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인이 돌이나 나무 등에 새긴 상형 문자는 ‘신성 문자(神聖文字, Hieroglyph)’라 부른다. 이집트 신성문자는 기원전 약 4세기 프롤레마이오스 왕조까지 사용되었다.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이 문자를 발명한 이는 지식의 신 ‘토트(Thoth)’라고 한다. 최초의 상형 문자는 기원전 4000년 전 무렵 선왕조시대에 재화의 교환과 함께 발달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5세기 이후 수백 년이 지나면서 상형문자는 점차 사용되지 않아 자취를 감췄다. 1799년 로제타스톤이 발견되면서 해독을 시도했으며, 프랑스인 상폴리옹이 완벽한 해독에 성공했다. 고대 이집트문명이 그림이 새겨진 새김돌에는 다양한 내용들이 그림과 함께 신성문자로 새겨져 있어 현대인들이 이집트 역사와 문화 등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파디마헤스’이며, 웅크리고 앉아 얼굴을 들어 앞을 보고 있다. 이 조각상은 신전의 바닥에 놓아 파디마헤스가 신들을 위한 의례에 영원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인물 조각상을 신전에 모시는 잉는 자신의 혼이 무덤에서 나와 조각상에 깃들어 신에게 바쳐진 공헌물을 나누어 가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내용은 고대 도시 타레모우의 신들에게 공물을 바치고 싶다는 소원을 담은 기도문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 석비는 저승세계의 구조를 보여준다., 맨 위쪽에는 태양이 배를 타고 내세로 이동하는 장면이 표현되었다. 그 아래에는 네페르카우가 내세를 다스리는 여섯 명의 신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 긴 비문은 장례 공물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하단 왼쪽 구석에서 네페르카우는 두 손을 든 채 위쪽에 적힌 기도문을 암송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부분적으로 채색이 된 이 석비에는 석비의 주인인 네헤메스라타위가 오시리스와 레호라크티(Re-Horkhty)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머리에 태양 원반이 달린 매로 표현된 태양신 레-호라크티는 저승의 신인 오시리스의 도움으로 매일 부활한다. 이 두 신이 함께 네헤메스라타위의 부활을 돕고 있다. 그림 아래에 적힌 공물 기도문은 내세에서 그녀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건이 끊이지 않도록 적은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 석비는 무덤 내에서 행하는 제사의식을 보여 준다. 제피와 그의 부인 안케네스이테스는 공물 테이블 앞에 서 있는데, 이 테이블의 음식이 나서 자라는 ‘들판’을 뜻하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석비 오른쪽의 상형문자는 저승에 있는 두 사람에게 빵과 맥주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기도문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집트 서기는 문서를 기록하는 역할을 했고 당시 상당히 높은 신분이었다. 서기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무릎에 손을 올려 놓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집트에서 서기는 문자를 기록하는 역할을 했고, 상류층에 속할 정도로 신분이 높았다. 서기는 주로 글을 읽거나 쓰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무릎에 손을 올 놓은 이 조각상의 포즈는 수천 년 전인 고왕국 제5왕조 때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넓은 가발과 땅딸막한 얼굴은 제12왕조 초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의 앞치마에 쓰인 명문은 죽은 이의 영혼에 공물을 바칠 것을 주문하는 기도문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 조각상은 전형적인 아치 모양 눈썹에 눈의 앞꼬리가 뒤꼬리보다 낮고, 화장으로 표현한 눈썹라인이 귀까지 길게 빠져 있다. 이것은 제18왕조 초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집트 유물 중에는 이 조각들처럼 부분적으로 파괴된 것들이 많다. 조각의 제작 연도는 비록 명문은 없지만 각각의 특징을 관찰하면 알 수 있다. 이 조각은 갸름한 얼굴에 솟아 오른 광대뼈, 뾰족한 턱으로 보아 중왕국 떄 만들어 진것으로 보인다 입술 선이 또렷하고 두툼한 것이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고대 이집트인들은 조상의 조각상을 집에 모셔 놓고 사후 세계에서의 편안한 삶을 기원하였다. 머리의 푸른 염료, 얼굴의 노란색 염료 흔적은 죽은 여성이 내세에 도달해 여신의 푸른색 청금석 머리카락과 노란색 황금빛 피부를 갖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 석비에는 출납 책임자인 민호테프의 장례 공물을 요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상형문자는 그림을 사용해 소리를 표현한다. 이 문자는 하나, 두 개, 혹은 세 개의 자음은 표현할 수 있으나 모음은 표현할 수 없다. 