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인들의 종교는 현세적인 다신교이며, 점성술도 현세의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발전했다. 티크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은 불규칙적이고 잦은 범람과 가뭄이 있었으며 사방이 뚫려 있는 개방적인 지형때문에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자연환경의 사람들의 세계관과 종교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재앙을 극복하는데 힘써야 했던 메소포타미아인들은 현세적인 삶을 꾸려나갔으며 문화적으로도 암울하고 비관주의적인 특징이 강했다. 이런 점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문명, 르네상스, 산업혁명 이후 현대 문명사회와 비슷한 경향을 보여준다.
인안나 여신에게 바친다는 명문을 새긴 방해석 그릇이다. 이와 같은 봉헌용 그릇은 신심을 표현하고 소원 성취를 빌기 위해 신전에 바치는 물품이었다. 이처럼 뛰어난 품질의 그릇을 바치려면 수입한 돌과 솜씨 좋은 장인이 필요하므로 봉헌자들은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인안나께, 헤티의 아들이자 수석 상인 아카-엔릴이 (이 그릇을) 봉헌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인안나 여신에게 바친다는 명문을 새긴 그릇이다. 이와 같은 봉헌용 그릇은 신심을 표현하고 소원 성취를 빌기 위해 신전에 바치는 물품이었다. 이처럼 뛰어난 품질의 그릇을 바치려면 수입한 돌과 솜씨 좋은 장인이 필요하므로 봉헌자들은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인안나 여신께, ()한 파-아누쿠쉬의 아내 헤-우투가 (이 그릇을) 봉헌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경건한 자세로 선 남성의 모습을 한 봉헌용 상이다. 눈썹과 눈은 조개껍데기, 청금석 또는 다른 귀금속으로 상감 세공했을 것이다. 초기 왕조 시대에 일반적으로 착용했던 여러겹 짠 치마를 입고 있다. 커다란 눈과 맞잡은 손은 신성에 압도되었다는 뜻이며, 봉헌자들은 신에게 존경을 표한다는 의미로 신전 안에 이러한 값비싼 상을 바쳤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화면 왼쪽에 신전의 정면이 보이고 세 사람이 신전으로 향하고 있다. 첫번째 사람은 그릇에 액체를 붓고 있고, 세번째 사람은 손에 그릇 같은 물체를 들고 있다. 신전 앞에는 네 발 짐승 한 마리와 그릇들, 용도를 알 수 없는 두 개의 물체가 보인다. 메소포타미아 미술에서 신전은 기둥과 상인방을 표시하는 몇 개의 선을 긋고 한가운데 문을 둔 정면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무릎 꿇은 남자 모양의 장식이 윗부분에 달린 구리로 만든 말뚝이다. 오른팔은 오른쪽 허벅지에 놓여 있으며, 왼팔은 가슴에 올리고 있다. 이 말뚝은 신전이라는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려고 신전 기초에 묻은 것이다. 이처럼 기원전 2000년대에는 상이나 인물 형상을 한 말뚝을 신전 기초에 묻는 전통이 있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신-바빌라 시대의 왕 나부쿠두리우쭈르 2세기 수도 바빌리에 어머니 여신 닌막을 위한 에막 신전을 재건하며 작성한 원통형 문서이다. 명문은 여신이 자신과 자기 후손에게 복을 주기 바란다는 기도로 끝을 맺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문서를 건물 기초에 묻는 전통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 왔는데, 신-바빌리 시대는 물론 후대 아케메네스 왕조와 헬레니즘 시대 통치자들도 이 전통을 따랐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연회와 술 바치는 장면을 묘사한 판 장식을 봉헌하는 것은 기원전 3000~2000년대에 메소포타미아 종교 활동의 한 방법이었다. 여기에는 대개 왕과 왕비, 남자와 여자 사제, 시종들이 한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여러 단으로 묘사되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남긴 명문은 고대인들의 신앙생활과 의례를 재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보통 이런 용도의 부조에는 중간에 벽에 걸기 위한 구멍이 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이 점토판 조각은 아루루 여신에게 바치는 슈메르의 의례용 노래를 기록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노래는 연주에 사용한 악기의 이름을 따 ‘발락’이라고 불렀다. 출산의 여신 우루루의 권능을 찬양하고, 한 도시가 파괴된 것을 통탄하는 내용이다. 발락의 특징은 단어와 문구를 슬프고 가슴 아픈듯한 가락으로 되풀이 하는 것이다. 사제가 축제나 신전을 짓는 행사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청동으로 주조한 황소 머리 상으로 곱슬곱슬한 수염이 정교하게 표현되었다. 숙련된 장인의 기술에 더해 황소의 눈에 상감 세공된 조개껍데기와 청금석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고대에는 현악기에 이 황소 장식을 부착하였다. 악기는 소의 울음을 닮은 저음의 소리를 냈을 것이다. 현악기는 왕실과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때나 군대가 행진할 때 또는 연회를 베풀때도 연주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점토를 빚어 만든 남성 사제 상으로 긴 머리와 수염, 돌출된 눈썹과 큰 눈이 특징이다. 