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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보원사지(사적), 통일신라 화엄십찰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보원사지(사적) 절터이다. 보원사(普願寺)는 삼국시대 백제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멀지 않은 곳에 마애여래삼존상(국보)이 있다. 최치원이 쓴 <법장화상전)>에 따르면 부석사 등과 함께 통일신라 화엄종을 대표하는 10대 사찰인 화엄십찰 중 한곳이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 고려초에 크게 융성하였고 왕사,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 탄문이 묻힌 곳이며 주변에 100개의 암자와 1,0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하는 대사찰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폐사되어 절터만 남아 있다.

<서산 보원사지(사적), 2023년>

<서산 보원사지(사적), 2009년>

가람배치는 석교를 지나 중문, 석등, 석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금당과 강당 좌우로 회랑이 배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례 화엄사나 영주 부석사처럼  가람배치가 해가 따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금당에 모셔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철조여래좌상도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그 형태도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한 것으로 볼 때 동시대 화엄종 사찰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

<서산 보원사지(사적)>

<동쪽을 향하고 있는 보원사 가람배치>

절터에서는 대형 철조불상 2구가 출토되었으며 삼국시대 백제 시기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었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와 고려초의 석탑양식을 갖춘 오층석탑(보물), 통돌을 파서 만는 석조(보물), 975년 이곳에서 입적한 법인국사의 승탑(보물), 탑비(보물), 사찰 입구임을 알려주는 당간지주(보물) 둥이 남아 있다.

<멀리서 보이는 보원사지 절터>

절터 앞으로는 가야협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울이 불전이 있는 신성한 영역과 바깥 세상을 공간적으로 분리해 준다. 개울 동쪽으로는 사찰입구입을 알리는 당간지주과 신도들이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마련된 석조(보물)이 배치되어 있다. 서산과 홍성, 예산을 연결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사찰 바깥에는 여행객들이 묵을 수 있는 고려시대 원(院)과 같은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간지주가 있는 입구에서 보이는 모습>

당간지주(보물)는 절터 동쪽 개울 건너에 위치하고 있다. 2개의 기둥이 70cm 정도 간격을 두고 새겨져 있다. 기둥 안쪽에는 장식이 없고, 바깥쪽에 넓은 띠를 새겼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지만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웅장한 멋을 지니고 있다.

<당간지주(보물)>

당간지주 오른편으로 석조가 있고, 그 사이에 넓은 공터가 있다. 아마도 이곳에 여행객을 위한 시설이 있었지 않을까 생각된다.

<당간 지주 오른 쪽으로 보이는 석조(보물)>

석조(보물)는 물을 담는 그릇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회, 사원, 사찰 입구에 놓여 있다. 석조에 담긴 물로 손을 씻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 석조는 화강석 내부를 파서 만든 직사각형 모양으로 통일신라 석조 양식을 하고 있다.

<보원사지 석조(보물)>

당간지주를 지나면 절터 앞을 남북으로 흐르는 개울이 있고 지금은 다리가 놓여 있다. 원래 돌다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리를 건너면 사찰 경내 출입하는 중문이 있다.

<당간지주에서 보이는 보원사지 절터>

<사찰 앞을 흐르는 개천과 가야협 계곡>

개울을 건너면 주불전이 있는 중심영역을 출입하는 중문이 있다. 중심영역은 중문, 석탑, 금당, 강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회랑으로 둘러져 있다. 경주 불국사와 비슷한 공간배치이다.  약 1m 정도의 석축을 쌓아 공간을 조성하였다.

<보원사 중문을 오르는 계단>

<남쪽편 석축>

<북쪽편 석축>

<주불전이 있는 공간>

오층석탑(보물)은  고려초에 세워진 것으로 높이 9m의 비교적 큰 규모의 석탑이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사자상을, 윗층 기단에는 팔부중상을 새겨놓고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얇고 넓게 만들었다.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백제 석탑의 특징도 일부 반영되어 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뒷편에서 본 모습>

오층석탑 뒷편으로 철조불상을 모셨던 금당터가 있다. 금당터에는 불상이 모셔졌던 자리와 건물 기둥이 놓였던 주춧돌, 기단석 등이 남아 있다. 금당 좌우에는 회랑으로 연결된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당 뒷편에는 강당이 있었다고 한다.

