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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울특별시 청사,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공공건축물.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오랜 세월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는 서울특별시 옛 청사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준공되어 경성부 청사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2008년까지 서울특별시 청사로 사용되었다. 건물은 지상 4층의 철근콘그리이트 건축물로 르네상스 양식을 잘 따르고 있지만, 장식성을 배제한 외관, 실용적인 내부 공간 배치 등 근대 건축의 특징도 잘 갖추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의 기능이 확장되면서 여러차례 수리와 증축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원래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지금은 서울도서관으로 기능이 바뀌면서 전면적으로 리모델링되었다. 건물 전면, 옥탑 및 돔, 중앙홀은 원형대로 보존하였으며, 대회의실인 태평홀은 지하로 이전하여 재현하였다. 또 시장실과 기획상황실은 마감재 등은 원형을 유지하였다.

<옛 서울시 청사>

일제는 식민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한양의 중요한 축이었던 경복궁에서 덕수궁에 이르는 육조거리에 남북으로 일직선이 되게 총독관저, 조선총독부, 경성부청, 서울역을 배치하였다. 총독관저는 ‘大’, 조선총독부는 ‘日’, 경성부청은 ‘本’ 자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은 세 건물 중 경성부청 청사였던 이 건물만 현재 남아 있다. 일제가 이곳에 경성부청을 옮긴 것은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청사을 건축한 것과 마찬가지로 대한제국 정궁이었던 경운궁(덕수궁)의 상징적 의미를 말살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청 앞에 있던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던 환구단에는 조선호텔을 비롯하여 상업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50년 전인 1965년에 찍은 서울시청과 주변 사진>

지상 4층의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조선총독부나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건물과는 달리 장식적인 면이 거의 없다.

1965년 4월 27일 서울특별시청
1960년대 서울특별시청의 모습과 그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사진이다. 이 당시 서울 거리를 달리던 자동차들의 모습과 덕수궁 담의 형태, 시청 앞 광장의 모습 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시청 하늘 위에는 ‘시민의 날(4월28일)’을 알리는 5개의 애드벌룬이 떠 있다. 사진에 더해진 정보 중 주황색 글은 실제하는 지명과 건물에 대한 것이고, 흰색 정보는 역사에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이다. <출처: 서울시청>

<중앙 현관 출입문>

일제강점기 공공건물에 거의 대부분 있었던 차량이 멈출 수 있는 포치(Porch)가 없다. 업무 중심으로 지어진 근대적인 공공건축물의 특징과 경성부청의 특별한 지위를 보여주고 있다.

옛 청사의 구조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형식으로 이루어진 구조체는 기둥과 보, 바닥 슬래브로 이루어져 있다. 고층에 해당하는 중앙 옥탑 코어 부분과 태평홀의 안족 기둥은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 트러스 지붕을 얹었다. 기초는 청사부지가 습기가 많고 연약한 지반이라 파일을 바았는데 깊이를 15~18척으로 하여 신축 당시 특허 받은 압축기식 항타기초로 시공하였다고 한다. 사무실 복도 옆 통로에는 직경 5촌, 길이 15척의 생 소나무 원목을 박아 지반을 보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서울시청>

<오른쪽에서 본 모습>

건물은 특별한 장식이 없는 4층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이다. 1층 외벽에는 화강석을 붙였으며,

벽체
중앙옥탑코어 및 태평홀은 철골철근콘크리트조, 나머지는 철근 콘크리조로 하고 기둥 사이는 벽돌조의 ‘커튼월’로 되어 있다. 외벽면 아래쪽은 화강석 붙임을 하고 상부는 석재 뿜질로 마감되어 있으며, 옥상 바닥부분에는 석재돌림띠와 난간벽 위에는 두겁돌이 설치되어 있다. 상부의 석재뿜칠 면은 신축 당시에는 지금은 쓰이지 않는 리싱이라는 재료로 마감되어 있었다. <출처: 서울시청>

<청사 1층 외벽>

외벽은 화강석을 붙여 마감하고 있다.

<지상 2~4층 외벽과 창호>

외벽은 석재뿜질로 마감했다.

