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는 일상생활을 표현한 그림으로 산수화와 함께 조선시대 회화를 대표한다. 풍속화에서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감정, 옷차림 등을 실감나게 묘사하여 당시 사람들이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간략한 선으로 사람과 풍경을 묘사하고, 과감한 생략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 묘사하는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인 김홍도와 신윤복은 다른 분야 그림도 잘 그렸던 가장 뛰어난 화가였지만 그들의 진면목은 그들의 풍속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그린 풍속화는 현대인 기준에서도 표현이 섬세하고 그 수준이 상당히 높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해외 유수의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고고학박물관과 미술관의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에서 미술관 중 회화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은 2층에 마련되어 있다. 회화작품은 한국적인 미(美)를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일생생활 모습을 표현한 풍속화를 비롯하여, 사당에 모시는 인물을 그린 초상화를 비롯한 인물화, 동양 회화를 대표하는 산수화, 민화와 궁중기록화 및 장식화, 부처를 비롯하여 불교에서 교화를 위해 그렸던 불교회화 등이 있다. 옛 사람들은 글, 글씨(서예)와 함께 그림 그리기를 중시하였다. 고구려벽화에서 삼국시대 그림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불교탱화 작품들 많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개성이 뛰어난 산수화를 그렸으며, 조선후기에는 일상 생활 모습을 그린 풍속화, 실제 풍경을 그린 진경산수화 등이 나타났다.
중앙박물관 2층 회화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미술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전통회화인 풍속화, 인물화, 산수화, 민화, 불교회화를 대표하는 주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행려풍속도>
포구에서 항아리와 광주리를 맨 아낙네를 표현한 <매염파행(賣塩婆行)>, 강가에서 배를 기다리는 광경을 그린 <진두대주(津頭待舟)>,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는 장면인 <노변야로(路邊冶爐)>, 술이 취한채 판결을 내리는 장면인 <취중송사(醉中訟事)>
<행려풍속도>
들녁에서 목화 따는 아낙을 바라보는 선비를 그린 <파안흥취(破鞍興趣)>, <소를 타고 가는 아낙네를 살펴보는 나그네>, 벼타작을 하는 장면을 그린 <타도락취(打稻樂趣)>, 당나귀와 물새가 서로 만나 놀라는 장면을 그린 <과교경객(過橋驚客)>,
세상살이 엿보기, 행려풍속도(行旅風俗圖), 김홍도, 조선 1778년, 비단에 엷은 색, 이 그림은 선비가 세상을 유람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광경들로 구성되어 있는 1778년 김홍도의 나이 서른넷에 강희언의 집 담졸헌(澹拙軒)에서 그린 것이다. <노변야로(路邊冶爐)>에서는 대장관에서 쇠를 두드리는 장면과 주막에서 밥을 먹는 나그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진두대주(津頭待舟)>는 강가에서 배를 기다리는 광경이, <매염파행(賣塩婆行)>은 포구에서 항아리와 광주리를 머리에 인 아낙, <파안흥취(破鞍興趣)>는 들녁에서 목화 따는 아낙들을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을 담고 있다. <과교경객(過橋驚客)>은 당나귀와 물새가 서로 놀라는 돌발적인 상황을 설정하여 생동감을 더해준다. <타도락취(打稻樂趣)>에서는 벼타작은 신분 계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표현은 <취중송사(醉中訟事)>에서도 은유적으로 드러나 있다. 표암 강세황의 감상평은 그림의 격조와 흥취를 높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기와이기>
보물로 지정된 단원풍속도첩은 풍속화의 소재를 총망라하여 그린 총 25폭의 화첩이다.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생동감과 해악성이 풍부한 그림들이다. 풍속화는 조선시대 많이 그려졌던 <의궤> 등 기록화와 비슷한 형태이지만 작가의 주관과 의도가 아주 생생하게 반영되었다. 배경을 간단하게 처리하고 장면만을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정감이 배어나고 생동감이 넘친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투박하지만 힘있는 필선이 돋보인다.
<대장간>
일에 몰두하고 있는 대장간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벌겋게 달군 히를 두드리며 행여나 불꽃이 튀거나 실패할까봐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이 생생하다. 옆에서는 완성된 낫을 갈고 있어 현장감을 배가시킨다.
