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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사막에 핀 신앙의 꽃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유물은 투루판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20세기초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라는 사람이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3차에 걸쳐서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나 무려 5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을 수집했으며 이를 ‘오타니 컬렉션’이라 한다. 이를 일본 자본가 구하라가 구입하여 조선총독부에 기증하면서 중앙박물관에 유물들이 남아 있다. 오타니 컬렉션은 전체 유물의 1/3은 한국에, 1/3은 중국뤼순에, 1/3은 일본에 남아 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 동서문명이 통하는 길>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아시아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중앙아시아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루크메니스탄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 지역을 ‘투푸키스타(투르크인의 나라)’ 또는 ‘서역(西域)’이라고 부른다. 중앙아시아 역사와 문화에서 유라시아를 여러 갈래의 교역로인 ‘실크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동서 교역로를 장악하려는 주변 여러 세력의 침입과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교역로는 다양한 인종, 언어, 문화가 이 지역으로 유입되는 중요한 통로로 작용했다. 그 결과 이곳의 문화는 고대 지중해, 인도, 서아시아, 중국 문화의 요소가 복합된 독특한 모습을 띤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 소장품은 대부분 현재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는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지역은 텐산산맥 이북의 초원지대에서 전개된 유목세계와 그 남측의 타클라마칸사막을 중심으로 한 오아시스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타클라마타사막의 남단과 북단을 지나는 서역남도와 서역북도를 통해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인도, 서아시아, 중국 간의 교류가 본격화되었다. 그 길목에는 여러 오아시스 도시가 세워져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세계문화관에서 중앙아시아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 입구에는 아프로시압 벽화(복제품)를 전시하고 있다.  벽화는 사마르칸트 옛 중심시였던 아프로시압 도성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7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벽화에는 한반도인으로 추정되는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도를 차고 있는 사람이 등장하고 있어, 당시 한반도와 중앙아시아 사이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프라시아브 벽화(Afrasiab), 서쪽 벽화>

<서쪽벽화 앞부분>

서쪽 벽화
서벽은 입구에 들어설 때 마주 보게 되는 벽으로, 가장 중요한 벽화가 그려진 곳이다. 현존하는 벽화를 보면 여러 사신과 무사가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들이 향하고 있는 벽의 윗부분에 누가 그려져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가운데 부분에 바르후만왕, 돌궐왕, 또는 소그드의 신이 그려져 있었다고 보는 견해와, 벽의 양측에 바르후만왕과 돌궐 왕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오른쪽 끝에는 조우관을 쓴 고대 한국인이 등장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조우관을 쓴 인물>

벽화 속의 한국인
서벽에 그려진 벽화에는 새의 깃털로 장식된 모자인 조우관(鳥羽冠)을 쓴 인물이 등장한다. <<위서>> <고구려전>에 “머리에 절품건(折風巾)을 쓰는데, 그 모양이 고깔과 같고 두건의 모서리에 새의 깃을 꽂는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또 고구려 고분벽화, 양나라에 파견된 외국인 사절을 그린 <양직공도>, 신라, 백제, 가야 고분의 출토품으로 볼 때 새의 깃털이나 모형을 모자에 부착하는 장식법이 고대 한반도에서 보편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아프라시아브 도성유적>

