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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육송정 홍교(보물), 건봉사 가는길에 있는 아치형 돌다리.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에 위치한 육송정 홍교(보물)이다. 홍예교(虹霓橋)라고도 부르는 아치형으로 쌓은 조선시대 돌다리이다.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 경계에 위치한 이 다리는강릉 이북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던 간성군 관아에서 조선 4대 사찰이었던 금강산 건봉사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졌다. 다리를 건립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비슷한 형태인 건봉사 홍파교와 비슷한 시기인 숙종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육송정 홍교처럼 작은 개천에 인공적으로 석축을 쌓은 다리를 조성하는 일은 조선시대에는 흔치 않은 경우이며, 징검다리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다리는 약간 특이한 경우이다. 건봉사가 조선시대 4대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큰 절이었으며, 조선후기 크게 유행했던 금강산 유람길의 중요한 명소로서 왕실 또는 고위 인사들의 방문이 많았기 때문에 간성군 관아에서 건봉사로 가는 길을 잘 정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성 육송정 홍교(보물)>

석축을 아치형으로 쌓아서 만든 조선시대 돌다리인 홍예교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현재의 다리는 2006년에 해체.복원하였다. 

<오른쪽에서 본 모습>

금강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개천을 건너는 길이 12.3 m 정도의 다리이.  폭은 약 2 m 정로로 우마차 1대가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규모이다.

<왼쪽에서 본 모습>

폭이 가장 좁은 부분에 홍예를 쌓고 그 위에 상판을 올려 놓은 전형적인 홍예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치형 홍예>

홍예는 화강석을 잘 가공하여 올렸는데, 아랫쪽에는 큰 돌을, 윗쪽은 작은 돌을 쌓아 올렸다. 조선시대 홍예를 쌓는 수법을 잘 볼 수 있다.

<홍예 바깥쪽 공간>

화강석을 다듬어서 쌓은 홍예와는 달리 바깥쪽 공간에는 잘 다듬은 자연석을 이용해서 쌓고 있다.

<윗부분>

육송정 홍교외 자동차가 지나가는 현재 다리가 나란히 개천을 건너고 있다.

<개천>

금강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하천을 건너기 위해서 이 다리를 세웠다. 조선시대 금강산 건봉사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고성 육송정 홍교, 보물,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
육송정 홍교는 건립년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건봉사 능파교와 함께 영조 21년(1745)의 대홍수로 붕괴되었던 것으로 볼 때 비슷한 시기(숙종 30년, 1704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조 24년(1748)에 편찬된 간성군읍지에 이 홍교가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어 능파교보다 더 오래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의 경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천의 폭이 12.3 m 정도 되는 곳에 석축을 쌓고 길이 10.6 m의 다리를 놓았다. 홍예의 기초는 자연지형을 잘 활용하였는데, 동쪽은 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여 그 위에 홍예돌과 비슷한 크기의 장대석으로 1단의 지대석을 두었다. 서쪽은 3단의 지대석을 쌓은 뒤, 그 위에 홍예를 올렸는데, 1단에 2개씩의 장대석을 이어서 만들었다. 서쪽 지대석의 높이는 1단이 묻혀 있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단이 70 cm, 3단이 60 cm로 매우 거대하다. 홍예와 날개벽 사이의 교각 면석은 장대석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적인 냇돌을 사용하였는데, 아래쪽에는 큰 돌을 위쪽에는 작은 돌을 사용하였다. 이 다리는 단칸 홍예교로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축조된 석교이다. 2003년 보수공사 시 홍예석을 제외한 면석과 호안석축 및 주변정비 공사를 실시 하려 하였으나 사업추진 중 홍교의 변형 및 훼손이 심하다고 판단되어 문화재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홍예석을 해체하여 2006년 6월에 복원하였다. (안내문, 고성군청, 2011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