<무동, 춤추는 아이>
<노상파안(路上破顔)>
<장터길>
상업이 발달된 조선후기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장터에서 장사를 마친 이들이 말을 타고 돌아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여유있게 담배를 피우는 이들도 보인다.
<윷놀이>
나무를 하러 산에 왔던 총각들이 짐을 내려놓고 윷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다. 발을 모은 구경꾼은 무슨 수를 쓰는지 알겠다는 듯 슬며시 웃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행상>
배경을 생략하고 등장인물의 자세와 표정만으로 화면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행상을 하고 있는 남녀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기를 업고 치마를 올려 묶은 여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빨래터> 김홍도,
아낙들이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 뒷쪽에 선비가 이를 훔쳐보고 있다. 해학적이고 풍자적은 풍속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일상의 풍경,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 보물, 김홍도,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단원풍속도첩>은 소탈한 서민 생활을 해학과 정취를 곁들여 생생하게 묘사하여 당시의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과 작품의 소재 등을 보면 김홍도가 즐겨 그린 것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정도로 조선후기 풍속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주변의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을 중심으로 묘사한 것으로서 연습삼아 그린 작품처럼 보이면서도 투박하고 강한 필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을 띠고 있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당시 서민들의 삶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에 대해 강세황은 <김홍도가 풍속화를 그릴 때, 한 번 붓이 떨어지면 손뼉을 치며 신기하다고 부르짖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평하였다. 김홍도 특유의 짜임새 있는 구성과 투박하지만 힘있는 필선이 돋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월야선유도 중>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평안감사 부임 축하잔치, 월야선유도>이다. 당시 평양감사의 위세와 평양성의 모습을 화려한 색감과 필치로 잘 묘사하고 있다.
평안감사 부임 축하잔치,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 전 김홍도, 19세기, 종이에 색,
새로 부임한 평안감사를 환영하여 평양의 대동강가에서 벌어진 잔치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궁중이나 관청에서 열린 행사를 그리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 그림은 특정한 행사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방 관아의 일상화된 풍속을 그린 풍속화이다. 대동강변의 실경과 밤낮에 걸쳐 벌어진 잔치의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세상살이 엿보기, 행려풍속도(行旅風俗圖), 신윤복, 조선 1813년, 비단에 엷은색,
김홍도의 행려풍속도와는 따른 신윤복만의 독특한 풍자와 해학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장기와 씨름을 즐기는 인물들(野遊), 나들이 나온 여인들이 젊은 승려에게 길을 묻는 모습(路上問僧), 더운 여름 나무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며 담소를 즐기는 모습(樹下納凉), 나귀를 탄 나그네가 여행을 떠나는 장면(騎驢渡橋) 등 총 네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1813년 여름에 그림 이 그림은 김홍도의 행려풍속도에서 흔히 보이는 일상적인 모습 외에도, 장옷 입은 여인들의 나들이 모습에서 신윤복이 즐겨 그린 소재임을 알 수 있다. 인물들의 모습은 작게 그려진 반면 산수의 비중이 크고, 섬세하고 감각적인 필치로 묘사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장기와 씨름을 즐기는 인물들(野遊)
나들이 나온 여인들이 젊은 승려에게 길을 묻는 모습(路上問僧),
더운 여름 나무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며 담소를 즐기는 모습(樹下納凉),
나귀를 탄 나그네가 여행을 떠나는 장면(騎驢渡橋)
<거문고 줄 고르기>,
서민들이 일상생활을 많이 그렸던 김홍도 풍속화와는 달리 신윤복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남녀간의 풍류를 즐겨 그렸다. <여속도첩>은 그의 풍속화에 자주 등장하는 기녀와 여인의 모습을 따로 떼어 낸 듯한 여섯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세한 필치와 고운 채색을 쓴 그의 그림은 여인네의 모습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전해주는 듯하다.
