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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대흥군 관아, 동헌과 관아 아문

대흥군(大興郡)은 충남 예산군 대흥면.응봉면.광시면.신양면 일대에 있었던 옛 조선시대 군현이다. 삼국시대 백제 임존성이 있었던 지역이며, 고려는 대흥군을 두었다. 조선 태종 때 현감이 고을 수령인 대흥현이 되었다가 숙종때 대흥군으로 승격되었다. 임존성은 봉수산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 둘레 2,500 m의 대형 산성이며 읍치는 산성 아래 교통로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의좋은 형제’ 일화의 무대로 동헌 앞에는 비석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대흥군 읍치였던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대흥면 소재지에는 옛 대흥군 관아 건물 중 동헌과 책방으로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 관아 아문이 남아 있다. 대흥군수가 공식 업무를 보는 공간인 동헌은 앞면 6칸에 팔작지붕을 건물로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대청마루에도 문짝이 달려 있으며, 오른쪽 끝에는2칸 규모로 누마루를 두고 있다. 건물 형태 등을 볼 때 구한말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내아와 개사가 있던 자리에는 면사무소와 대흥초등학교가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대흥군 관아>

옛 대흥군 읍치였던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에 남아 있는 관아 건물이다. 대흥군수가 근무했던 동헌과 출입문인 아문이 남아 있다.

<아문>

관아 아문은 솟을대문 형태를 하고 있는 작은 규모의 출입문이다.

<대흥군 동헌>

앞면 6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조선후기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에 앞면 1칸 규모의 온돌방을 두고 있다. 고을 수령이 일상적으로 머무는 공간으로 보인다.

<옆에서 본 동헌>

<뒷에서 본 모습>

왼쪽 공간에 앞면 2칸 규모의 온돌방과 누마루를 두고 있다. 고을 수령이 손님을 접견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동헌 왼쪽 끝에 있는 누마루>

조선후기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뒷편 공간으로 연결되는 작은 쪽문>

<책방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

앞면 2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책방 옆 조리시설이 있는 작은 건물>

<동헌 뒷마당과 연결되는 출입문>

아마도 생활공간인 내아를 출입하는 쪽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내아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곳>

대흥면사무소가 자리잡고 있다. (?)

<면사무소 앞에 세워져 있는 ‘의좋은 형제’ 기념 조형물>

대흥동헌,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동헌이란 고을의 수령이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을 말하는데, 생활처소인 내아와 구분되어 보통 그 동편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동헌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수령이 주재하는 관청의 본 건물이다. 대흥동헌은 정면 6칸, 측면2칸, 처마 높이 3.3 m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인데 공포는 전체적으로 초익공의 형태이며 5량집이다. ‘여지도서’에 아사(衙舍)로는 구동헌 9간, 신동헌 16간이라 기록되어 있어 지금의 동헌은 신동헌으로 추측이 되며, 중앙에 정청인 대청이 있고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그리고 전면으로 반칸 넓이의 툇마루가 이어져 있고 북쪽을 2칸 규모의 대청이 있는데 중앙의 대청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고 퇴칸의 천장은 우물반자 형태의 눈썹천장으로 된 특이한 형태의 건축물이다. 대흥현 동헌은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인데 상량문에 영락5년 (1407)에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대흥향교와 함께 조선 태종 때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나, 1703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때에 대흥이 군으로 승격될 당시 중수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의 동헌 건물은 일제 강점 후 대흥현이 예산군에 통합되면서 동헌 건물을 대흥면사무소로 개조하여 해방 후까지 사용하다가 대흥면사무소를 현 위치에 신축하면서 1979년에 해제 복원되었다. (안내문, 예산군청, 2010년)

<출처>

  1. 예산군청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