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에 있는 고택인 만취당(晩翠堂, 보물)이다. 김사원이 1582년에 지은 건물로 자신의 호를 따서 만취당이라 불렀다. 원래는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원 강당 규모로 크게 지었는데 후대에 마을 안동김씨 종가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었다. ‘만취당’이라 적힌 현판은 석봉 한호의 친필이다. 대청마루에는 이곳을 찾은 온계 이해, 서애 류성룡 등이 남긴 글들이 남아 있다. 영조 때 동쪽으로 2칸, 서쪽으로 1칸씩 온돌방을 증축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한옥 건물 중에서도 상당히 오래된 건물로 16세기 사대부계층이 살았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원래의 건물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어 당시 건축양식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의성 만취당(보물)>
<남쪽에서 본 모습>
<동쪽 길에서 본 모습>
<뒷편에서 본 모습>
건물은 ‘T’자 형을 하고 있는데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온돌방을 달아내었다. 대청마루는 앞면 2칸, 옆면 4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사찰 강당이나 관아 누각을 연상시킨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난 연등천장을 하고있다. 앞면 추녀에는 활주를 세워 지붕의 무게를 받치도록 하였다.
<의성 만취당>
<가운데 대청마루>
<대청마루 내부>
<서까래가 드러난 연등천장>
<지붕을 받치는 익공형 공포>
<대청마루에 걸린 현판>
마루 서쪽에는 여닫이 판문을, 남쪽에는 띠살들문을 달았으며 동쪽 벽면에는 문설 기둥만을 세웠다. 동쪽 벽면에 있는 문설 기둥은 조선중기 목조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마루 남쪽 띠살들문>
<서쪽 여닫이 판문>
<동쪽 문설기둥>
북쪽에는 동쪽 2칸, 서쪽 2칸 등 3칸을 달아내었다. 조선후기 영조 때 증축한 부분이다. 동쪽 온돌방에는 남쪽에 쪽마루와 아궁이를 두었다. ‘복재(復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동쪽편 온돌방>
김사원(金士元, 1539~1601)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이 건물을 지었다. 김사원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지역민을 구제하여 지역민의 추앙을 받았고,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만취당 옆에 종택이 있는데 10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사촌마을은 구한말 의병활동으로 만취당을 제외하고 대부분 불타버렸는데 당시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주로 남아 있다.
<만취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종택>
<만취당 뒷마당>
<만취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사촌마을>
의성 만취당(晩翠堂), 보물
만취당은 퇴계 이황의 제자 만취당 김사원이 학문을 닦고 후배들을 기르기 위해 세운 건물로, 현판은 석봉 한호가 썼다. 김사원이 선조 15년(1582)에 짓기 시작하여 선조 17년(184)에 완공하였다. 이후 영조 3년(1727)에 동쪽으로 2칸, 영조 40년(1764)에 서쪽으로 1칸을 덧붙여 지어 현재와 같은 ‘ㅜ’자형 평민이 완성되었다. 처음에 지은 대청과 나중에 지은 온돌방 부분은 문틀을 짜 맞추는 방법이 서로 달라 지은 시기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기둥 위의 처마나 지붕은 처음 지을 당시의 모습을 손상시키지 않고 덧붙여 지어 원래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만취당은 16세기 사대부집의 주거와 선비문화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건물이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의성군청, 2023년)
<출처>
- 안내문, 의성군청, 2023년
- ‘보물 의성 만취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 ‘의성 만취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 ‘의성 만취당’, 디지털의성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