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파평면 늘노리에 위치한 파산서원(坡山書院)이다. 이 서원은 조선중기 학자인 성수침(1493∼1563)과 그의 아들 성혼(1535∼1598), 동생인 성수종(1495∼1533)과 백인걸(1497∼1579)을 모신 서원이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문신인 율곡 이이를 중심으로 파주지역 유생들이 선조대인 1658년에 세웠다. 효종대 ‘파산(坡山)’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 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원래의 서원 건물은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리고 현재의 건물은 1966년에 복원한 것이다. 서원은 제향공간인 사당과 강학공간인 강당, 동.서재 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지금은 사당과 강당이 복원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방의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파평면 일대를 지나서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눌노천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 좋은곳에 자리잡고 있다.
<파주 파산서원>
<입구에 세워진 하마비>
<홍살문>
건물은 중앙에 사당이 있고, 왼쪽에 강당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서원의 오랜 내력을 보여주는 고목이 사당 앞에 심어져 있다. 서원 담장과 외삼문은 복원되지 않았다.
<강학공간>
사당 왼쪽 아래에 복원된 강당건물이 있다. 지금은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듯 하다. 그 뒷편으로는 비석이 모셔진 비각이 보인다.
<제향공간>
이 서원에 모셔진 성수침과 성수종 형제는 조선중기 유학자인 조광조의 제자로 조광자가 기묘사화로 사사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학문을 연구하면서 청빈하게 살았다고 한다. 죽은 뒤 명종대와 선조대에 관직을 제수 받고 복원되었다고 한다. 파주는 성수침이 낙향한 후 살았던 곳으로 성수침의 처가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성수종는 이 곳 외에도 창녕의 물계서원에서도 모셔지고 있다.
<사당>
사당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원래 있었던 기단석과 주춧돌 위에 복원되었다.
<사당 앞에 남아 있는 고목>
<강당 뒷편의 비각>
3기의 비석이 모셔져 있다.
<비각 내부의 비석>
<비각 앞에 세워진 비석>
<서원 관리인들이 사는 살림집>
<서원 앞을 흐르는 하천>
<서원 앞 마을>
파산서원(坡山書院), 파주시 파평면 늘노리
조선 중기 학자인 청송 성수침(1493~1563)과 그의 아들 우계 성혼, 형제 절효공 성수종 및 휴암 백인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서원이다. 조선 선조 원년(1568)에 율곡 이이 등 파주지역 유생들이 세웠고, 효종 원년(1650) 나라에서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다.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후에 복구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불탔고, 1966년 서원의 사당만을 복원하게 되었다. 사당 주위에는 담장이 둘러져 있고, 정면 가운데에 솟을삼문을 두었다. 건물은 앞면3칸,옆면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이 건물의 주춧돌과 기단석 등은 세울 당시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앞면은 툇마루로 개방해 놓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없어지지 않았던 전국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다. <출처:파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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