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전의면 비암사에 있는 불전인 극락보전(보물)이다. 조선후기 17세기에 지어진 불전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일반적인 불전 건물과는 달리 옆면 2칸을 하고 있어 임진왜란 이후 형식적으로 간략화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는데 옆면을 1칸 줄였기때문에 내부는 협소한 편이다. 앞면 창호는 문설주 기둥이 있는 조선중기 이전 건축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조선후기 불전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세종 비암사 극락보전(보물)>
<2칸으로 된 옆면>
<극락보전 현판>
<지붕을 받치는 공포>
앞면 양쪽 창호는 조선중기 이전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문은 4분할하여 가운데 2짝은 여닫이가 있는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양쪽 1짝은 창문처럼 사용하고 있다. 문짝 사이에 문설주가 있는데 조선중기 이전 건축물(맹씨행단, 도산서원 강당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문설주가 있는 오른쪽 창호>
<가운데 창호>
<왼쪽 창호>
<정면에서 본 모습>
<왼쪽 아래에서 본 모습>
<오른쪽에서 본 모습>
비암사는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졌으나 1960년 이곳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에 쓰여진 내용으로 삼국통일 후 백제 유민들을 위해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 이후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세종 비암사>
<비암사 극락보전과 삼층석탑>
비암사 극락보전, 보물
비암사는 통일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처음 지은 절이라고 전한다. 그 이후의 절의 역사는 확실하게 전하지 않는다. 비암사 극락보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여덟 팔(八)’자의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또한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내부에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위에 화려한 닫집을 마련하였다.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안내문, 세종 비암사, 2023년)
<출처>
- 안내문, 세종 비암사, 2023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