창호
옛 청사에 설치되었던 창호는 수량이 800여 개에 달하며, 내부창호 일부가 원형대로 남아 있다. 신축 당시의 창호는 방화셔터나 외부 덧창을 제외하고 거의 모두 목재창호였다. 창의 경우 외부창은 준공 당시 목재 오르내리창이었다. 사용하면서 원래의 목재창틀에 알루미늄새시를 설치하였는데, 공사중에 원래의 창무틀은 보존처리 및 보수를 하고 그 위에 열손실과 차음을 고려하여 새로운 알루미늄새시(내부는 목재)를 설치하였다. 색상은 준공당시의 색상인 연한 청색으로 마감하였다. 문은 중앙현관 주출입구와 중앙홀 창고 및 승강기실 문 등은 준공 당시 티크원목에 바니시칠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앙현관 주출입구는 원래와 유사하게 사용중에 새로 교체되었고 실내의 문틀 및 문짝은 대부분 원래의 것이다. <출처: 서울시청>

<첨탑에 전시해 놓은 창틀>

오르내리창
창에 추를 달아 문틀 윗부분에 댄 도르레에 줄로 걸어 창이 오르내릴 수 있는 창이다. 창틀 양쪽의 선틀에 추상자를 만들어 창무게(유리와 칠 무게 포함)와 평형이 되는 주철제 추(지름 40mm, 길이 450mm)를 상부의 도르래에 면사를 꼬아서 만든 줄로 매달아 놓았다. 추는 창 한짝에 좌우 2개를 매달고, 창은 상하 두짝이 따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선틀의 추상자 속에는 2개의 추를 분리하는 널을 설치하였으며, 추상자는 판재로 막고 하부에 점검 할 수 있는 뚜껑을 설치하였다. <출처: 서울시청>

<청사 중앙 현관 로비>

정면에 폭이 넓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연결되며, 양쪽으로 사무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있다.

바닥
현관은 화강석물갈기로 마감하고, 1층 홀 및 동,서쪽 계단은 대리석으로 중앙홀은 모자이크타일로, 사무실은 리놀륨을 특별한 실은 융단을 깔았다. <출처: 서울시청>

<1층 사무공간 출입문>

지금은 서울도서관 자료실로 사용되고 있다.

<도서관 자료실로 사용되고 있는 옛 1층 사무공간>

<2층 로비>

서울시청 로비 역할을 했던 공간이다. 양쪽에 도서관 자료가 있는 열람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신청사와 연결되는 연결통로가 있다.

<특별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공간>

<2층 일반자료실>

<3층 로비>

3층에는 서울시장실,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록문화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서울자료실
서울특별시의 행정과 정책에 대한 모든 자료가 소장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서울시정개요’, ‘서울도시기본계획’, ‘올림픽백서’ 등 3만여 권의 자료를 직접 열람할 수 있다. <출처: 서울시청>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서울자료실>

<서울 기록문화관>

옛 시장실.기획상황실
이곳은 서울시 옛 청사의 시장실 및 기획상황실 공간이다. 옛 시장실은 해방 이후부터 2008년 5월까지 60여 년 동안 역대 서울시장이 사용했던 집무공간이었다. 시장실은 시청사 3층 정중앙에 위치하며 집무실.접견실.비서실.탕비실.개인화장실.대기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획상황실은 서울시정의 심장부로 시장과 서울시 공무원, 전문가, 시민이 다양한 의제에 대해 보고받고 심의.결정했다. 본래 옛 청사 3층의 동쯕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비서실 공간으로 옮겨 재현하였다. 이밖에도 옛 청사 3층에는 행정 1.2부시장과 정무부시장 집무실, 대회의실인 태평홀 등이 있었다. <출처: 서울시청>

<3층 옛 서울시장 집무실>

서울특별시 옛 시장실
옛 서울시장 집무실과 접견실, 기획상황실이 복원되어 상설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역대 서울시장의 모습과 해방 이후 서울특별시 주요 시정 기록물, 서울의 역사 연표 등을 살펴 볼 수 있다. <출처: 서울시청>

