’는 이집트인들의 내세관을 잘 보여주는 문서로 장례식 절차부터, 부장품, 죽은자가 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내용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생전에 쌓은 선행을 심판하는 사후세계의 신인 오시리스 앞에서 받는 “심장의 무게 달기 의식”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의식은 심판관인 오시리스 신 앞에서 죽은자의 심장을 큰 저울에 올려 지혜의 여신 마트의 깃털로 무게를 재는 의식이다. 이 재판에는 지식의 신인 토트, 죽음의 신 아누비스, 괴물 암무트, 파라오를 상징하는 호루스신이 참여하는데 오늘날 재판의 형태와 비슷하다고 한다.
사자의 서
죽은 자가 오시리스의 심판을 통과해 저승으로 무사히 들어가 영원한 삶을 얻는 여정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주문을 담은 책이다. 초기에는 피라미드의 무덤방 벽이나 관에 새겨져 ‘피라미드 문서’라고 하였고, 신왕국 시대에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로 불리게 되었다. 파피루스에 적힌 것들이 많이 알려졌으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것처럼 미라를 감싼 아마천 붕대에 쓴 경우도 있다. 사자의 서에는 적어도 190여 개의 주문이 있다. 부자들은 문자와 함께 그림을 넣기도 하였다. 죽은 사람은 여러 위험과 괴물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암송하여 위기를 넘기도록 괴물 이름을 적어 놓은 경우도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125번 주문으로, 최후의 심판에서 사는 동안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을 심판관들에게 고백하는 내용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인이의 영혼이 시신에 머문다고 생각하여 시신을 보존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사막지역인 이집트의 지리적 특징과 함께 많은 미이라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토티르데스의 관
관은 미라를 보호할 뿐 아니라 여기에 망자와 오시리스를 연결하는 그림을 그려 죽은 이가 사후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미라의 주인공인 토티르데스(Thothirdes)는 관의 형태로 보아 제26왕조에 살았던 사람으로 추정된다. 이 관에는 토티르데스가 사후세계에서 이루고 싶은 소망들이 그려져 있다. 뚜껑 중앙 부분에 미라가 된 토티르데스가 누워있고 오시리스의 부인과 여동생인 이시스와 네프티스(Nephthys) 여신이 토티르데스를 애도하고 있다. 인간의 머리를 한 새 모습의 바(Ba)가 토티르데스 위를 맴돌며 그의 영혼이 죽음 이후에도 존재할 것임을 알린다. 바로 위 화면에는 토티르데스의 심장과 ‘진실’이 저울에 올려져 있고, 두 명의 신이 무게를 재는 심판으로부터 토티르데스를 데려가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진실하게 살았음을 마침내 증명한 토티르데스는 이제 사후세계에서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토티르데스의 관에서 나온 미라
이 미라를 대상으로 방사선탄소연대측정을 실시했다. 또한 유물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내부를 볼 수 있는 CT촬영도 시행했다. 방사선탄소연대측정 결과 이 미라의 주인공은 기원전 768년과 545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CT촬영 결과 목 피부 아래가 아마천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기법은 기원전 712녀에 끝난 제22왕조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 조사를 통해 미라는 방사선탄소연태측정법 증과와 CT촬영 분석 결과가 서로 겹치는 기원전 8세기에 사망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스 이 미라는 앞의 토티르데스관보다 40년 이상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미라와 관은 원래 따로 출토되었던 것이 19세기에 고대 유물 중개인에 의해 합져진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CT로 본 미라
CT를 이용해 토티르데스 미라의 내부를 조사한 결과, 토티르데스라는 인물에 대한 몇가지 숨겨진 사실이 밝혀졌다. 먼저 성기를 확인하여 남성임을 알 수 있었다. 나이는 뼈의 성장 상태로 보아 19세 이상의 성인으로 추정되며, 건장한 골격의 소유자였다. 또한 미라에 대한 유일한 기록인 헤로도토스의 설명을 검증해 볼 수도 있었다. 그는 코를 통해 쇠고리를 두개골에 넣어 뇌를 제거했다고 했는데, 토티르데스의뇌는 완전히 제거된 상태였고 코와 두개골 사이의 뼈가 뚫려 있어 헤로도토스의 설명과 일치하였다. 뱃속의 장기는 왼쪽 옆구리를 절개하고 제거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이 역시 그의 설명과 일치한다. 심장도 남아 있었다., 한편 장기를 카노프스 단지에 넣지 않고 다시 몸속에 넣은 것은 헤로도토스의 설명과 차이가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집트인들은 사후에도 삶을 계속 영위하기 위해서는 내장을 잘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피라미드 시대(기원전 2600년 경) 이후로 이집트인들은 내장을 네 개의 단지에 넣어 무덤 속에 보관했다. 폐와 비장, 간, 창자 등 네 개의 중요 장기에는 각각 수호신(임세티, 하피, 두아트무테프, 퀘배흐세 네베프)을 배치했다.
