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祭祀, 또는 제례祭禮)는 신령에게 음식을 바치며 기원을 드리는 의식이다. 제사의식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던 것으로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요순(堯舜)시대에 하늘(天神).땅(地神).5악(嶽).4독(瀆,강)에 제사를 올린 기록이 서경(書經)이나 사기(史記) 등이 기록에 남아 있다. 또한 조상에 대한 제례가 주대(周代)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도 제례는 부여의 영고(迎鼓)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제천의식이 있었으며, 중국의 제례의식과 결합하여 한국적인 제사의식으로 자리잡았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단은 종묘나 문묘 등 위패를 모신 사당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 있으며, 사직단이나 선잠단처럼 제단을 갖추고 있는 경우도 있다.
종묘(宗廟)는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종묘제도는 주대(周代)에는 7대조까지 모시는 7묘제가 시행되었으나 명나라때 9묘제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종묘제도는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왔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천도를 단행하면서 가장 먼저 종묘와 사직을 건립하였다. 좌조우사의 원칙과 음양의 이치에 따라 궁궐을 기준으로 동편에 남쪽을 향한 종묘를, 서편에 북쪽을 향한 사직을 완성하였다. 조선은 처음에는 5묘제를 따르다가 치적이 많은 왕을 불천위(不遷位)로 예우하면서 정전에 그대로 모셨다. 또한 정전에서 옮긴 왕들과 추존왕의 신위를 모신 별묘로 영녕전을 두고 있다.
- [종묘(宗廟)] 정전(正殿, 국보),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곳
- [종묘(宗廟)] 영녕전(永寧殿, 보물), 정전에서 옮겨온 신주를 모신 별묘
- [종묘(宗廟)] 전사청(典祀廳)과 수복방(守僕房), 제향을 위한 준비 공간
- [종묘(宗廟)] 재궁(齋宮), 국왕과 세자가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
- [종묘(宗廟)] 선대 국왕을 돌아보던 망묘루(望廟樓)와 관리들이 머물던 향대청(香大廳)
- [고궁박물관특별전,”종묘(宗廟)”] 제향공간과 건축
- [고궁박물관특별전,”종묘(宗廟)”] 신실(神室), 역대국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공간
- [고궁박물관특별전,”종묘(宗廟)”] 제기고(祭器庫), 제기의 보관처
- [고궁박물관특별전,”종묘(宗廟)”] 종묘제례악, 신을 위한 음악.노래.춤
조선은 유교 이념에 따라 세워졌으며 전통 예법에 우리나라 고유의 풍습에 따라 국가차원에서 제사를 올리는 제사시설들을 두고 있다. 사직(社稷)은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으로 국가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제단이다. 사직과 함께 고대 이래 전통적인 제천의식에서 유래한 국가적인 제사를 올리는 곳으로는 국왕이 농업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직접 농사를 짓는 시범을 보이는 선농단과 왕비가 누에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선잠단, 대한제국의 선포한 이후 황제의 격에 따라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환구단 등이 있다.
- 서울 사직단(社稷壇, 사적), 토지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
- 서울 환구단(圜丘壇, 사적), 대한제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곳
- 서울 선농단(先農壇, 사적), 신농씨와 후직씨에 제사를 올리고 왕이 직접 농사를 짓던 곳
- 서울 선잠단지(先蠶壇址, 사적), 왕비가 잠신에 제사를 올리던 곳
- 서울 국사당(國師堂), 남산 목멱대왕(木覓大王)을 모시는 민속신앙 사당
- 인제 강원도 중앙단, 억울한 귀신을 위한 별여제를 지내는 제단
- 달성 현풍 사직단, 지방 관아에서 설치했던 사직단
중국에서도 국가 통치이념에 따라 국가차원에서 제사를 올리는 제사시설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국가의 규모에 걸맞게 우리나라에 비해 크고 웅장한 편이다.
- [북경 천단공원] 황궁우, 하늘을 관장하는 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
- [북경 천단공원] 환구단,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단
- [북경 천단공원] 기년전(祈年殿), 북경을 대표하는 건축물
- [북경 천단공원] 황건전(皇乾殿), 제일 북쪽에 위치한 황제의 선조들을 위한
- 북경 사직단, 자금성 서쪽 중산공원 안쪽에 남아 있는 제단
- 중국 북경 옹화궁 – 티벳식 라마교 사원
영전(影殿)은 국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모신 곳으로 궁궐에 두었다. 가장 오랫동안 법궁 역할을 했던 창덕궁에 남아 있는 선원전이 대표적이다.
- 경복궁 태원전(泰元殿) 일원, 태조의 어진을 모신 전각
- 창덕궁 선원전(보물 ) 일원, 역대국왕의 어진을 모신 전각
- [전주 경기전(慶基殿)] 조선태조어진(朝鮮太祖御眞)을 모신 곳
- 경희궁 태령전과 서암바위
- 수원 화령전(華寧殿), 정조대왕 어진을 모신 영전(影殿)
- [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왕실의 어진과 진전] 어진과 진전의 역사
- [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왕실의 어진과 진전] 또 한분의 왕, 어진
- [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왕실의 어진과 진전] 어진 봉안공간, 진전
- [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왕실의 어진과 진전] 어진 봉안용 회화, 진전의례
문묘(文廟)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통칭하는 말로 중국에서는 공묘(孔廟)라고 부른다. 공묘는 공자가 죽은 노나라 애공이 공자가 살았던 집에 사당을 세우면서 시작되었으며, 중국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각국에 공자의 사당이 세워졌다. 중국 북경에서는 최고 교육기관으로 문묘를 국자감이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국자감이라 불렀다고 성균관으로 이름을 바꾼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지방에서도 고을 수령들이 문묘를 세우고 지역인재들을 양성했는데 이를 향교라고 부르며 중등교육기관 역할을 했다.