<집무실에 걸려 있는 역대 서울시장들>

<접견실>

<접견실 창문>


현관 허리돌림띠와 중앙홀 걸레받이는 대리석을 사용하고, 귀빈실 등 특별한 실은 징두리벽을 설치하고 벽지로 마감되어 있다. 그 이에 내벽은 하얀 회반죽으로 마감되어 있다. <출처: 서울시청>

<서울시청 기획상황실>

<옛 서울청사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는 5층 돔으로 올라가는 계단>

돔 및 첨탑
옛 청사의 지붕은 전체적으로 평슬래브로 이루어진 지붕을 갖고 있지만, 중심축에 위치한 정면부에는 상징적 요소로 동판을 덮은 돔을 설치하였다. 돔은 일반적으로 원형을 하고 있지만 옛 청사에서는 사각형으로 낮게 이루어져 있다. 철골트러스 구조위에 콘크리트 슬래브를 설치하고 그 위에 목재를 설치 후 판재를 깔은 후 동판을 평판잇기로 하였다. 돔 위에 첨탑을 설치하였는데 목재로 형태를 만들어 세우고 외부 면을 동판으로 장식하여 둘렀다. 전체 높이는 4,132m로 하부는 기단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위로 박공을 둔 창모양의 벽면이 4면에 설치되어 있다. 그 위로 8면으로 분할한 원주가 서고, 원주 상부에 수평띠를 둘렀으며, 그 위에 철퇴 모양의 구(球)를 올린 후 피뢰침을 설치하였다. 돔은 중앙홀 내부로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철골트러스를 둔 상태에서 유리돔으로 바뀌었다. <출처: 서울시청>

<옛 서울시 청사 돔과 옥상>

구형을 하고 있는 일반적인 총독부 청사나 한국은행 청사와는 달리 낮은 사각형 돔을 사용하고 있다.

지붕
철근콘크리트 슬래브 위에 아스팔트방수를 한 평지붕이고, 중앙의 돔지붕 및 배면의 태평홀 경사지붕은 철골 트러스 구조 위에 콘크리트 슬래브를 설치하고 목재를 설치 후 판재를 깔은 후 동판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출처: 서울시청>

<돔 내부>

천장
현관 및 계단실, 1~3층 사무실 천장은 콘크리트 바탕에 회반죽 바르기를 하였고, 중앙홀 및 복도, 4층 사무실은 목조반자틀에 졸대를 설치하고 회반죽 바르기를 하였다. 보와 벽, 그리고 천장과 만나는 부분, 모서리 등은 장식문양을 석고로 만들어 붙였다. <출처: 서울시청>

<돔천장>

리모델링하면서 내부에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유리천장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전시실>

돔 내부는 이 건물의 옛 흔적들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시실>

옛 청사의 첨탑, 참호 마감.

<목재 징두리벽, 3층 목재문틀, 각종 출입문들, 2층 중앙홀 목재 환기창>

<3층 시장집무실 목재커튼박스, 3층 내부복도 목재창>

<태평홀 아치 석고장식, 1차형틀>

<창호 철물>

<돔하부 장식벽 동판, 돔지붕 동판, 첨탑내 하부 모서리 목재>

<목재 콕센트박스, 배터리, 선홈통받이, 도르레, 검 도장>

옛 청사의 내.외부 마감재

<목심박힌 적벽돌, 중공적벽돌, 원형철근, 대리석 걸레받이, 바닥 모자이크타일>

<중앙홀 기둥주두 석고장식, 중앙홀 기둥모서리 석고장식, 계단실 창 모서리 석고장식, 4층 중앙홀 원형기둥 상부 석고장식>

<출입문>

<초배지>

<태평홀 보 상부 수평 석고장식>

<보 상부 석고 장식>

<중앙홀 천장틀 및 회반죽 바르기, 천장 환기구, 천장 석고장식>

회반죽 바르기
내부 바름벽 재료인 회반죽은 소석회, 여물을 해초풀로 반죽한 것이다. 바탕면에 균열방지와 탈락을 방지하기 위하여 수염을 마름모형으로 작은 못으로 박아대고 바탕 바르기를 하여 면을 평탄하게 만든 후 그 위에 고름질, 잔고름질, 재벌, 정벌바름을 하였다. <출처: 서울시청>

<중앙홀 철골기둥 주작>

<철골 구조물>

<철골구조물>

<철근콘크리트 보 및 슬래브>

<지정말목>

군기시터 발굴현장 북쪽 끝 근대 문화층에서 확인된 나무말뚝으로 기초 하부의 연약한 지층의 지내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이 나무 말뚝은 일제강점기 때 건물 기초시설로 추정된다. <출처: 서울시청>

<옛 청사 외벽>

독일제풍인 리싱을 발랐다.