카노푸스 단지는 신체를 미라로 만들 때 제거된 장기를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왕족들만이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상류층과 중산층에서도 카노푸스 단지를 사용하였다. 물론 왕족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고, 신분이나 부유함에 따라 재료가 달랐다. 카노푸스 단지 중에는 뚜껑이 열리지 않는 것들도 있어, 단순히 봉헌용으로 용도가 바뀌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보통 한 세트가 네 개로 이루어져 있는 카노푸스 단지의 뚜껑은 각각 호루스의 네 아들을 상징한다. 자칼인 두아트무테프(Duatmutef)는 위를, 매인 퀘배흐세 네베프(Qebehsenebef)는 장을, 인간인 임세티(Imsety)는 간을, 개코원숭이인 하피(Hapi)는 폐를 보호한다고 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미라 제작
이집트인은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삶을 위해 죽은 사람의 몸이 보존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미라를 만드는 것은 영생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미라 제작 과정에 대해 묘사한 기록이 전한다. 그것은 생전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시키기 위해 수분을 제거하고 해충의 번식을 막는 과정이었다. 먼저 뇌를 비롯하여 내장을 모두 꺼내고 몸속을 깨끗하게 씻은 뒤 내부를 향신료로 채웠다. 뇌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버렸지만 간, 폐, 위, 장은 썩지 않게 처리하여 ‘카노푸스’라고 불리는 특수한 병에 넣어 보관하거나 다시 미라에 집어 넣기도 했다. 심장은 육체 일부이지만 동시에 생각과 감정을 주관하는 장기로 여겼고 시신 속에 남겨 두었다. 이렇게 처리한 시신은 천연 소금을 사용해 70일간 탈수 시킨 뒤 신체 곳곳에 부적을 놓고 아마천으로 꼼꼼히 쌌다. 마지막으로 나무로 만든 사람 모양 관에 안치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제21왕조에 이르러 이집트의 귀족들은 무덤을 정교하게 만드는 것을 중단하였다. 대신 무덤 벽에 그리던 그림을 관에 그렸다. 파세바카이엔이페트의 관에는 여러 신들을 비롯해 그들을 숭배하는 죽은 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한, 죽은 이가 오시리스로 표현되어 있다. 관 왼쪽이 일부 손상되었는데 당시 목수들이 작은 나무 조각들을 나무롯으로 고정해 관을 만들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또한 겉면을 석고를 바른 뒤에 채색하여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죽음 뒤의 세계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끝이 아닌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여겼다. 미라와 많은 부장품들은 이 목표를 성취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무덤에서 진행되는 모든 의례도 내세에 필요한 모든 필수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열렸다.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몇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카(ka)’는 육체와 동시에 태어나는데, 무덤 속 조삭상은 사후에 이 ‘카’가 머무는 장소이다. ‘바(Ba)’는 개인의 고유한 인격을 나타내며 몸을 떠나 자유게 이동할 수 있어 무덤 밖으로 나오기도 하였다. 영원한 삶을 위해서는 육체와 영혼의 모든 요소가 하나의 ‘아크(Akh)’, 즉 실제적인 영혼으로 통합되어야 했다. 이집트인들에게 저승으로 가는 입구는 해가 지는 서쪽에 있고, 사후 세계는 땅 아래에 있었다. 죽은 뒤 망자는 오시리스 앞에서 이승에서 진실한 삶을 살았는지 심판받았다. 이집트인들은 ‘마트(Maat)’, 즉 ‘정의’에 따라 살지 않았다면 영원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죽은 자는 자신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놓고 반대편에는 정의를 상징하는 깃털을 놓아 저울질하였다.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우면 심판을 통과하여 무사히 저승으로 갈 수 있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 안내문, 이집트보물전,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 안내문,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과천과학관특별전,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