- 성균관 문묘(보물),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향공간
- 하남 광주향교 (廣州鄕校), 광주부(廣州府)에서 설치했던 중등교육기관
- 양주향교 (楊州鄕校), 양주목(揚州牧)에서 설치한 중등교육기관
- 논산 노성 궐리사,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 중국 북경 국자감 대성전(大成殿)
- [중국 취푸(曲阜)] 공묘(孔庙),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
- [중국 취푸(曲阜)] 공묘(孔庙), 공자 일가를 모신 숭성사와 계성왕전,
민간에서도 조상을 모시는 사당(祠堂)이나 영당(影堂)을 세워 제사를 모셨다. 특히 조선 후기에 성씨의 시조를 모시는 사당들이 성역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경주 숭덕전, 신라 시조 박혁거세 제사를 모시는 재실
- 경주 숭혜전과 계림세묘
- 경주 양산재, 경주 6부 촌장을 모신 사당
- 김해 수로왕릉 숭안전
- 연천 숭의전(사적), 고려 왕조의 종묘 역할을 하는 곳
- [종묘(宗廟)] 공민당 신당 (恭愍王 神堂), 공민왕과 노국공주 영정이 모셔진 사당
- 전주 경기전 조경묘(肇慶廟)
- 진주 경절사, 진주하씨 시조
- 울진 평해황씨 시조단
또한 사당(祠堂)에는 개별 가문 차원에서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충신이나 삶의 모범이 된 학자 등의 위패나 초상화를 모셨다. 사당은 교육기능이 더해지면서 서원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조선후기에는 서원이 너무 많이 설립되어 사회문제가 되어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사당과 서원은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 달성 묘골마을 육신사, 사육신을 모신 사당
- 아산 현충사, 이충무공 유허(사적)
- 통영 충렬사(사적), 충무공을 모신 대표적인 사당
- 남해 충렬사, 이순신 장군 가묘
- 진주 창렬사, 김시민
- 고양 행주서원지와 충장사, 권율장군
- 남한산성 현절사와 청량당
- 강화 충렬사(忠烈祠), 병자호란 때 순절한 인물들을 모신 곳
- 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및 삼문(보물), 퇴계 이황을 모신 사당
-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보물),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을 모신 사당
- 안동 병산서원 존덕사, 서애 유성룡을 모신 사당
- 김포 한재당, 초기 사림을 대표하는 이목
- 해남 추원당과 어초은사당, 마을 입향조를 모신 재실과 사당
- 진주 의기사와 의암바위, 논개
- 서울 노량진 의절사, 사육신
- 화순 학포선생부조묘, 조선중기 문신 양팽손을 모신 사당
- 부여 삼충사, 백제 마지막 충신을 모신 사당
재실(齋室)은 사당이나 조상에 대한 제사를 올리기 전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왕릉에 재실이 필수적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민간에서 제사를 준비하고 가문의 위세를 알리기 위해 재실들을 많이 마련하였다.
- 여주 세종 영릉(사적) 재실
- 구리 동구릉(사적) 재실
- 남양주 유릉(사적), 재궁
- 영월 장릉(사적) 재실, 조선후기 재실 형태가 남아 있는 곳
- 여주 효종 영릉 재실(보물), 왕릉 재실의 모습을 잘 보존되어 있는 곳
- 담양 몽한각, 양녕대군 후손들이 지은 재실
- 고성 육영재, 학동마을에서 세운 재실
- 원주 김두한 가옥, 조상묘를 관리하기 위한 재실
- 서울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 인천 원인재, 인천이씨 중시조
- 논산 모선재(慕先齋), 조선중기 유학자 김장생
- 상주 승곡리 추원당, 검간 조정을 모신 재사
도교(道敎)과 민속신앙 사당. 도교(道敎)는 유교.불교와 함께 삼교(三敎)로 일컬어지며 중시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차원에서 도교제사를 많이 지냈으며, 개인적으로 도교 지식을 갖추고 신선처럼 생활하는 것을 큰 미덕으로 여겼다. 유교국가였던 조선시대에는 국가차원의 도교제사가 크게 축소되었지만, 민간차원에서 민속신앙과 결합하여 많은 사당들이 세워졌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재물의 신으로 관우를 숭상하는 관우신앙이 확산되었다.
- 서울 동관왕묘(東關王廟, 보물), 삼국지 영웅 관공(關公, 관우)을 모신 사당
- 서울 와룡묘(臥龍廟), 삼국지 영웅 제갈량과 관우를 모신 민속사당
- 서울 단군성전(檀君聖殿), 단군 영정을 모신 대표적인 사당
- 남원 춘향사당
- 해남 단군전
- 한국민속촌, 민속신앙 서낭당
중국 도교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