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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치악산 구룡사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에 위치한 사찰인 구룡사(龜龍寺)이다. 치악산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영서지방을 대표하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하며 도선, 무학 등 이름있는 고승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오랜 내력을 보여주는 석탑이나 불전 등 문화재는 남아 있지 않으며 조선후기 숙종 때 대웅전과 보광루 등을 중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사찰 계곡 입구에는 조선시대 소나무 벌채를 금지하는 황장금표(黃膓禁標)가 있어 예로부터 울창한 숲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주 치악산 구룡사>

구룡사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원래 대웅전 자리에는 아홉마리 용이 사는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의상은 이곳이 마음에 들어 용들과 도술시합을 하여 사는 용들을 물리치고 절을 지었는데, 아홉 마리의 용이 살던 곳이라 하여 구룡사(九龍寺)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 사찰이 퇴락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한 노인이 찾아와 절 입구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약해진 것이라 하여 바위를 깨 버렸으나, 이후 절은 더욱 쇠약해져 갔습니다. 이때 한 도승이 나타나 절이 쇠약해진 것은 거북바위를 깨서 혈맥이 끊겼기 때문이라 하였으며, 그때부터 거북바위를 살리는 뜻에서 절 이름을 지금의 구룡사(龜龍寺)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안내문, 국립공원공단, 2023년)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들은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경사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과 보광루가 마주 보고 있으며 아래쪽에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큰 규모의 사천왕문이 자리잡고 있다. 마당 서쪽에 승려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있으며 대웅전 양쪽으로 관음전, 응진전, 지장전 등 불전들이 자리잡고 있다.

<구룡사 가람배치>

<계곡에서 보이는 구룡사>

들어가는길/치악산 계곡

치악산은 16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으로 비로봉(1,288m)를 중심으로  많은  봉우리들과 가파른 계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산세는 비교적 험한편이며 계곡의 수량은 풍부하다. 구룡사가 있는 계곡은 비로봉 북쪽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숲이 울창하고 맑고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주차장에서 구룡사로 들어가는 입구>

<구룡사 계곡>

<일주문>

<국사당>

구룡사는 출입문은 사천왕문이다. 앞면 3칸의 2층 건물로 상당히 큰 편이다. 대형 사찰에서도 보기 힘든 규모로 최근에 크게 지은 것으로 보인다.

<사천왕문>

보광루는 구룡사 경내를 출입하는 문루이자 강당 역할을 했던 건물이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2층 문루 건물이다. 강당 역할을 하고 있는 2층 누각은 대웅전을 향해 개방시킨 형태이다. 상량문에 따르면 조선후기 숙종 때(1707년) 다시 지은 건물이라 한다.

<사천왕문에서 보이는 보광루>

<보광루>

구룡사 중심영역

중심영역에는 대웅전과 보광루가 마주보고 있으며, 대웅전 양쪽으로 관음전 등 여려 불전들을 두고 있다. 승려들이 기거하는 요사채들은 주로 마당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구룡사 중심영역>

주불전인 대웅전은 앞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조선후기 중건할 때 지었던 옛 건물은 2003년 화재로 불타버리고 현재의 건물은 원형에 맞게 복원한 것이다.

<대웅전>

<대웅전 내부>

<대웅전에서 보이는 보광루>

<보광루에서 보이는 대웅전>

대웅전 오른편에는 관음전, 응진전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뒤로 독립된 형태의 요사채가 있다. 왼편에는 지장전과 삼성각이 있다.

<관음전>

<관음전 내부>

<응진전>

<지장전>

<삼성각>

대웅전 앞 마당 오른쪽에는 심검당, 설선당, 적묵당 등 요사채들이 자리집고 있다.

<마당 왼쪽 요사채들>

<마당 오른쪽 요사채>

<관음전 뒷편 요사채>

치악산 구룡사
구룡사는 원주 8경중 제1경으로 유서깊은 사찰이다. 신라의 승려 의상이 668년(문무왕 8년) 창건하였다고 하며,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하고 있다. 원래 지금 절터의 깊은 연못에는 아홉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는데, 의상이 못을 메우고 절을 지으려 하자 용들은 비를 내려 온 산을 물로 채웠다. 이에 부적 한 장을 그려 연못에 넣자 갑자기 연못물이 말라버리고 용 아홉 마리는 도망쳤다고 한다. 의상은 철을 창건한 뒤 이러한 연유를 기념하기 위하여 절이름을 구룡사(九龍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청건 이후 도선.무학.휴정 등의 고승들이 머물면서 영서지방 으뜸 사찰의 지위를 지켜왔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부터 사세가 기우러지자 어떤 노인이 나타나 이르기를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쇠약해졌으니 그 혈을 끊으라”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거북바위 등에 구멍을 뚫어 혈을 끊었지만 계속 사세는 쇠퇴하였으며, 거북바위의 혈을 다시 잇는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구룡사(龜龍寺)로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706년(숙종 32년) 중수되었고, 여지도서 원주목조에는 ‘구룡사는 85칸이다. 치악산 북쪽에 있다. 절 앞에 용연이 있는데 홍순 가뭄이 들 때마다 기도하면 효험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 구룡사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안석경의 삽교집에는 지금은 볼 없는 대승암과백련당, 월봉암 등 선승들이 살았던 암자와 호랑이를 만난일 등 구룡사 주변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절의 지정문화재는 강원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던 대웅전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5호 보광루가 있다. 대웅전은 2003년 화재로 불에 타고 지금 대웅전은 2004년 실측자료를 바탕으로 복원하였다. 그밖의 건물은 삼성각.심검당.설선당.적묵당.천왕문.종루.일주문.국사단 등 모두 19동이 있다. 구룡사에 이르는 길에는 곧게 자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는데, 이는 조선시대에 세운 황장금표와 관련이 있다. 매표소 부근에 있는 황장금표는 치악산 일대의 송림에 대한 무단벌채를 금지하는 표시로, 구룡마을 입구와 치악산 정상 부근에 황장외금표가 함께 남아 있는데 이러한 예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안내문, 원주 구룡사, 2023년)

<출처>

  1. 안내문, 원주 구룡사, 2023년
  2. ‘원주구룡사’, 위키백과, 2023년
  3. ‘구룡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