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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이항로 생가, 벽계구곡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저택

양평군 서종면에 위치한 이항로 생가이다.  북한강과 가까운 명승지인 벽계구곡 깊은 계곡에 자리잡은 별장같은 저택으로 이항로가 벽계강당이라는 서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집은 지은지 250여년된 양반가옥으로 안채, 사랑채, 헛간채로 되어 있다. 살림집으로 사용하는 안채는 ‘ㄱ’자형, 바깥주인이 거처하면서 손님들을 접견하는 사랑채는 ‘ㄷ’자형으로 되어 있으며 헛간채와 함께 전체적으로는 ‘ㅁ’자형으로 이루어졌다. 배산임수를 고려하여 화야산(해발755m)을 등지고 벽계천을 바라보는 남서향을 하고 있지만, 주변에는 농사 짓기 좋은 들판이 발달하지는 않았다.경치가 좋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어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고, 서원이 아닌 개인 저택에서 후학을 가르쳤던 까닭에 서당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을 배려하여 사랑채는 작은 방들이 많고 규모도 큰 편이다. 안채 또한 이 집을 찾은 손님들을 위해 작은 건너방을 두고 있다.

<양평 이항로 생가>

양평 중미산 북쪽 벽계구곡에 위치한 이항로 선생의 생가이다. 깊은 산 중에 위치하고 있지만, 후학 양성을 하면서 이 곳에 평생 머물렀던 특성을 잘 보여주듯이 일반적인 주택보다는 학교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방의 수가 많고  건물도 큰 편에 속한다.

<사랑채>

이항로가 벽계서당을 세우고 후학을 양성했던 이 가옥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곳이 사랑채이다. 다른 지방의 대저택과 달리 안채에 비해서 사랑채의 규모가 크다. 또한 계곡의 날씨가 차가운 까닭에 큰 대청마루를 두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도록 작은 방들을 많이 두고 있다.

<사랑채 툇마루>

사랑채 앞에 비교적 넓은 툇마루를 두고 있다. 이곳에 걸터앉아 계곡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문간채>

사랑채와 안채를 출입하는 문간채이다. 손님들이 많이 찾는 사랑채와 살림집은 안채를 구별하기 위해 문간채에 온돌방을 두고 있지 않다.

<사랑채 마당>

사랑채는 ‘ㄷ’자형을 하고 있으며, 일반 저택의 사랑채에 비해서 많은 수의 방을 두고 있다. 아마도 계곡을 찾아서 오는 손님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손님이 묵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다.

<담장과 협문>

기숙사 성격의 사랑채와 살림집인 안채는 담장으로 분리해 놓고 있으며, 협문을 통해 출입한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이 저택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채>

‘ㄱ’자 모양을 하고 있는 이 저택의 안채에도 일반 양반가옥보다 많은 수의 방이 있다.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해 놓고 있다.   청화정사(靑華精舍)란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마루방>

건너방 옆으로 헛간과 마루방 1칸을 더 달아내어 놓고 있다. 아마도 가족과 함께 명승지인 벽계구곡을 찾은 손님을 배려하여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안채 툇마루>

이 집은 건물 앞에 툇마루를 많이 설치해 놓고 있다. 이는 걸터 앉아 쉴 수 있도로 배려한 측면도 있지만, 손님이 많이 찾는 사랑채와 시각적으로 공간을 분리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날개채>

날개채에 부엌이 있고, 부엌을 지나 뒷마당으로 갈 수 있다.

<문간채 곳간>

<안채 뒷마당 툇마루>

안방을 출입하는 문과 툇마루를 두고 있다. 손님들이 많은 이 집의 특성상 여자들을 위한 공간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항로는 구한말 주리철학을 재건한 사람 중의 하나로 조선 말기 위정척사 이론을 세운 사람이다. 이른 나이에 과거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산중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살아 왔으며, 저택 바로 옆에는 후학을 가르치던 벽계강당이 있다. 구한말 위정척사론을 대표하는 유학자들인 양헌수, 최익현, 김평문 등 많은 선비들을 길러냈다고 한다.

<벽계강당>

양평 서종면 벽계구곡 깊은 골짜기의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구한말 유학자인 이항로 선생이 생가 옆에 있는 벽계강당이다.  앞면5칸 규모로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서원의 강당과 비슷한 규모이다. 이곳을 강학공간으로 사용하고, 제자들은 사랑채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양평 이항로선생 생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이항로 선생 고택은 선생의 아버지 대에 지은 집으로 약 200여 년이 되었으며, 선생이 태어나서 일생을 보낸 곳으로 최익현·홍재학 등 많은 선비들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던 곳이다. 이항로는 순종 8년(1808)에 과거에 합격했으나 포기하고 학문과 제자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고종 3년(1866)에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흥선대원군에게 전쟁으로 맞설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는 주리철학을 재건한 사람 중의 하나로 조선 말기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형성하였다. 건물은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던 사랑채와 대문간에 붙어있는 집으로 주로 하인들이 머물던 행랑채가 있다. 또한 집의 안쪽에 있으며 ㄱ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안채가 있어서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공간구성을 따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