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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덕천마을 송소 고택, 99칸의 대저택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마을에 있는 송소고택(松韶古宅)이다. 19세기말 만석군 심호택 일가가 조상의 본가인 덕천마을로 옮기면서 지은 99칸 규모의 대저택이다. 경북 북부지역 한옥 양식을 하고 있으며 공간을 넓게 쓰고 있다. 각 건물마다 독립된 마당을 두고 있으며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건물은 큰사랑채, 작은사랑채, 안채, 별채, 행랑채(문간채), 방앗간채 등이 남아 있는데 다른 한옥에 비해 규모가 상당히 크다. 구한말 대지주 계층이 살았던 대저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청송 송소 고택>

<공간배치>

솟을대문이 있는 문간채를 대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문에는 송소세장(松韶世莊)’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은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양쪽을 3칸씩 행랑채를 두고 있다. 남쪽 행랑채는 온돌방 2칸, 창고 1칸이, 북쪽 행랑채는 온돌방 1칸, 창고 2칸으로 되어 있다.

<문간채>

<안쪽에서 본 문간채>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를 출입하는 중문을 막고 있는 담장을 볼 수 있다. 남쪽에는 큰사랑채가 있는 마당, 북쪽에는 작은사랑채가 있는 마당이 있다. 남쪽 마당 안쪽으로는 별채가 있으며, 북쪽 마당 안쪽에는 방앗간, 창고 등 작업공간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담장과 큰사랑채 마당>

큰사랑채는 앞면 5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건물이다.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책방, 왼쪽에는 온돌방 2칸이 있다.

<큰사랑채>

<사랑채 왼쪽 누마루역할을 하는 공간>

<가운데 대청마루>

<오른쪽 온돌방>

<큰사랑채 앞 마당>

큰사랑채 안쪽으로는 독립된 공간의 별채가 있는데 제사를 올리는 별묘라고 한다. 건물은 앞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재실형태의 건물이다. 4대 이상의 제사를 모실 수 있는 공간으로 민속학적인 가치가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별채 출입문>

<별채 중문 앞 마당>

<별채 중문>

<별채>

작은사랑채와 큰사랑채는 담장으로 구분하고 있다. 작은사랑채에는 안채로 출입하는 중문이 있다. 작은사랑채와 안채는 가족들의 생활공간이라 할 수 있다.  마당 주위로 방앗간, 창고 등의 건물들이 있다.

<마당 가운데 있는 담장>

작은사랑채는 앞면 5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중문, 창고, 온돌방, 대청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작은 사랑채>

안채는 앞면 6칸 규모로 가운데 1칸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이 2칸씩 두고 있다. 다른 고택에 비해 안채 대청마루가 넓지 않은 편이다.  양쪽 날개채, 작은사랑채,큰사랑채가 함께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마당이 상당히 넓다.

<안채>

작은사랑채 뒷편 안쪽에는 작업공간이라 할 수 있는 방앗간채가 있고, 앞쪽에는 창고처럼 보이는 큰 건물이 있다.

<작은사랑채 뒷편>

<방앗간채>

<앞쪽 창고건물>

<문간채 옆 작은 건물(사무실)>

청송 송소 고택
이 집은 조선 영조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세손 송소 심호택이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마을로 옮겨오면서 지은 99칸의 저택으로 1880년 경에 건립되었다. 대문은 솟을대문에 홍살을 설치하였으며, 큰 사랑채에는 주인이 거처하였고 우측에 작은 사랑이 있다. 안채는 안주인이 거처하던 곳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세살문 위에 빗살무늬의 교창을 달았다. 건물마다 독립된 마당으로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등 조선후기 상류층 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송소고택은 조선시대 12대 만석꾼인 경주 최부자와 함께 9대에 걸쳐 무려 250여 년간 만석의 부를 누렸던 영남의 대부호로 한때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던 대표적인 고택이며 청송 심부자가 살았던 집이다. (안내문  청송군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청송군청, 2023년
  2. ‘국가민속문화재 청송 송소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청송 송소 고택’, 디지털청송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