벽화의 시기
서벽 왼편에 그려진 한 인물의 옷자락에 남아 있는 소그드 명문은 벽화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명문에는 차가니안(Chaganian, 사마르칸트 남부의 작은 나라)과 차치(Chach, 타슈켄트 지역)의 사신이 사마르칸트에 와서 이곳의 왕인 바르후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바르후만왕은 중국 역사서에 ‘불호만(拂呼縵)’으로 언급되는 인물로, 658년 당 고종에 의해 강거도독부(康居都督府)의 도독으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아프라시아브 벽화의 연대는 7세기 중엽으로 추정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아프라시아브 벽화의 발견
사마르칸트의 옛 중심지인 아프라시아브 도성지 유적에서 1965년 도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발견된 지점은 제23구역 제1호실에 해당하는 방으로, 왕이나 상류층 저택의 접견실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추정된다. 방은 정사각형 모양으로, 한 변의 길이가 11m에 달한다. 방의 윗부분이 공사 중에 파괴되어 내부 벽면을 장식했던 벽화는 현재 2m 정도의 높이까지만 보존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석굴사원은 수도자들이 더위와 비를 피하여 명상을 하기 위해 벼랑에 동굴을 파서 만들었다.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소카왕때 처음 생겼으며, 아프카니스탄,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국에도 전해졌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 석굴, 중앙아시아의 키질, 투루판 베제클릭, 둔황석굴, 중국의 윈강 석굴 등이 규모도 크고 잘 알려진 석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석 석재로 인공적으로 조성은 석굴암이 대표적이다. 특히, 둔황 석굴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 이후 4세기부터 원나라때까지 끊임없이 조성되었다. 막고굴에는 불상들과 벽화로 꾸며져 있으며, 불경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가 발견되었다.


<서원화(誓願畵),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복제품>

투루판 지역의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제15굴에 그려진 서원화의 일부분이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종교 유적이다. 제15굴에는 열다섯 가지 주제의 서원화가 회랑 양측 벽에 그려져 있었다. 이 벽화는 석가모니가 전생에 가시왕으로 태어났을 때 당시 부처였던 크세맘카라로부터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내용을 묘사한 제1주제 서원화의 일부분이다. 여기에서 크세맘카라 부처를 향해 공양물이 가득 담긴 쟁반을 두 손에 들고 서 있는 두 인물은 왕으로 태어난 전생의 석가모니와 왕비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석굴사원과 벽화
중앙아시아의 종교 유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석굴사원은 서역북도에 집중되어 있다. 투루판 지역의 베제클리크, 토유크, 야르호, 셍김-아기즈와 쿠차 지역의 키질, 쿰트라, 키질 가하와 같은 유적이 유명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앙아시아 벽화 가운데 대부분은 투루판의 석굴사원에서 가져온 것이며, 쿠차 지역의 벽화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서원화(誓願畵)는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현재의 시점에서 볼  과거불)로 부터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이야기가 한 화면에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비슈반타라 왕자 본생도, Visvantar Jataka, 미란 제5사원지/3세기/흙벽에 채색>

이 벽화는 미란 제5사원지 회랑 벽에 그려진 본생도의 일부분이다. 영국 탐험대를 이끈 스타인(Aurel Stein, 1862~1943년)의 보고서에 수록된 사진을 통해 본생도의 전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본생도의 주인공은 비슈반타라 왕자로, 석가모니의 여러 전생 중 하나이다. 비슈반타라 왕자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하얀 코끼리를 비롯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보시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사막에 핀 신앙의 꽃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러 교역로를 통해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교, 이슬람교와 같은 다양한 종교가 중앙아시아로 전해졌다. 종교 활동을 위해 세워진 많은 사원은 여러 신의 모습과 종교적 설화, 이상향, 신도 등을 표현한 그림과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이슬람교가 전파되기 이전인 10세기경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는 불교가 특히 성행했다. 이곳의 여러 불교 사원에는 헬레니즘 미술과 인도, 페르시아, 중국의 다양한 요소가 섞인 불상과 벽화가 남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1. 서원화,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꽃을 들고 있는 우아한 자태의 손을 묘사한 서원화 단편이다. 단편의 왼쪽에 과거불의 광배 일부가 남아 있다. 광배 가장자리에 흰색 띠를 둘렀고, 안쪽에는 붉은 색 바탕에 흰색과 적갈색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 손과 광배 사이로 상상의 꽃이 공중에 떠 있다. 벽화의 바탕색은 현재 흐린 갈색으로 보이지만, 제15굴의 다른 서원화와 마찬가지로 원래의 바탕색은 푸른색이었을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서원화, 투루판 베제클리크 제33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제33굴 우측 벽에 배치된 서원화의 일부이다. 서원화는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 즉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과거불을 만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이 벽화에는 두 명의 상인이 나란히 앉아 공양물이 담긴 화려한 쟁반을 들고 있고 왼쪽에 공양의 대상이 되는 과거불의 광배, 발, 옷자락 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상인의 얼굴에 각기 다른 개성이 잘 표현되었다. 왼쪽 상인은 약간 넓은 얼굴에 코가 높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검은색이다. 이에 비해 오른쪽 상인은 매부리코에 광대뼈가 튀어 나왔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적갈색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베제클리크’은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곳’이라는 뜻이다.  화려한 벽화가 많이 남아 있는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서역북도에 위치한 투루판 일대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군이다. 원래 80기 이상의 불교와 마니교 석굴이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50기 정도 남아 있다.