높고 둥근 머리 장식은 물고기 모양 겉옷인데, 땅 아래 담수 영역인 압주에 살았던 태고의 ‘압칼루’ 현자들과 소통하려고 사제들이 입었던 옷이다. 이러한 상은 주술적 성격을 띠는 보호 장치로 건물 아래에 다량으로 묻었다. 앗슈르의 수도 님루드에 있는 궁전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오른손에 철퇴를, 왼손에 초승달 모양의 칼을 든 이쉬타르 여신의 모습을 세 줄의 명문과 함께 인장에 새겼다. 이쉬타르의 어깨에서도 무기가 솟고 있다. 이쉬타르의 앞에는 곤봉을 든 남자가 단에 올라 서 있다. 남자의 뒤에 서 있는 여신이 간청하는 모습으로 이쉬타르에게 그를 소개하고 있다. 인장의 주인을 알려주는 명문에는 ‘피타루, 이수메신의 아들이며 네르갈 신의 하인’이라고 적혀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구획된 공간 중앙에 놓인 이쉬타르 여신상을 묘사한 옥수제 인장이다. 이쉬타르의 왕관과 대각선으로 맨 화살통, 그리고 몸에서 별이 솟아 나온다. 그 앞에는 무릎을 꿇은 숭배자가 있고 두 정령이 공간을 보호한다. 메소포타미아의 신전 유적은 남아 있지만 그 안에 놓였던 신상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인장의 숭배 장면으로 실제 신전에서 숭배가 행해졌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신격을 상징하는 뿔 모양 머리 장식을 갖춘 라마 여신을 얕은 조로 새긴 비다. 두 팔을 들어 위계가 더 높은 신에게 남성을(보통은 왕을) 데려가는 ‘중재의 신’으로서 경건한 모습을 표현했다. 카슈 시대(기원전 1595~1155년)의 나지-미룻타쉬 왕이 인안나에게 바치는 슈메르어 명문이 치마에 가득 새겨져 있다. 이 비는 우룩의 에안나 신전 지구에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메소포타미아의 종교
메소포나이마인들이 섬긴 신은 한때 3000명에 달할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신을 숭배하였으며 신의 위상과 성격도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도시마다 중요하게 섬긴 신과 이에 동반되는 의례에도 차이가 있었다. 정치, 사회, 역사의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 종교의 양상을 단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신과 신전 건축, 의례 행위는 종교를 이해하는 중요한 축이다. 하늘신 아누, 우주를 관장하는 신 엔릴, 태양신이자 정의의 신 샤마쉬,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쉬타르(인안나)는 문헌과 예술에 자주 등장하는 주요 신이었다. 신의 거주지이자 예배와 봉헌이 이루어지는 대규모 신전이 기원전 4000~3000년부터 우룩을 필두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신들의 축복을 바라는 의례는 신전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과 궁전에서도 행해졌다. 사람들은 신전에 작은 조각상과 그릇을 봉헌함으로써 신의 보호를 받고자 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도시 국가 라가쉬의 왕 구데아(기원전 2150~2125 재위)를 섬록암으로 조각한 상이다. 구데아는 단순하고도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되었으며 맞잡은 두 손과 커다란 눈은 사려깊고 경건한 상징을 나타낸다. 오른팔의 다부진 근육은 신체 건강한 통치자라는 점을 드러낸다. 구데아는 라가쉬의 신전 재건을 기념하려고 이를 비롯한 여러 조각상의 제작을 지시했다. 이 내용이 처마에 규메르어로 적혀 있다. 구데아 왕의 상은 라가쉬의 신전에도 놓였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통치자들은 자신을 ‘건물 짓는 사람’으로 이상화하기도 했다. 사람 모양 말뚝은 건물 아래에 묻는 의례 물품으로, 구리 합금으로 주조되었다. 바구니를 이고 있는 모습은 신전을 짓는데 쓸 첫 벽돌을 제작하는 것과 같이 기념할 만한 건축 행사에 참여했다는 표현이다. 하반신에 새겨진 명문은 우르 제3왕조의 통치자 우르-남마(기원전 2112~2095년 재위)가 인안나 여신의 신전을 지으면서 이를 묻었다고 적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글은 이미지와 함께 개인을 나타내는 중요한 축이었다. 신전 재정비, 대규모 건축 사업 같은 통치자의 주요 공적을 기록한 글은 통치자의 상만큼 중요했다. 봉헌용 원뿔은 중요한 건물을 세울 떄 그 부지를 신성하게 하려고 벽이나 기초에 묻었던 물건이다. 슈메르어로 쓴 명문에 따르면 이 원뿔은 이신이라는 도시를 다스린 리핏-이쉬타르가 신전 에-닉시사(‘정의의 집’)를 남가룸이라는 도시에 세우면서 바친것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초인적인 존재로 생각되는 이 작은 두상은 눈매가 깊고 눈썹이 두드러지며 수염이 풍성하여 앗슈르왕의 표준 이미지와 유사하다. 끝단을 접어 올린 관은 메소포타미아 조각에 흔히 나타나지만, 관만 바꿔 씌운다면 신과 왕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인이 다를 재료로 더 큰 상을 만들기 전에 제작해 본 견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우아하게 정돈된 턱수염과 잘 다듬어진 콧수염, 머리에 터번을 두른 남자를 실제 인물의 크기로 만들었다. 눈은 귀한 재료로 상감되어 있었을 것이다. 구리 주조라는 혁신적인 기술과 값비싼 재료를 쓴 것으로 보아 통치자나 지배층에 있는 사람이 제작을 의뢰하였을 것이다. 인물의 개성적 특징을 이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한 초상 조각은 메소포타미아 예술에서 매우 드물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통치자의 상과 초상 미술
