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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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죽장리 오층석탑(국보), 국내 최대 규모의 오층석탑
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절터에 남아 있는 오층석탑(국보)이다. 이 석탑은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렸는데 높이가 10 m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오층석탑이다. 통일신라 때 세워진 다른 석탑과는 달리 100여개가 넘는 석재를 짜서 만들었다. 지붕돌 아래.윗면을 계단모양으로 만들었으며, 몸돌에는 기둥조각을 새겨놓지 않아 전탑을 모방한 모전석탑 계열로 보여진다. 탑신부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셨던 감실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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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성주산 성주사지(사적), 통일신라 구산선문 중 성주산문 중심사찰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산 기슭에 이는 성주사지(사적)이다. 삼국시대 백제 법왕때 창건한 오합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통일신라 때 낭혜화상이 크게 중건하면서 선종 구산선문 중 성주산문의 중심사찰인 성주사로 바뀌었다. 절터에는 낭혜화상탑비(국보)를 비롯하여 4기의 석탑이 남아 있는데, 절터의 규모나 석탑 등 유물들로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낭혜화상탑비에 새겨진 비문은 당대 최고의 문인이자 유학자이 최치원이 지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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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보), 성주산문을 열었던 낭혜화상의 탑비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사지(사적)에 남아 있는 낭혜화상탑비(국보)이다. 화강석과 대리석으로 만든 높이 4.55 m의 이 탑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과 머리돌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당나라 비석의 형태를 하고 있다. 거북받침돌 머리는 얼굴 일부가 깨져 있는데, 머리 위에 둥근 뿔이 있고, 입은 불을 내뿜으려는 형상을 하고 있다. 거북 등에는 육각무늬를 세웠으며, 움직이려는 네 발은 사실적으로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머릿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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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절터 입구에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보물)이다. 미륵사지 절터 2기의 석탑 앞쪽에 하나씩 세워져 있다. 백제 무왕이 미륵사를 건설할 당시부터 있던 것은 아니고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당간지주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바깥쪽에 띠를 새겨두고 기단부에 안상 모양을 새겨놓고 있다. 장식이 많지 않으며 단정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영주 부석사나 숙수사지(소수서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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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유적 전시관] 사찰로의 변화.
왕궁리유적지는 오층석탑(국보)의 존재로 사찰이 있었던 절터로 알려져 있었다. 이곳이 언제 사찰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무왕이 죽은뒤 그를 기리는 원찰로 성격이 바뀐것으로 보고 있다. 왕궁 중심부에 있던 중요 건물을 설치하고 목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된 전형적인 백제의 1탑 1금당식 사찰이 조성되었다. 통일신라 때 사찰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사찰과 관련된 유 물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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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동리산 태안사, 통일신라 선종 동리산파 중심 사찰
전남 곡성군 죽곡면 동리산 자락에 있는 태안사(泰安寺)이다. 통일신라 선종을 이끌었던 승려 혜철이 크게 중창하면서 구산선문 동리산파 중심사찰이 되었다. 고려가 건국된 이후 광자대사 윤다가 크게 중창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잡았다. 고려중기 송광사가 수선결사의 중심사찰이 되면서 그 위상이 축소되었으나, 조선초 효령대군이 머물면서 국가의 지원을 받는 사찰이 되었다. 한때 40여동의 건물이 있었던 큰 사찰이었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으며 최근에 전각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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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계당산 쌍봉사, 목탑 형식의 불전이 남아 있는 사찰
전남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쌍봉사(雙峯寺)이다. 통일신라 말 중국에서 선종을 공부하고 돌아온 철감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선종 구산선문에 속하지는 않지만 철감선사의 제자 징효가 영월 흥녕사에서 사자산문을 열었다. 고려초에는 크게 쇠퇴했던 것으로 보이며 고려중기 혜소국사가 크게 중건하였으며 이후 조선시대에도 여러차례 중건이 있었다. 사찰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통일신라말 선종을 이끌었던 주요 사찰 중 한 곳이다. 사찰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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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가지산 보림사, 통일신라 선종 가지산파를 이끌었던 사찰
전남 장흥군 유치면 가지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보림사(寶林寺)이다. 통일신라 말 선종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가지산파의 중심사찰이었다. 통일신라 말 중국에서 선종을 배운 승려 체징이 헌안왕의 권유로 860년 이곳에 보림사를 창건하였다. 보림사는 중국 선종을 이끌었던 혜능이 있었던 사찰로 헌강왕이 보림사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20여동 전각을 갖춘 큰 사찰이었으나 천왕문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불타 버린 것을 최근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