<투루판 베제클리크(伯孜克里克, Bezekllik) 석굴사원,  2010년>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투루판시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무르투크강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 석굴사원에는 83기의 석굴이 확인되며, 그중 40기에 벽화가 남아 있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6세기 국씨고창국(麴氏高昌國) 시기부터 13세기까지 만들어졋으며, 10세기 위구르 지배기에는 왕실의 종교적 성지로 번영했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에는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를 소재로 한 ‘서원화’가 많이 그려졌다. 서원화는 ‘공양화供養畵’ 또는 ‘본행경변本行經變’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 ‘서원’은 바라는 바를 이루겠다는 맹세를 뜻한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서하어(西夏語), 위구르어 등 다양한 언어로 쓰인 불교 경전과 여러 시기에 걸쳐 그려진 벽화가 있는 중요한 불교유적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마혜수라천(Maheshvara), 투루판/10~12세기/흙벽에 채색>

힌두교의 신 시바가 불교에 포섭되어 등장한 신으로 다면다비(多面多臂)에 3개의 눈을 가진 점이 특징이다. 마혜수라천은 일반적으로 위로 올린 손에 해와 달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위로 올린 오른손에 해처럼 보이는 둥근 원반을 들고 있다. 나머지 손은 합장하거나 밧줄을 잡고 있다. 머리 위의 작은 인물은 바람이 가득 찬 주머니를 들고 있어 풍신(風神)을 연상시킨다. 손바닥과 얼굴은 살구색으로, 나머지는 녹색을 띤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악귀상,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중당(中堂)의 네 모퉁이에는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안쪽 좌측벽에 그려진 사천왕 앞에 앉아 있는 악귀 부분이다. 악귀는 겁에 질린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 앞으로 모아 화살 2개를 쥐고 있다. 오른쪽에는 사찬왕의 오른쪽 발과 코끼리 머리 장식을 한 오른쪽 다리 일부가 보인다. 악귀의 과장된 표정과 근육, 화려한 채색 등이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천불도, 투루반 베제클리크 석굴 제18굴/6~7세기/흙벽에 채색>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제18굴에서 가져온 천불도의 일부이다. 제18굴은 석굴 중앙에 큰 기둥을 배치한 중심 주굴(柱窟)이며, 천불도는 석굴의 회랑을 장식했다. 천불도에 표현된 각 부처는 가는 흰색 선으로 구획된 사각형 안에 통견(通肩)의 법의를 입고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부처의 눈은 비교적 크고 콧날이 뚜렸하다. 얼굴과 목, 손의 윤곽선에 붉은색을 더해 음영을 주고, 배경에는 짙은 색을 칠했다. 음영의 표현, 어두운 배경색, 라피스 라줄리 안료를 사용한 푸른색은 무두 쿠차 지역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제15굴 서원화 장막>

<1. 서원화 장막, 투푸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서원화 장막>

제15굴 회랑에 그려진 서원화의 가장 윗부분에는 화려한 장막이 묘사되었다. 상하로 배치된 두 단편은 장막의 상단에 짧은 회색천을 내렸고, 그 아래로 그물 문양의 붉은 천을 늘어뜨렸다. 붉은 천 위로 흰색, 초록색 구슬을 엮은 장식물이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위구르어 명문,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6세기부터 개착되었으며 위구르 세력이 이 지역을 지배하던 9~13세기까지 조상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현재 남아 있는 석굴의 벽화는 대체로 위구르가 이 지역을 지배하던 9세기 이후의 것이다. 위구르인들은 원래 마니교를 믿었으나, 10세기 후반부터 투루판 지역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어온 불교로 개종했다. 위구르어 명문은 대체로 공양자의 이름과 공양을 한 연월일에 관한 기록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 단편에 서툰 글씨로 한자가 기록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 기층문화였던 한인(漢人) 문화의 영향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보살을 그린 번(菩薩幡), 둔황/10세기/비단에 채색>


