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옛 충청도 면천군(沔川郡) 관아터이다. 관아 건물들은 일제강점기 이후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서 허물어지고 그 터만 남아 있다. 2007년 옛 동헌 출입문인 풍락루를 복원했으며, 면천초등학교가 사용했던 객사터는 2016년 학교가 이전하면서 객사건물을 복원하였다. 읍치를 둘러싸고 있던 읍성 성벽과 객사터에 남아 있는 수령 1,100년의 면천 은행나무, 객사터 앞 오래된 낡은 주택들과 상점들이 읍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충청도 면천군 관아터>
면천군은 종4품 군수가 고을수령인 비교적 큰 규모의 고을로 아산만 연안수로를 지키는 해상교통의 거점이었다. 군사조직은 홍주진관에 속했으며 종4품 동첨절제사를, 산하에 수군(선군,船軍)을 두고 있었다. 조선초에는 충청지역 세금으로 걷어들인 곡식을 면천지역으로 운송하여 창고에 두었으나 성종 때 공세곶으로 창고로 옮기면서 그 기능이 약해졌다. 경기도와 가까운 지역으로 해산물과 소금의 산지이기도 했다. 읍치에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견고한 읍성이 세워졌다.
<면천군지도, 여지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3년>
<면천군 읍치 위성지도>
<면천군 객사>
<가운데 정청>
<왼쪽 건물>
<오른쪽 건물>
<면천초등학교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교문>
객사 마당에는 수령 1,100년이 넘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남아 있다. 고려 개국공신인 복지겸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 나무이다.
<면천은행나무(천연기념물)>
면천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이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년 정도 된 것으로, 면천두견주와 함께 면천의 명물로 손꼽힌다. 동남쪽에 서 있는 나무는 운동장을 정리할 때 1m 정도 흙을 덮었다고 하나 서장이 좋은 편이다. 운동장 안쪽에 서 있는 나무는 밑줄기가 썩어 커다란 구멍이 있었으나 치료한 후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다. 이들 은행나무에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과 관련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 복지겸이 면천에 귀향하여 병을 얻어 앓고 있었는데 모든 약이 효과가 없었다. 그의 딸이 아버지의 병환을 낫게 해달라고 아미산에 올라가 백일기도를 드렸더니 신령이 나타나 아미산의 진달래 꽃과 안샘물로 술을 빚어 드리고 집 앞에 은행나무를 심고 정성을 드리면 나을 것이라고 하여 그대로 행하였더니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201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관아터에 남아 있는 고목>
동헌 건물은 복원되지 않고 빈터만 남아 있으며 문루인 풍락루만 2007년에 옛 사진을 참조하여 복원하였다.
<동헌 건물터>
<동헌 문루인 풍락루>
풍락루(豊樂樓)
풍락루는 지금은 사라진 면천관아의 문루였던 누각으로 정확한 기록이 없어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원래는 반월루라 하였으나 1852년 당시 면천군수였던 이관영이 중수한 후 ‘풍락루’라 이름 지어 현판을 걸었고 풍락루기를 남겼다고 한다. 풍락루라 한 것은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으로 살기 좋은 땅에서 백성과 더불어 평안하고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그 후 노후와 붕괴될 위험이 있어 1943년 철거하였다가 2007년 철거 전의 사진자료를 토대로 하여 2층 누각형식의 팔작지붕 건물로 복원하였다.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관아터 앞에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옛 읍치에서 살았던 사람들 살고 있는 지역중심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낡은 상점들에서 옛 읍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관아터 앞 큰 길과 상점들>
<낡은 2층 상점건물>
읍치를 둘러싸고 있는 면천읍성은 초선초 해안을 노략질하던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읍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세종 때 읍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면천읍성>
<출처>
-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3년
- “면천군(沔川郡)”, sillokwiki,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