<저잣길>
<처네 쓴 여인>
<아기 업은 여인>, 신윤복,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배경이 없는 작은 화면에 아기를 업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그렸다. 훤칠한 키에 가녀린 몸매, 항아리 같이 넓은 치마에 풍성한 가채를 얹은 젊은 여인이 그려졌다. 짤고 꼭 끼는 저고리 밑으로 젖가슴이 드러나 있는데, 젖먹이 어린 아이를 등에 업은 모습에서 모성애가 느껴진다. 화면 여백에는 부설거사가 그림을 보고 미인도를 즐겨 그린 중국 당의 화가 주방의 그림에 빗대면서도 어린아이를 업은 모습에서 평범하지 않은 솜씨를 언급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림 왼쪽 위에는 ‘혜원신가권자덕여(蕙園申可權子德如)’라는 표제가 쓰여져 있다. 신윤복이 풍속화의 대상으로 즐겨 그린 조선시대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다. 훤칠한 키에 가채를 장식한 머리, 젖가슴이 드러난 저고리, 바닥에 끌린 유난히 긴 치마 등 당시 유행한 복식과 여인의 머리 형태를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여인의 표정이 진지한 데 반해 등에 업힌 어린아이의 모습은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 정감을 준다. <출처:중앙박물관>
여인들의 모습, 여속도첩(女俗圖帖), 신윤복, 조선 18세기, 비단에 엷은 색, 신윤복은 화원(畵員)을 지낸 신한평(1726~1809 이후)의 아들로서 김홍도와 더불어 조선후기 풍속화를 이끌어간 대가였다. 그는 주로 기생과 한량이 펼치는 풍류(風流)와 애정행락(愛情行樂)을 대담하게 그려 시대상의 단면을 반영하고 있다. 인물의 모습은 부드러운 필치로 그린 다음 청록, 빨강, 노란색 등으로 화려하게 채색하였다. 신윤복은 김홍도와는 달리 주변 배경을 치밀하게 설정하여 주변 분위기와 인물의 심리묘사에 치중한 점이 돋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공기놀이, 전 윤덕희, 18세기, 비단에 먹,
조선시대 아이들의 공기놀이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버드나무 아래 두 사내아이가 공기놀이를 하고 있고,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 구경하는 아이가 옆에 서 있다. 윤덕희는 풍속화를 여러 점 남긴 공재 윤두서의 아들로 호는 낙서 연옹 등이며 벼슬은 정릉현감을 지냈다. <출처:중앙박물관>
벼베기. 승려와 원숭이, 심사정,
김홍도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심사정이 그린 풍속화이다.
18세기 비단에 먹,심사정의 호는 현재로 조선후기에 활동한 문인화가다. 산수, 영모, 인물 등 다양한 분야의 그림을 그렸다. 심사정의 풍속화로는 드물게 남아 있는 예로, 농촌 풍속의 장면을 사실감 있게 담아냈다. 노승의 지팡이를 잡아 당기는 원숭이는 승려의 소재에 재미를 곁들이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겨울철 장으로 가는 행렬, 전 이형록, 19세기 비단에 엷은 색,
이형록은 19세기에 활동한 화원 화가로 자는 여통, 호는 송석이다. 이 화첩에 실린 <설중향시도>는 눈 덮힌 설경이 널찍하게 펼쳐진 동네 앞길에 황소를 앞세우고 장에 가는 행렬이 늘어서 있는 정경을 약간 높은 시점에서 내려다 본 것으로 행렬속의 말에 가해진 청색과 주황색의 대비 효과로 화면에 생기를 주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독나르기(부옹負甕), 오명현(吳命顯), 조선 18세기, 비단에 엷은 색,
오명현은 평양출신으로 자를 도숙(道叔), 호를 기곡(箕谷)이라고 했다. 그의 생애, 교유관계, 작품 활동 등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윤용(1708~?), 조영석(1686~1761)의 뒤를 이어 개성미와 현장 사생의 참신함을 잘 살린 화가로서 유명하다. 이 그림은 옹기를 지게에 지고 가는 벙거지를 쓴 인물을 생기있게 묘사한 것으로서 일상의 단면을 담담하게 구사한 오명현의 개성이 엿보인다. 현장감 있는 사생력, 먹의 농담을 살려 화면 한쪽에 치우치게 한 배치, 일상에서 찾은 소재 등에서 윤두서와 조영석의 작품을 연상시켜 준다. <출처:중앙박물관>
풍속화
풍속화(風俗畵)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풍속 장면이 우리나라 회화에 처음 나타난 것은 고구려 무덤벽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풍속화라고 하면 18세기 무렵에 본격적으로 유행한 그림을 말한다. 그 당시에 풍속화는 인기가 매우 높아서 임금도 즐겨 감상하였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풍속화가는 김홍도와 신윤복이다. 김홍도는 대장간, 추수 광경, 서당, 씨름 등 삶의 이모저모를 익살스럽고 정겹게 표현하였다. 그의 풍속화는 마치 우리가 그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생생한 감동을 전해 준다. 신윤복은 기녀와 벼슬 없이 한가롭게 지내는 한량의 모습 등 남녀간의 감정을 은근하게 나타냈다. 산뜻하고 세련되 색채를 사용한 그의 풍속화는 김홍도의 그림과는 또 다른 멋이 있다. 풍속화는 당시 사람들의 옷차림, 살아가는 모습 등을 실감나게 묘사하여 선조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연광정에서의 환영 잔치, 연광정연회도(練光亭宴會圖), 작가 모름,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평안감사가 벌렸던 연회 장면을 그린 일종의 사가행사도(私家行事圖)로 당시 살았던 사람들을 모습을 표현한 풍속화 성격도 같이 가지고 있다.