중간 줄 왼쪽에서 두 번째 그룹에 있는 공물 테이블처럼 생긴 기호가 물건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경우도 많다. 또는 그려진 물건과 발음이 같은 개념을 의미할 수도 있다. 따라서 마지막 줄 왼쪽에서 두 번째 그룹에 있는 앙크 상징은 ‘생명’ 또는 ‘살다’를 뜻하는 글자이지만 기호는 샌들 끈 모양이다. 이집트어로 샌들 끈이라는 단어의 발음과 ‘생명’을 뜻하는 단어와 소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 석비에는 무덤 주인인 몬투엠하트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표현되어 있다. 왼쪽에 일부만 남아 있는 인물은 나일강 하구의 감시자이며, 오른쪽의 인물은 서기이다. 두 사람의 실제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고 직위만 적혀 있다. 서기의 몸은 정면이고 머리는 전형적인 옆모습을 하였다. 서기는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들고 흔히 글을 쓸 때 취하는 자세인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 석비는 아문호테프 1세로부터 7대가 지난 아무호테프 3세 때 만들어졌다. 여기서 아문호테프 1세는 죽은 자들의 땅을 다스리는 왕인 오시리스 신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 옆에 왕의 어머니인 아흐모세-노프레타리가 있다. 왕은 현세와 내세 사이에서 신과 연결된 존재로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책임이 있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 석비에는 앉아 있거나 서 있는 네 사람이 등장한다. 네 명 모두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나 비문을 통해 각기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석비 왼쪽은 부부를 표현한 것이고 그 위에 적힌 글에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집트의 모든 인물 표현에서 머리와 다리는 측면으로, 어깨에서 허리까지는 앞면으로 그려진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자세지만 이렇게 하면 인간의 전체 윤곽을 표현할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발 덮개는 부유한 상류층만 사용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가면이나 미라 덮개는 꼭 갖춰야 할 필수품이었지만, 발 덮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 덮개 바닥면에는 적들이 묘사되어 있다. 두 명의 이방인은 손과 발이 묶인 채로 그려졌고 결국 왕의 발아래 짓밟히게 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방인을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제압한 형태로 표현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이집트의 예술은 점점 진화했다. 한 남성의 관에서 나온 이 마스크는 그리스와 로마의 초상화 양식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이집트의 예술가는 새로운 사상을 접하면 이를 받아들여 창작물에 녹여 내곤 하였다. 따라서 이와 같은 로마 양식의 가면은 이집트의 전통을 이은 마지막 단계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가면은 전통적인 이집트 가면과 마찬가지로 미라의 얼굴을 덮을 때 사용한 것이다. 머리모양은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모습이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문자와 예술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 시작된 이집트 역사에는 31개의 왕조와 무수히 많은 왕들이 존재했는데, 왕의 재위 기간이나 사건이 구체적인 연도와 함께 알려져 놀랍기만 하다.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 문화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자세히 알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이집트인이 사용했던 문자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기원전 3천년경 이미 여러 가지 사물을 본뜬 문자를 무덤의 벽이나 비석, 조각상, 돌로 만든 그릇 등에 새겨 넣었다. 이집트 문자는 그림문자인 성각문자(聖刻文字)와 이를 바르게 흘려 쓴 흘림체가 있었다. 당시에 문자를 사용하려면 특별히 훈련을 받아야 했으므로, 기록을 담당한 서기는 높은 지위를 누렸다. 한편 문자는 예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글자를 다루는 이가 곧 예술가이기도 했다. 문자와 예술 두 분야에서 모두 눈에 잘 띄는 굵은 윤곽선으로 사물을 묘사했다. 사람의 머리와 다리는 측면으로, 어깨에서 허리까지는 정면으로 그려싿. 왕이나 죽은 사람의 얼굴 조각은 주인공과 똑같이 만들지 않고 전형적인 모습을 따랐다. 때문에 무덤에 새겨진 인물의 모습은 신의 형상이거나 이상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달력의 사용
