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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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왕실의 의례 중 가례, 빈례와 군례
조선시대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를 그 형태나 목적, 내용 등에 따라 5가지로 분류하여 오례(五禮)라고 하였다. 오례에는 제사에 해당하는 길례(吉禮), 장례 절차 등과 관련된 흉례(凶禮), 왕실의 결혼 등 경사스러운 일에 관련된 가례(嘉禮), 외국 사신을 맞는 빈례(賓禮), 군사와 관련된 군례(軍禮)가 있다. 그 중 제사는 매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기때문에 일상적인 업무와 가까웠고, 흉례는 국왕이나 왕비의 장례에 해당하기때문에 국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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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왕실의 의례 중 길례, 흉례
오례(五禮)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행했던 중요한 의례를 그 형태나 목적, 내용 등을 5가지 종류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유학에서는 『서경(書經』에서 오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주(註)에 오례는 길(吉).흉(凶).빈(賓).군(軍).가례(嘉禮)라고 하고 있다. 조선사회는 유학을 이념으로한 왕도정치를 추구한 사회로 유학의 법도에 맞게 예(禮)를 행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 여겼으며 이를 통해 국왕과 집권세력의 권위와 정통성을 강화하였다. 오례는 고려시대에 시작되어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실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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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궁중 여성들의 생활
조선시대 국왕은 신하들과 정치를 논하고, 학자들과 경연을 하는 등 대외적인 활동을 통해 국가를 통치했다고 한다면, 국왕 가족을 비롯한 궁궐 내외에 거주하는 왕실가족,종친에 이르기까지 여성들과 관련된 대소사는 왕비를 중심으로 치러졌다고 볼 수 있다. 국왕을 중심으로 한 관료사회와 마찬가지로 궁중에서도 왕비를 중심으로 궁중내 생활하는 후궁, 상궁 등의 내명부와 공주, 옹주, 종친.관료 부인들을 포함하는 외명부에 속한 여성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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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궁중 복식과 장신구
조선시대 궁중복식은 TV드라마 사극을 통해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눈에 익숙한 복식이다. 예전에는 고증이 철저하지 않아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조선시대 궁중복식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궁공복식은 TV를 통해 눈에 익기는 하지만, 실제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실 궁중문화와 관련된 유물들을 가장 많이 소장.전시하고 있는 고궁박물관에서도 궁중복식의 경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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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왕실 가구와 궁중음식(수라상)
고궁박물관은 조선왕실의 역사와 그들이 조선사회에서 차지했던 위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을 소장.전시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이다. 박물관에서는 조선 왕실을 생활상과 문화를 보여주는 각종 물품들은 당대 최고의 장인들인 만든 것들로 조선의 궁중 문화와 예술적인 감각 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사회에서는 왕실도 사치를 배제하고 검소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왕실이 사용했던 가구들에서도 이런 측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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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궁궐의 장식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에 세워진 해태상은 관악산 화기를 다스려서 경복궁 화재를 예방하고자 하는 의도와 국왕의 권의를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를 함께 갖고 있는 장식물이다. 해태상처럼 궁궐에는 국왕의 권위를 드러내고 나쁜 기운을 쫓는 벽사의 의미를 갖는 많은 장식물들을 두고 있다. 광화문을 지나 궁궐의 중심인 정전 출입문 앞에는 바깥세상과 궁궐을 분리하는 의미를 갖는 금천이 흐르고 금천을 건너는 다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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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조선의 궁궐
궁궐은 국왕이 곳이자 국왕과 신하와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통치의 중심이었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천도를 결정하면서 새로운 수도와 궁궐터를 건설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조선이 궁궐을 짓고 수도를 건설하는데에는 유교적 이념에 따라 중국 주나라의 제도를 기록한 『주례』의 「고공기」를 기본으로 하여, 풍수리리사상과 군사,경제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건설되었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은 태조4년(1395)에 종묘.사직과 함께 수도 한양에서 제일먼저 건설되었다. 도시의 설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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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왕실문방구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용하던 문방구들이다. 문방구라 함은 선비들이 거처하던 서재였던 사랑방에 비치된 것을 말하지만 일반적을 필기도구를 문방구라 한다. 그 중 종이.붓.먹.벼루는 글을 쓰는데 꼭 필요한 문방구로 문방사우로 불린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절제된 삶은 강조하면서 사치를 배제하고자 했지만, 글을 쓰는 도구였던 문방구에 대한 욕구는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선비들이 욕심내었던 사치 기호품으로 중국과의 교역에서 중요한 물품이었다. 이런 기호품들은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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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국왕의 교육과 국왕이 짓고 쓴 글
조선시대 국왕은 많은 학문적교양을 수양해야 했고, 이를 위해 어려서부터 제왕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또한 국왕으로 즉위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했으며, 국왕의 하루 일정 중 대부분을 할애해야 했다. 조선시대는 세자의 교육을 서연(書筵)이라고 하며, 전담 관청인 세자시강원에서 주관하였다. 세자시강원 관원들은 정부에서 주요직책을 맡은 관리들이 겸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담관원은 세조때 집현전을 혁파하면서 전담직인 녹관3명과 겸직 2명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