이 그림은 새로 부임해 온 평안감사를 위해 마련한 연회 장면이다. 잔치는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인 연광정(練光亭)에서 열렸다. 평양성과 대동강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연광정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조감하여 그렸다. 연회도는 궁중행사를 그리던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 지방 관아의 일상과 풍류를 잘 보여준다. 평안감사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여인들을 바라보고 있으며, 연광정 바깥에는 선비들을 포함한 많은 인파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평양성 내성(內城)의 동문인 읍호루 안쪽에는 행인들, 소를 끄는 인물, 물동이를 나르는 사람, 포졸 등 다양한 인물과 풍물을 실감나게 묘사하여 번화한 성 안의 모습을 잘 전해준다. <출처:중앙박물관>
삶의 일생, 평생도(平生圖), 작가모름,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한사람의 일생을 그린 평생도는 사가행사도와 함께 많이 그려졌던 그림으로 오늘날 기념사진첩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사대부(士大夫) 일생에서 기념이 될 만한 일들을 그린 풍속화이다. 출세(出世)와 입신양명(立身揚名)을 보여주는 오늘날의 기념사진과도 같다. 그림의 구성은 돌잔치, 혼인, 회갑 등과 같은 통과의례나 과거급제 후 삼일동안 인사를 다니는 삼일유가(三日遊街), 벼슬길과 부임행차(赴任行次) 장면 등으로 되어 있다. 이 그림은 소과(小科)에 응시하는 장면과 관직에 나아간 지 60주년을 기념하는 회방례(回榜禮)와 회혼례(回婚禮) 장면이 눈에 띤다. 세부적인 표현을 소흘히 하지 않고 등장인물의 다양한 표정까지 잘 포착하여 꼼꼼하게 그린 점이 돋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회화(繪畵)
회화는 인간의 마음과 생각, 사회와 자연의 현상을 선과 면, 색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일찍부터 순수 감상의 대사으로 여겨졌으나 제작 목적에 따라 공간을 장식하고 행사를 기록하는 등 그 종류와 성격이 매우 다양하다. 옛 사람들은 글씨와 그림을 ‘같은 뿌리에서 자란 것(同根異枝)’으로 보아 흔히 서화(書畵)라고 부르며 시와 글씨와 그림, 즉 문학, 서예, 회화가 함께 무르익은 경지(시서화일치詩書畵一致)에 이르기를 염원하였다. 특히 여가에 그림 그리기를 즐긴 문인화가들은 사물의 겉모습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형사形寫)을 넘어서 마음속에 품은 뜻을 나타내는 것(사의寫意)을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나라의 회화는 선사시대의 바위그림과 청동기의 무늬 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나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다. 고구려 무덤벽화는 당시의 회화가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고려시대에는 그림 그리는 일을 담당한 도화원(圖畵院)을 중심으로 이녕(李寧) 등 전문 화원들이 활약하였다. 유교사상을 근본으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더욱 다양하게 그림을 그렸다. 중국 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우리의 정서와 아름다움을 불어 넣어 독창적인 미술을 이루어 냈다. 15세기를 대표하는 안견(安堅), 강희안(姜希顔) 등은 문화의 꽃을 피운 세종대의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회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6, 17세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도 이징(李澄), 김명국(金明國) 등과 같은 뛰어난 화가들이 개성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18세기에는 정선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김홍도의 풍속화 등 우리나라의 자연과 일상생활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들이 나타났다. 19세기에는 김정희를 중심으로 화가들이 문인화(文人畵)에 깊이를 더하였으며, 이후 새로운 회화의 양상이 등장하면서 근대 화단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보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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