이집트인들은 별자리와 태양을 관찰해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1년, 365일, 열두 달로 우리가 쓰는 달력과 비슷했습니다. 한 해의 첫날은 지금의 7월로 나일강이 범람하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이집트인들은 1년을 세 시기로 나누어 ‘범람기’, ‘파종기’, ‘수확기’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도는데 365.25일이 걸려서 4년마다 하루 차이가 납니다. 나중에 로마인들은 윤년을 추가해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수학과 기하학의 발달
피라미드와 같이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때 실수를 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이집트인들은 건물의 면적이나 부피, 그리고 쓰이는 벽돌의 숫자까지 미리 정확히 계산했습니다. 이집트의 거대한 건축물을 보면 이집트에서 수학과 기하학이 발달한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원전 1600년 전에 쓰여진 ‘린드 파피루스’에는 피라미드의 부피를 구하는 방법을 비롯해서 총 87개의 수학 문제 풀이가 함께 적혀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의학의 발달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에 의사가 넘쳐나며 그들은 모두 외과나 산부인과 같은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미 고왕국 시대의 치과의사 무덤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몇종류의 의학 파피루스가 남아 있는데, 그 자료를 보면 뼈를 맞추는 방법이나 꿀과 식물을 치료약으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피부병이 생기면 오이나 알로에를 발랐습니다. 콤옴보 사원 벽에는 수술도구들이 새겨져 있어 흥미롭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스핑크스
사자의 몸에 왕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는 일반적으로 국가의 수호신으로서 이집트를 외부의 적들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스핑크스는 기자의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앞에 있는 대스핑크스입니다. 이집트에서 가장 큰 스핑크스로 높이가 20 m에 달하며, 석회암층을 그대로 깎아서 만들었습니다. 모래바람 때문에 오랫동안 몸통 대부분이 모래에 묻혀 있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끝이 피라미드처럼 생긴 높고 뾰족한 기념물입니다. 태양신을 경배하고 중요한 인물과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신전이나 무덤 입구에 세웠습니다. 30m가 넘는 것도 있다. 당시에 어떻게 세웠을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로마인과 근대의 유럽인들이 오벨리스크를 좋아해서 유럽으로 많이 옮겨졌습니다. 투트모세 3세가 만든 두 개의 오벨리스크는 ‘클레오파트라의 바늘’로도 불리는데 로마인에 의해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졌다가, 다시 1878년과1881년에 런던과 뉴욕으로 옮겨 세워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여왕 핫셉수트
이집트의 파라오 중에는 여자도 있었습니다. 고왕국시대부터 여자 파라오가 있었는데 핫셉수트는 신왕국 최초의 여왕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통치했습니다. 그녀의 치세에 이집트는 여러 나라와 무역을 하고 힘을 키워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녀는 세계역사에서 강력한 힘을 가졌던 첫번째 여성이었다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큰 오벨리스크도 그녀가 만든 것입니다. 특히 데이르 알바흐리에 만든 그녀의 장례사원은 절벽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지어져 방문자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람세스 2세
파라오 중에 가장 유명한 파라오는 람세스 2세일겁니다. 그는 67년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여러나라를 정복하였습니다. 다음 왕들조차 그를 닮고 싶어해 줄줄이 ‘람세스’라는 이름을 써서 무려 ’11세’까지 있습니다. 카데시 전투에서 이집트의 골칫덩이였던 히타이트를 쳐부순 사건이 유명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전투의 승자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람세스는 많은 사원과 조각상을 만들고 카데시 전투에서 승리한 모습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이야기를 역사로 만든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 안내문, 이집트 보물전,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 안내문,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국립과천과학관 특별전, 2012년
-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