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창절사(彰節祀)이다. 조선전기 단종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과 김시습.남효온.박심문.엄홍도 등 10명의 위패를모신 사당이다. 원래는 단종의 장릉 능역 내에 세워졌던 사육신을 모신 육신사에서 시작되었다. 숙종때 단종이 복위되면서 왕릉 밖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후 ‘창철사’라는 사액을 받으면서 김시습, 남효온, 박심문, 엄홍도가 추가로 배향되었다. 고종 때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창절사는 후학을 양성하는 서원으로 세워지기는 했지만 사실상 사육신을 포함한 10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제향 중심의 서원이다. 출입문으로 대견루라는 문루가 있으며, 강당과 동.서재로 구성된 강학공간이 앞쪽에, 사당과 동.서무로 구성된 제향공간이 뒷편에 배치되어 있다. 사당은 많은 위패를 모시고 있어서 그런지 앞면 5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이다.
<영월 창절서원>
사육신을 비롯하여 10인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제향기능 중심의 서원이다. 단종 장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강당>
서원 강학공간의 중심건물인 강당. ‘창절서원’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서원 규모에 비해서 건물 규모가 큰 편이다. 장릉을 찾은 손님들이 잠시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맞은편 서재>
<창절사 사당>
사육신을 비롯하여 10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10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어서 그런지 일반적인 서원 사당 건물에 비해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사당 앞 동무>
<맞은편 서무>
영월 창절사(彰節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이곳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세조에 의하여 피살되거나, 절개를 지키던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원래 장릉 곁에 육신창절사가 있었는데 숙종 11년(1685)에 감사 홍만종이 도내의 힘을 모아 개수하여 사육신인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와 호장이었던 엄홍도, 박심문등을 모셨으므로 팔현사가 되었다. 정조 15년(1791) 창절사에 단을 세우고 생육신 중 김시습, 남효온을 추가로 모시고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 오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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