<왼쪽 위>


<왼쪽 아래>


<오른쪽 위>


<오른쪽 아래>

<둔황 막고굴, 2010년>

번(幡)은 불교 건축물을 꾸미거나 의식을 진행할 때 사용하던 걸개그림이다. 둔황 지역에서는 8세기경부터 번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의 번에는 3m가 넘는 감색 비단 바탕에 정면을 향해 선 보살을 연속적으로 배치하였다. 보살은 채색 없이 노란 선으로만 그려졌다. 신체의 굴곡을 나타내는 선과 장신구, 가슴을 가로지르는 옷차림은 당 말기 보살사의 특징과 유사하다. 오른쪽의 번에는 2명의 보살이 그려져 있다. 위쪽의 보살은 가사를 걸친 채 왼쪽을 향하고 있고, 아래쪽 보살은 군의를 입고 천의를 걸친 채 정면을 향해 서 있다. 붉은색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음영을 가해 입체감을 주었다. 보살 옆에는 보살의 이름을 써 넣은 방제가 있는데, 아래 보살의 경우 “나무불휴식보살”이라는 글씨가 확인된다. 둔황 발견 자료 중에는 전문적으로 경전을 베껴쓰는 사경생(寫經生) 이외에 번을 만드는 사람(書幡人)이 언급되어 있어 당시 번의 제작이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호탄(和田)은 타림분지 남서쪽에 위치한 고대의 왕국이다. 옥(玉) 생산지였던 대월지(大月氏)가 있었던 곳으로 고대 동.서교역로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한무제때 실크로드가 개척된 이후 서역문화와, 불교의 전파에 큰 역할을 했던 곳이다. 투루판은 한나라 때 한인들이 거주한 이래로 당나라때 고창국을 비롯한 한족의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지역중심지였던 교하고성, 고창고성을 비롯하여 주변 계곡 등에 많은 불교 유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불상들은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상이 대부분이며, 그 형태는 인도와 중동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이 많다.

<부처의 머리, 호탄/4~5세기/흙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된 호탄 출토의 소조상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큰 예이다. 얼굴의 전반적인 형태와 반쯤 감고 있는 눈의 형식적인 표현이 호탄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인 라와크(Rawak) 스투파에서 발견된 불상과 유사하다. 머리 부분에는 물결치는 듯한 머리카락이 표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여인, 투루판 무르투크/6~7세기/흙에 채색>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불교 조각은 헬레니즘과 로마 조각의 특징을 수용한 간다라 조각의 영향을 바탕으로 하면서, 이를 보다 추상화하고 형식화한 모습으로 재창조되었다. 이 여인상의 둥근 얼굴, 눈썹, 눈, 콧날 등은 간략하고 도식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가슴 부분의 소용돌이 무늬는 갑옷을 연상시킨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1. 광배조각, 호탄/6~7세기/스투코에 채색, 흙>


<2. 부처, 호탄/5~6세기/스투코에 채색>


<3. 세라피스, 호탄/2~3세기/테라코타>

세라피스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에 새롭게 탄생한 신으로, 그리스의 제우스와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대좌에 앉아 있는 세라피스는 왼손에는 풍요의 뿔을 들고, 오른손은 나체의 소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다. 오른편에 서 있는 소년은 침묵의 신 하포크라테스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4. 코끼리, 쿠파 쿰투라 석굴사원/8세기/흙>

<1. 연꽃 위의 부처, 호탄/6~7세기/스투코에 채색>

<2. 연꽃에서 태어나는 모습, 호탄/6~7세기/스투코에 채색>

몇 겹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연꽃 가운데에서 인물이 화생하는 순간을 묘사한 스투코로 만든 조각이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세계인 정토에서 태어날 때 연꽃에서 태어난다고 하는데, 연꽃은 청정함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불교 미술에 자주 이용되는 모티프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3. 명상하는 승려, 둔황/10세기/흙에 채색>