‘초상’이라는 단어는 한 개인을 그대로 재현한 것을 뜻하며 묘사 대상과 재현된 이미지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묘사 대상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의 관념 체계에서는 이러한 초상 미술의 개념이 성립되지 않았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통치자를 형상화할 때 통치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속성을 조합했는데 그 문화에서 통하는 약속된 표현과 엄격한 양식적 전통을 따랐기 때문에, 명문이 함께 있어야만 어느 왕 상인지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더욱이 초상은 대상을 단순히 ‘다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가진 본질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초상이 왕의 대리적 성격을 지닌다고 믿었기 때문에 전쟁이나 분쟁이 나면 상의 감각기관을 훼손하여 왕의 이미지를 ‘살해’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눈, 코, 입, 귀가 없는 통치자들은 감각을 잃게 되고 이들의 초상은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우르의 1237호 무덤은 시종 74명이 묻힌 채 발견된 ‘거대한 죽음의 유구’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중 68명은 여성으로, 이 장신구들은 그들이 착용했던 것이다. 목걸이는 금과 청금석을 번갈아 배열했다. 은핀의머리도 청금석으로 만들었다. 이 같은 핀은 옷을 여미거나 인장과 작은 장신구를 옷에 고정하는데 쓰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왕의 묘’로 불리는 우르의 789호 무덤에서 발굴된 것이다. 금과 청금석을 쌍원추형, 원통형으로 만들어 줄로 엮었다. 팔찌로 추정되는 장신구에는 홍옥수 구슬도 사용되었다. 장신구에 광채나는 재료를 쓰는 것이 중요했고, 부적의 성격이 있는 특정한 원석을 사용하는 것도 제의적 힘이 생기는 데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우르왕실묘의 부장품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우르에서 2000기가 넘는 무덤이 1920년대에 발굴되었다. 이 가운데 16개 무덤에는 금, 은, 청금석, 홍옥수로 만든 장신구, 준보석으로 만든 원통형 인장, 금제 그릇, 악기와 같이 화려한 부장품이 묻혀 있었다. 무덤의 주인과 함께 묻힌 시종을의 수와 부장품의 규모를 바탕으로 이 무덤에는 우르의 왕실묘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이 부장품에서 초기 왕조시대(기원전 약 2900~2350년)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많은 단서를 얻었다. 특히 장신구의 재료로 금, 은, 청금석이 의도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지 않아 교역으로 구해야 하는 귀한 재료는 특권을 상징하고 이러한 귀금속이 내는 빛은 상서롭고 고결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뛰어난 세공 기술로 재료의 속성은 한층 강렬하게 빛울 발했다. 장신구는 다른 부장품과 함께 부적으로서 죽은 자를 보호하는 제의적인 힘을 가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예술과 정체성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예술과 물질문화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인장이 가장 대표적인 예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도안과 명문을 주인이 선택했다. 생전 혹은 사후에 걸치는 장신구와 옷도 착용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역할을 했다. 기원전 3000년 이후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는 인물상이 많이 제작되었다. 값비싼 석상을 주문해 신전에 봉헌하려는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릴 수 있는 봉헌 명문을 새겨 넣어 자신을 드러냈다. 메소포타미아의 인물상은 구체성이 없는 유사한 모습으로 조각만으로는 자신을 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통치자들의 ‘초상’은 개별 인물의 특징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왕위에 오를만한 자격으로 여겨지는 속성들을 조합해 완성하였다. 튼튼한 팔, 큰 눈, 얼굴을 뒤덮는 수염, 크고 윤곽이 뚜렷한 근육, 특정한 옷과 머리 장식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물상은 대체로 비슷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어느 왕의 상이라고 특정할 수 있도록 명문을 새겼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3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 ‘메소포타미아’, 위키백과,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