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박물관
-
[산동성박물관 진.한 이후] 송대 이후 산동성
당나라 말과 오대십국의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거치면서 중국은 사회적인 혼란과 경제적인 불황을 겪었는데 산동지방은 당시 비교적 풍요로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동지방은 장강과 황하유역을 연결하는 대운하가 지나가는 교통의 중심지로 송.원대에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물품들이 대운하를 통해 산동지방을 거쳐갔다. 송.원에서 명.청대를 이어지는 시기 산동지방은 중앙정치에서는 멀어졌지만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이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宋金 独领风骚(독영풍소) During the Song…
-
[산동성박물관 진.한 이후] 수.당 전성기
수나라가 589 년 남조를 무너뜨리면서 격동의 남북조시대는 막을 내렸으며, 수를 계승한 당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왕조가 되었다. 수.당 전성기 산동지방은 안사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지역 중 하나였다. 산동성 자샹(嘉祥)현에 있는 무덤 유적에서는 이 시기의 다양한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벽화가 발견되었다. 산동지방은 고대 이래로 방직업이 발달하였으며, 실크로드 무역로를 통해 많은 문물들이 수입되었으며, 서역에서…
-
[산동성박물관 진.한 이후] 위.진.남북조시대 산동지방
위(魏), 진(晋), 남북조(南北朝)시대 산둥 반도는 격동의 시기였다. 진회제(晋怀帝)(307 ~ 313) 이후, 산동지방은 후조(後趙), 전연(前燕), 전진(前秦), 남연(南燕)에 속했다. 410년 남조정권인 동진이 남연을 정벌하여 산동 동부지방을 점령하기도 했으나 그후 북위(北魏), 북제(北齊), 그리고 북주(北周)에 속하게 되었다. 이러한 격동기에 귀족 가문들은 강력하고 자립적인 농장을 개발했다. 한편 흉노, 선비, 갈(羯), 저(氐), 강(羌)과 같은 유목민들이 산동으로 이주하였다. 이런 민족통합과정에서 원주민도 이민족의…
-
[산동성박물관 진.한 이후] 한대 주거생활을 보여주는 집모양 도기
중국 한나라를 대표하는 유적으로는 각지방의 관리나 부호들의 무덤인 화상석묘(畵像石墓)를 들 수 있다. 석재와 벽돌을 이용하여 방을 만들고 기둥과 벽면 등에 다양한 장면을 표현한 화상석으로 장식하고 있으며 무덤주인이 사후세계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다양한 껴묻거리를 같이 묻어두고 있다. 이들 중에는 주택이나 창고의 모형, 그릇을 비롯한 다양한 생활용품 등이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
[산동성박물관 진한 이후], 한대 농업경제와 산업
한대 산동지방 영주와 관리들은 농업과 경제 발전에 적극적이었고 철제 쟁기를 이용하여 깊게 밭을 가는 농업기술의 발전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다. 당시의 경제와 산업발전을 보여주는 부분으로 제철과 철제농기구의 제작, 각종기기에 옻칠을 하는 칠기(漆器),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베를 짜는 방적 등이 있다. <01.풍차모양도기(陶米碓风车模型, Pottery Model of wind-driven wheel), 한, 임치시> 당시 풍력을 이용하여 곡식을 찧는 방앗간의 모습을…
-
[산동성박물관 진한 이후] 한대 국가 철학과 규범이 된 유교
한(漢)나라는 유교 문화가 성숙되었던 시기였다. 유교는 국가 철학이되었으며 민중의 도덕에 깊숙이 자리잡았으며, 그에 따른 사회적 규범은 국가의 표준이 되었다. 국가통치는 진대의 군현제에서 완화된 군국제가 실시되었는데 점차 진나라 균현제와 비슷한 형태로 바뀐다. 이 시기 산동지방의 영주와 관리들은 농업과 경제 발전에 적극적이었고 가장 풍요로운 지역으로 만들었다. 산동지방에서는 한대 유교규범이 자리잡은 모습을 보여주는 전통제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
[산동성박물관 진한 이후] 진시황 순행과 도량형 통일
진나라 중국을 통일한 이후 산동지방은 통일과 함께 번영했습니다. 번성하는 경제와 산동의 화려한 문화는 진과 한제국의 번영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후 남북조시대에는 다시 정치적으로 분열되었다. 수.당시대에는 대운하와 같은 정치적, 경제적 통일을 기여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경제적, 문화적 번영을 다시 누렸다. 산동성박물관 9번째 전시실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 한, 남북조, 수,당을 거쳐 명나라 때까지 산동지방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
[상주박물관] 상주의 근대
조선시대 영남과 중부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 중심지에 위치했던 상주는 일제강점기 경부선 철도를 중심으로 한 교통로에서 소외되면서 지방 소도시로 바뀌었다. 구한말 동학에서 분리된 경천교과 상주 지역에 자리잡기도 했으며 상주공립농잠학교가 설립되면서 근대 농업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근.현대사에서는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간평등 존중의 정신을 알리다. 19세기 말 외세의 침략, 부패한 정치와 봉건적 신분 질서를 타파하고자…
-
[상주박물관] 상주의 유학
조선시대 상주에는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향교, 서원, 서당 등이 있었다. 경상도를 대표하는 큰 고을인 상주목의 위상에 걸맞게 상주향교는 규모가 크고 교육기능이 중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서원은 안동이나 경주 등 다른 지역에 비해 많지 않은편이다. 상주의 유학은 조선중기 노수신이 학문적 위상이나 정치적으로 명망이 높았으나 지역에서 활동하지 않아 그 영향이 많지 않았으며 임진왜란 전후 상주목사를 역임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