<4. 무사의 머리, 카라샤르/6~7세기/흙>

서역북도에 위치한 카라샤르는 중국 문헌에 언기국 또는 오이국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의 불교 유적은 불교사찰과 석굴사원으로 이루어졌으며, 5~8세기로 편년되는 다양한 불상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5. 천부의 머리, 투루판/6~7세기/흙에 채색>


<5. 천부의 머리, 투루판/6~7세기/흙에 채색>

불교 조각
중앙아시아의 불교 조각은 미란, 호탄, 쿠차, 투루판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이곳의 불교 조각은 소조상이 대부분이며, 양식과 도상은 간다라의 영향을 기반으로 하면서 지역적인 특징을 발전시킨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불교 조각은 주로 서역 남도의 대표적인 불교 중심지인 호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외에 서역 북도의 투루판과 옛 언기국에 속하는 카라샤르 지역의 문화재도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회화 단편, 투루판 토유크 석굴/10~11세기/면에 채색>

화면 왼쪽에 있는 반쯤 열린 문을 향해 세 명의 인물이 나란히 서 있다. 문의 왼쪽에도 또 다른 인물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인다. 배경은 붉은색이며 오른쪽 윗부분은 여러 개의 검은 점으로 덮여 있다. 흰 옷을 입은 세 명의 인물을 마니교도로 보는 견해도 이다. 다만 이들이 쓰고 있는 모자가 투루판 지역에서 출토된 자료에 등장하는 마니교도의 모자와 다른 모양이어서 앞으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과학적 조사를 통해 그림이 그려진 천은 면으로 밝혀졌으며, 이 그림 아래에 다른 밑그림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가운데 관음보살이 있으며, 그 주위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예배하는 보살과 인물이 여럿 그려져 있다. 관음보살이 쓰고 있는 높은 모자의 정면에는 관음보살이 모시는 부처인 아미타여래가 작게 표현되어 있다.


<관음보살이 그려진 번, 투루판 토유크 석굴/9~10세기/면에 채색>

토유크 석굴사원은 고창고성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화염산 골짜기로 천산산맥의 눈이 녹아내린 물이 투루판분지로 흘러드는 계곡이다. 여기에 있는 46기의 석굴은 5세기 말과 7세기 사이에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문서와 불화도 다수 발견되었다. 지금은 위구르 전통 마을이 남아 있는 외진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지만, 사막과 황무지로 이루어진 투루판지역에서 그나마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로에 위치해 있다.

<투루판 토유크(Toyuk, 吐浴溝) 석굴사원, 2010년>

산산현에 위치한 토유크 석굴은 46기의 석굴로 이루어진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문서와 불화도 다수 발견되었다. 화면의 중앙에 앉아 있는 보살은 보관에 작은 불좌상이 있어 일찍부터 관음보살로 판ㅁ여되었다. 보살은 머리 좌우에 원형 장식을 부착하고, 검은 머리카락을 어깨 위로 늘어뜨렸다. 오른손을 가슴 앞에서 들고 있으며, 왼손은 아래로 내려 지물을 받치고 있다. 중앙의 관음보살을 둘러싸고 있는 보살은 원래 3단에 각 2명씩, 모두 6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거의 동일한 크기와 구성을 지닌 그림이 베를린 아시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아시아실 전시품은 대부분 20세기 초 오타니 고즈이(1876~1948년) 탐험대가 수집한 것이다. 오타니 고즈이는 1902년부터 1914년까지 모두 3차에 걸쳐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탐험대를 보냈고, 이후 탐험대 수집푸의 상당수가 오타니의 별장이었던 고베의 니라쿠소에 보관되었다. 1916년 1월, 당시 상인이었던 구하라 후사노스케가 니라쿠소와 문화재를 함께 구입했다. 구하라는 1916년 5월 조선총독부에 오타니 수집품을 기증하였고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관리했다. 이후 오타니 수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하여 중국 국립뤼순박물관, 중국국가도서관, 일본 류코쿠대학, 도쿄국립박물관, 교토국립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