리싱 바름
외벽 마감 재료인 리싱은 독일제품으로 규산석회가 주성분이다. 입자에 따라 대, 중, 소 3가지가 있으며, 색채가 다양하나 옛 청사에는 흰색의 중간 크기 입자를 사용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옛 청사에 처음 사용되었다. <출처: 서울시청>

<옛 청사 리모델링 공법 모델>

뜬구조 공법
옛 청사의 원형보존 구간인 중앙홀 및 전면외벽을 존치한 상태에서 지하 골조공사를 진행하기 위하여 뜬구조 공법을 도입하였다. <출처: 서울시청>

서울시 옛 청사의 역사
조선시대 한성부 청사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 동쪽의 세번째 자리에 있었다. 170칸이 넘는 큰 규모의 청사였다. 19세기 후반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 앞쪽으로 옮겼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청사를 옮겼다. 일제강점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고 청사는 중구 충모로 1가(현 신세계백화점)에 있었다. 1920년대 들어 시세가 팽창하자 일제는 청사 신축을 계획하고 1923년 2월 당시 경성일보사가 있던 자리로 위치를 선정하였다. 당시 위치 선정 배경에는 건립 중이던 조선총독부 청사와 함께 덕수궁(경운궁)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말살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었다. 일제는 1924년 신청사를 착공하여 1926년 현재의 서울시청 자리에 새청사를 준공하였다. 광복 후 서울시는 경성부 청사를 그대로 서울특별시 청사로 사용하였으나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시정업무의 확대 등으로 1987년까지 6차례의 증축과정을 거쳐 확장되었으며, 내.외부 공간의 개보수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행정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공간의 변용이 요구됨에 따라 시민의 행정, 문화, 예술, 사회생활의 중심공간으로서 자치시대의 자유로운 개방공간을 확보하고자 새로운 청사를 짓고 옛 청사는 서울도서관으로 조성하는 공사를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시행하였다. <출처: 서울시청>

<시울시청 옥상 공원>

덕수궁을 비롯하여, 서울시청광장, 광화문 대로 등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명소이다.

<서울시청과 마주 하고 있는 프리자 호텔>

<숭례문과 서울역으로 연결되는 광화문 대로>

<울창함 숲으로 둘러 싸인 덕수궁>

<대한성공회 성당과 서울시의회(옛 국회의사당)>

<광화문 대로>

서울시 옛 청사, 일제강점기,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시 옛 청사는 일제강점기인 1026년 경성부 청사로 건축되어 사용되다가 광복 후 서울특별시 청사로 사용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좌우 대칭적인 정면성과 입면과 평면의 3분할 구성 등 르네상스 양식의 기본 틀을 갖추면서도 대지 형태에 맞춘 합리적인 배치, 개방형 사무 공간, 장식성을 배제한 수수한 외관 등 역사주의 건축 양식에서 근대주의 건축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준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시정의 확대로 수차례 증축과 개수와 보수작업이 이루어졌는데, 21세기 행정 수요의 변화에 대응하고, 세계 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뒤편에 새로운 청사를 짓게 되었다. 신청사 건축으로 내부와 외관 일부가 변경되었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새단장 공사를 거치면서 서울도서관과 전시관, 역사관을 갖춘 시민 문화 공간이 조성되었다. 이 건물은 옥탑과 전면 파사드(facade), 현관과 중앙 홀 등 주요 부분에 건립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어 당시의 건축 기술 수준을 가늠할 수 있으며, 주변의 덕수궁과 성공회 성당, 구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등과 함께 서울 태평로 일대의 역사적 도시 경관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참고문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