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감산사 절터에 있었던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이다. 통일신라 성덕왕 때(719년)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조성한 불상이다. 신체의 비례는 인체에 비례와 비슷하며, 각 비례에서 주는 전체적인 조형미도 뛰어난 편이다. 얼굴의 세부 표현도 섬세하며 사실적이다. 광배 뒷면에 불상을 조성한 내력에 대해서 기록해 놓고 있다.
<감산사 석조 아미타불 입상(石彫 阿彌陀佛 立像), 통일신라 719년 무렵, 경주 감산사터 출토, 국보>
<왼쪽에서 본 모습>
아미타여래의 얼굴을 풍만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눈.코.입 등 세부 표현 또한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얼굴 부분>
연화대좌는 맨아래에 8각형을 기본으로 그 위에 연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연화대좌>
<감산사 아미타여래(국보), 미륵보살(국보)>
<광배 뒷편에 새겨진 글자 탁본>
아미타불에 새겨진 글
아버지 인장 일길찬이 47세에 돌아가시자 동해흔지(지금의 포항) 앞바다에 그의 유골을 뿌렸다. 후대에 그를 따르고 사랑하는 사람은 이 착함이 그들을 도울 것이다. 중아찬 김지전(김지성)은 살아 있을 때 이미 이 착한 업을 이루었으므로 성덕왕 19년 4월 22일 김지성이 돌아가자 그를 위해서도 이것을 만든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감산사 미륵보살.아미타불,
두 불상은 경주의 감산사(甘山寺) 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광배 뒷면에는 이 불상을 만든 사람, 만든 목적 등이 자세하게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집사부시랑(執事部侍郞) 김지성이 부모의 은혜와 임금의 언덕에 보답하고자 성덕왕 18년(719)에 만들기 시작한 아미타불과 미륵보살이다. 불상을 만들던 도중 성덕왕 19년(720)에 김지성이 죽자 김지성의 명복을 비는 내용도 아미타불 광배 뒷면에 함께 새겨졌다. 미륵보살은 온화한 표정과 허리를 약간 비튼 자세를 보이며, 이미타불은 엄숙한 표정으로 곧게 선 자세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8세기 전반 석조 조각의 수준을 잘 보여 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감산사(甘山寺)는 불국사와 신라 원성왕릉(괘릉)에서 멀지 않은 마을 뒷편에 남아 있는 옛 절터이다. 통일신라 성덕왕 때(719년)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창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 절터에는 석조비로자불상을 모신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불전들이 들어서 있으며, 뒷편에 통일신라 때 조성된 삼층석탑과 주변 공터만이 옛절터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출토된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은 현재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불상에 적힌 기록 외 감산사 내력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경주 감산사 절터>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 ‘국보 경주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