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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청령포(명승), 단종이 왕위를 빼앗긴 후 유배되었던 곳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는 청령포(명승)이다. 이곳은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유배되었던 곳이다. 영월 도심 서쪽 3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강이 굽이쳐 흐르면서 반도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동·북·서쪽이 깊은 물로 막히고 육지와 이어지는 남쪽은 육육봉의 절벽으로 막혀 있어 섬과 같은 곳이다. 서강 건너편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단종이 유배되었을 때 머물렀다는 집 주위 울창한 소나무숲과 굽이쳐 흐르는 서강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단종은 이곳에서 머물다 홍수로 청령포 일대가 침수되자 영월 관아로 옮겼다가 죽었다. 단종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영조때 세운 단묘유지비, 단종시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 외인 접근을 금지하기 위해 세운 금표비가 있으며, 단종이 머물렀던 기와집을 재현해 놓은 단종어가와 단종이 걸터앉아 쉬었다는 관음송(천연기념물)가 있다. 영월읍에는 단종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영월도호부 관아(사적)와 단종이 묻힌 장릉(사적)가 있다.

<영월 청령포(명승)>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석회암 지대인 영월 일대를 굽이쳐 흐르면서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이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뒷편에는 높은 봉우리로 막혀 있어 마치 섬과 같이 외로운 곳이다.

<단종 유배지>

배를 타고 건너면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단종유배지로 들어갈 수 있다.

<단종어가>

2000년 복원한 이 한옥은 단종이 유배와서 살았던 집을 문헌을 참고하여 복원한 것이다.

<노비들이 거처하던 집>

<단종어가>
2000년 4월5일 단종문화제와 때를 맞춰 건립된 단종어가는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나름대로 재연했다. 어가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 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사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어가 담장 안에 유지비각이 위치해 있다. 이 어가는 어가 또는 적소라는 명칭에 대한 논란과 주거형태, 어가의 위치 등 여러 가지 문제로 한동안 논란을 겪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재현했다. <출처:영월군청>

<단묘유지비>

영조때 세운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이다. 단종이 이곳에 살았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관음송(천연기념물)>

단종 유배지 마당 한쪽편에 가지를 뻗치고 있는 관음송(천연기념물).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걸터 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는 소나무이다.

관음송 및 소나무 수림지
청령포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종 遺址碑閣(유지비각)서편에서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는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 왔다. 소나무 크기는 높이 30m, 가슴높이의 둘레 5m로 지상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랐다.갈라진 줄기의 밑둘레는 3.3m, 남북 20m로 가지를 펼치고 있다. 수령은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 유배시의 수령을 80년으로 하여 계산된 것이다.청령포는 남한강 상류에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섬과 같은 곳으로 주변에는 우거진소나무의 숲이 있고, 관음송은 그 소나무 숲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출처:영월군청>

<청령포 앞을 흐르는 영월 서강>

<영월 청령포>

청령포 단종유배지를 휘감아 돌아서 흘러간다.

영월 청령포, 명승,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1971년 강원도 기념물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그 다음해인 144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중추부사 노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 지금 청령포에는 단종 유배시에 세운 금표비(禁標碑)와 영조때 세운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가 서있어 옛일을 전하고 있다. 또한 망향탑, 노산대, 관음송이 있다. <출처:영월군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