 

<보원사지 금당터>

<기단을 쌓았던 석재>

금당지
오층석탑에서 서쪽으로 9.2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며, 2차례에 걸쳐 개축이 이루어졌고 근래까지 민가가 들어서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금당의 규모는 남북 18.0m, 동서 16.0m의 장방형으로 확인되었다. 기단 구조는 할석을 각 기단의 바깥면에 맞추고 4~5단으로 축조하였다. 내부에는 불상대좌의 보호각인 닷집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초석 4기가 확인되며, 금당지 하부에는 남북 18.0m, 동서 2.1m만 남아 있는 기단이 확인된다. 기단에서 서쪽으로 90cm 내에는 할석을 2~3줄로 정연하게 만든 뒷채움시설이 확인되고, 연화문수막새, 당초문암막새, 무문전 등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안내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9년)

금당터 가운데에는 불상이 모셔졌던 닫집을 받치는  건물초석을 볼 수 있다. 절터에서는 2구이 철조불상이 출토되었는데 하나는 통일신라 때, 다른 하나는 고려초에 조성된 불상이다. 어떤 불상이 이곳에서 모셔졌는지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때 조성된 불상이 이곳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불상이 모셔졌던 닫집을 받치는 초석>

<뒤에서 본 모습>

금당에 모셔졌던 것으로 추정된 철조여래좌상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형태나 양식적으로 거의 유사한 불상이다. 8세기 중엽에 조성된 불상으로 현재 출토된 철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처. 철조불좌상, 통일신라 8세기,서산 운산면)>

두 손은 없어졌지만 손목의 형태 등으로 볼 때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가모니를 형상화한 불상으로 보인다. 몸에 비해 큰 머리, 부자연스러운 옷주름 등 투박하면서, 호족세력의 힘을 과시하는 고려 초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서산 보원사지 철조여래좌상, 고려 11세기, 2022년>

<금당터 뒷편 강당과 회랑이 있던 자리>

<앞쪽 회랑터>

<보원사지 절터>

강당 뒷편에는 축대로 약간 높게 공간을 조성되어 있다. 고려초 국사와 왕사를 지냈으며 이곳에서 입적했던 법인국사 탄문의 사리를 모신 승탑과 탑비가 모셔져 있다. 법인국사는 신라 말과 고려 초에 활약한 유명한 승려로 경기도 광주 출신이다. 북한산 장의사에서 불경 등을 배웠으며, 고려 광종과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광종 때 왕사와 국사가 되었으며, 보원사에서 입적하였다. 광종은 ‘법인(法印)’이라 시호와, ‘보승(寶乘)’이라는 탑이름을 내렸다.

<

법인국사탑과 탑비>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보물)>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보물)>

보원사지 절터는 2006년부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하였다. 발굴,조사를 통해 금당터를 비롯한 건물터 등이 확인되었다. 절터에서는 발굴,조사결과 출토된 건물 주춧돌 등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절터에서 출토된 석조유물>

<주춧돌과 기단 석재>

<주춧돌>

<건물 기단 석재 등>

<기와 조각>

<발굴당시 모습(당간지주 부근 건물터)>

<중문 주변>

<중문 안 회랑 건물터>

<금당터>

<금당터 북쪽 건물터>

<금당터 남쪽 건물터>

<남쪽 건물터>

<금동불입상, 서산 보원사터 출토, 삼국시대 6세기 중엽, 국립중앙박물관>

서산 보원사지, 사적
서산 보원사지에 있었던 사찰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내력을 알 수는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또는 삼국통일 이전 백제시대 건립된 사찰로 추정된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쓴 <법장화상(法藏和尙傳)>에 따르면, 화엄사.해인사 등에 더불어 신라 10산 10사찰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보원사지의 면적은 10만 2,886㎡이다. 일대의 절터는 모두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기와조각 등이 넓게 산재해 있어, 많은 사찰 전각들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는 석조, 당간지주, 5층석탑, 법인국사보승탑.법인국사보승탑비 등이 있으며, 이러한 유물을 통해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후 이곳에서 백제 때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입상이 출토되었고, 부근에 백제 때의 마애불로 유명한 국보 서산마애삼존불상이 있어, 삼국통일 전 백제시대의 철조여래좌상도 이곳에서 출토된 것이다.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2. 안내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9년
  3.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5.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