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지역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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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박물관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사적)에 있는 미륵사지박물관이다. 박물관에서는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미륵사지에서는 당시 사찰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치미를 비롯하여 백제시대의 건축부재와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금동향로(보물)를 비롯하여 다양한 시대에 만들어진 유리, 철, 청동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최근 미륵사지석탑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화려한 사리장엄이 출토되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때 이곳에 있던 연못을 메우고 미륵사를 창건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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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유적 전시관] 사찰로의 변화.
왕궁리유적지는 오층석탑(국보)의 존재로 사찰이 있었던 절터로 알려져 있었다. 이곳이 언제 사찰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무왕이 죽은뒤 그를 기리는 원찰로 성격이 바뀐것으로 보고 있다. 왕궁 중심부에 있던 중요 건물을 설치하고 목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된 전형적인 백제의 1탑 1금당식 사찰이 조성되었다. 통일신라 때 사찰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사찰과 관련된 유 물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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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유적 전시관] 고급물품을 제작하던 공방터
왕궁리 궁성 서북편에는 유리제품, 금제품, 동.청동제품같은 고급 물품을 생산하여 궁궐에 공급하기 위한 공방이 있었다. 발굴.조사결과 남북으로 긴 2동의 공방 관련 건물, 공방 관련 원료, 재료, 도구들을 버리는 폐기지가 확인되었으며, 금.유리제품 및 반제품, 금속.유리제작용 도가니, 슬래그, 송풍관, 원재료, 소토덩어리, 벽체편 등 다양한 종류의 공방 관련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공방터 앞쪽에는 좁은 수로를 통해 화장실 오수가 배출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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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유적 전시관] 백제 무왕이 조성한 궁성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은 백제 무왕이 조성한 왕궁지와 후대의 사찰 유적이 같이 있는 곳으로 경복궁처럼 앞쪽은 정전을 중심으로 의례적인 공간이, 뒷쪽은 업무, 생활공간이 흔적이 남아 있다. 후대에 사찰로 바뀌면서 중심부 궁성 건물은 없어졌지만 앞쪽의 정전 영역과 뒷편에는 크고 작은 건물터들이 확인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백제의 와적기단과 같은 건축양식과 기와같은 건축부재와 백제인이 사용했던 토기 등이 출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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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발굴과 복원
경희궁은 1970년대 서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이후 그 터만 남았던 것을 발굴.조사를 거쳐 전각 일부를 복원하였다. 조선후기 많은 전각들이 있던 넓은 경희궁 권역에는 서울고 이전 이후 원래의 모습을 찾기보다는 도심에 있던 위치적인 장점때문에 많은 공공기관들이 들어설려고 했으며, 그 중 서울시교육청이 경희궁 서쪽 언덕에 이전해 왔으며, 서울역사박물관을 비롯하여 일부 공공기관이 자리잡게 되었다. 1980년대 발굴.조사 이후 경희궁은 정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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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구한말 이후 터만 남은 경희궁지
조선후기 국왕의 임시거처이자 왕실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서궐(西闕)로 불렸던 경희궁은 구한말 고종대 경복궁 중건과 함께 그 역할이 크게 축소되면서 궁궐로서 의미가 크게 퇴색될 수 밖에 없었다. 경복궁 중건과정에서 많은 전각들을 헐어 건축자재로 사용되었으며, 왕실가족이 생활하는 이궁(離宮)의 역할은 법궁이었던 동궐이 맡게 되면서 경희궁은 실질적인 용도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이후 숭정전을 비롯하여 일부 전각만 남아 있는 넓은 공터만 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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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경희궁의 공간 구성
경희궁은 임진왜란 창덕궁이 공식적인 궁궐인 법궁(法宮)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국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이궁(離宮)으로 자리잡으면서 서궐(西闕)로 불렸다. 법궁으로 세워진 경복궁과는 달리 경희궁은 인왕산 자락 아래 경사진 지형에 맞추어 전각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하였다. 정전인 숭전전이 인왕산 자락 아래 서쪽편에 치우쳐 있고, 정문인 흥화문은 종로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세워져 있었다. 궐내각사와 동궁전 흥화문 주변에 있었으며, 그 안쪽으로 국왕과 가족들이 거처하는 편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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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경희궁] 경희궁의 역사적 의의
경희궁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여러 궁궐들을 중건하면서 세워진 궁궐로 1623년(광해군15)에 완공하였다. 조선후기에 소실된 경복궁을 복원하지 않고 창덕궁을 법궁(法宮)으로 삼으면서 이궁(離宮)으로 동궐의 부족한 공간을 해소하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숙종과 경종이 경희궁에서 태어났으며, 숙종.영조.순조 등이 승하하였고, 경종.정조.헌종이 즉위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고종대 경복궁을 중거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전각들을 헐어내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을 교육하기 위한 경성중학교(서울고등학교)가 들어섰으며,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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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남산의 힘] 돌아온 남산
1990년대 이후 남산은 일제강점기와 개발독재시대의 어두운면을 벗고 옛모습을 되찾기 시작한다. 정권을 수호하던 안기부와 수방사는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였으며, 개발독재시대에 세워진 남산의 경관을 막고 있던 외인아파트의 철거는 이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90년대 이후 남산은 점차 원래의 기능이었던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복구되고 있으며, 서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하게 된다. 시민의 품으로: ‘남산 제모습 가꾸기’ 남산은 오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