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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박물관 특별전, 조선백자] 지방백자

1. 조선왕실과 백자2. 백자에 담긴 출생과 죽음3. 지방의 백자4. 문인문화의 유행5. 백자의 제작6. 무늬로 보는 상징과 의미7. 문양이 된 문자8. 문양에 보이는 교류와 유행

조선중기 사옹원 산하 관요인 분원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전국 각지에는 많은 가마들이 있었으며, 공물의 형태를 도자기를 만들어 왕실에 납품했다.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걸작도자기인 분청사기가 주로 지방의 가마에서 만들어졌다. 관요가 설치되면서 왕실과 관청의 요구에 걸맞게 수준높은 도자기를 생산했다. 이에 영향을 받아 지방의 가마들은 관요에서 만든 백자를 닮은 것을 만들고 노력하면 전반적으로 백자의 수준이 높아졌다.

백화철화 운용문호, 경기도 가평 하판리 백자요지 출토.

용이 그려진 항아리는 국왕을 상징하기때문에 관요에서 제작하여 궁중에 납품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지방가마에서도 만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도 가평 하판리 백자가마터에서 출토된 항아리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제작해 접합하였으며 동체 전면에 짙은 철화로 용무늬를 장식하였다. 가평의 흙은 조선후기 관요에 공급될 만큼 질이 좋은데, 이 항아리의 태토도 정선되었고 비교적 색이 좋으며 얇고 치밀하게 제작되었다. 왕실용 의례기로 관요에서만 제작되던 운룡문호가 중기 이후 지방가마에서도 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안내문, 이화여대박물관, 2016년)

조선전기 지방백자

조선시대 질 좋은 백자의 생산은 15세기 후반 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설치되면서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관요가 설치되기 이전부터 지방의 일부 가마에서는 왕실과 관청의 수요를 위해 고급의 백자를 생산하고 있었다. 관요가 설치된 이후, 이에 강한 영향을 받은 전국의 요장들은 관요 생산품을 닮은 백자를 제작하고자 노력했다. 조선중기 큰 전란을 겪으면서 전국적으로 그릇을 새로이 만들어야 했고, 관요 생산품과 더불어 지방백자에 대한 수요와 생산이 확대되어 제작의 효율성을 높이는 요업기술이 전반적으로 발달하였다. 대체로 조선후기 지방 요장은 주원료인 백토가 산출되거나 유통경제가 발달한 곳에 위치했으며, 대개 일상의 그릇을 중심으로 관요와 유사하거나 또는 지역의 특색이 반영된 새로운 스타일의 백자를 생산한 곳도 적지 않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말기 전국적으로 확대되며 조선백자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 이화여대박물관, 2016년)

분청사기 인화문 ‘경주장흥고’명 태호, 조선 15세기

분청사기 인화문 접시, 조선 15세기

백자호, 조선 15세기,

이 항아리는 1994년 이와여자대학교 신축건물 공사 중 <분청사기 태호>, <분청사기 연화문접시>와 함께 발견되어 주목된다. 함께 출토된 상황이나 만듦새, 질적인 면에서 유사하여 ‘경주장흥고’명이 확인되는 경주 또는 울산에 위치한 요장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이화여대박물관, 2016년)

백자상감 연당초문병, 조선 15세기

백자상감 화문발, 조선 15세기

백자철화 난초문호, 조선 17세기

조선중기 병과 항아리

백자철화 초화문병, 조선중기, 백자 호, 조선 17~18세기, 경기도 가평 하판리 백자요지 출토

백자철화 용문호, 조선중기

백자 병.호, 조선 17~18세기, 경기도 가평 하판리 백자요지 출토,  백자 호, 조선중기

백자 호, 조선중기

백자 호, 조선중기

백자 병, 조선 17~18세기, 경기도 가평 하판리 백자요지 출토,  백자 호, 조선중기

 백자 호, 조선중기

소품(小品).조선후기 병과 항아리.반상기(飯床器)

백자 고족접시, 조선후기, 백자 접시.발, 조선시대, 흑유 병.주자.발, 조선시대, 백자철화 명문편, 조선 17~18세기, 경기도 가평 하판리 백자요지 출토

백자 연적, 조선 19~20세기초,  백자 발.잔.합, 조선 19세기, 강원도 양구 방산 송현리 수습, 흑갈유 연적, 조선 19~20세기 초

백자동화 화문병(花紋甁).쌍권문호(雙圈紋壺), 조선 19세기

백자 다각호(多角壺).병(甁), 조선 19세기

백자청화 초화문호(草花紋壺), 조선 19세기

백자철화 운용문호, 조선 19~20세기 초

백자청화 초화문병, 조선 20세기

백자철화 호, 조선후기

해주.회령 항아리

회령요 호, 조선 19~20세기, 백자청화 초화문호, 조선 19~20세기 초

백자청화 초화문호, 조선 19~20세기 초

<출처>

  1. 안내문, 이화여대박물관.2016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