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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특별전, "헝가리왕실의 보물"] 전쟁의 영광, 17~19세기 헝가리 왕실과 귀족의 무기

전시의 4번째 주제는 ‘전쟁의 영광, 17~19세기 헝가리 왕실과 귀족의 무기’이다. 헝가리는 서유럽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이다. 헝가리는 동방 유목민들과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헝가리인들 또한 우랄산맥 부근에서 우크라이나 대평원에서 거쳐 이주해온 민족이다. 9세기경에 현재의 지역에 정착하였으며 10세기에 봉건국가를 형성하고 카톨릭을 국교로 받아들였다. 13세기에는 몽골의 침입으로 국토가 황폐해졌으며, 16세기에는 모하치전투에서 오스만투르크에 패한 이후 서부와 북부는 합스부르크가에, 동부 트란실바니아 지방은 오스만 투르크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16~19세기 헝가리 귀족들이 사용했던 칼과 갑옷

헝가리는 동방에서 서유럽으로 들어오는 관문에 위치하고 있어 동방 유목민들 끊임없는 투쟁 역사를 가지고 있다. 훈족, 몽골, 오스만투르크 등 세계사를 뒤흔들었던 동방 유목민족들이 헝가리를 공략하였다. 이들 유목민들의 영향을 받아 헝가리는 유럽에서는 경기병이 빠른 시기에 받아들여졌으며, 여러 차례의 전쟁과정에서 큰 명성을 떨쳤다. 30년 전쟁에 참전한 트란실바니아공국의 경기병들은 합스부르크왕가와의 전투에 크게 명성을 떨쳤는데, 이 경기병들을 ‘후사르(Huszair)’라 부른다. 헝가리 경기병들이 사용한 초승달모양의 칼인 ‘사브르(Sabre)’는 18세기 이후 유럽 각지에 퍼져 유행했으며, 올림픽 펜싱 종목에도 사브레가 포함되어 있다. 합스부르크의 마리라테레지아(Maria Theresia)는 왕위계승전쟁에서 헝가리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승리하였으며, 헝가리 경기병들로 근위대를 구성하였다. 전시에서는 헝가리 귀족들이 사용했던 칼인 샤브르를 비롯하여 귀족들이 사용했던 마구(馬具)와 사냥용 총기류 등을 전시하고 있다.

16~19세기 헝가리 전쟁사

  • 1526년 모하치(Mohacsi) 전투: 오스만 제국에 패배
  • 1541년 트란실바니아 공국, 오스만 헝가리, 합스부르크헝가리로 3분할
  • 1664년 생고타르(Szehntgolthard)전투: 오스만 제국에 승리
  • 1683년 빈전투: 오스만 제국의 유럽침공 저지
  • 1686년 합스부르크-폴란드 연합군의 부더, 페슈트 탈환
  • 1699년 카르로비츠(Carlowitz)조약: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시작
  • 1703년 라코치페렌츠(Ralcoczi Ferenc)의 독립전쟁
  • 1788년 헝가리 귀족의 독립투쟁
  • 1848년 헝가리 독립 혁명: 합스부르크에 대항한 국민군 조직
  • 1867년 대타협(Ausgleich)체결: 헝가리 자치권 향상

경기병의 칼(18세기 중엽, 위쪽), 도금 장식 검(17세기 중엽, 아래쪽),

헝가리 경기병은  ‘후사르(Huszair)’라 불리며 30년전쟁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전쟁에 명성이 유럽전체에 퍼졌다. 헝가리 경기병이 사용한 초승달모양의 칼인 사브르(Sabre)는 18세기 이후 유럽각지에서 크게 유행했다. 유럽의 기마병들은 전통적으로 무거운 무기로 중무장하여 경기병에 비해 기동성이 떨어졌는데, 몽골의 비롯한 동방의 기병들은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활과 가벼운 칼로 무장했다. 고구려의 고리자루칼 또한 가볍고 휴대하기 편한 기병용 무기이다.

경기병의 칼, 18세기 중엽, 헝가리 경기병의 샤브르로 넓은 곡선으로 된 칼날에는 해.달.별이, 자루 끝에는 헝가리의 수호 성인인 성모 마리아가 장식되어 있다. 칼집은 헝가리 경기병의 모습 등이 새겨진 은판으로 덮었다. 칼집의 맨 윗부분에 도금으로 처리된 팔드바리(Foldvary)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도금 장식 검, 17세기 중엽, 날이 넓은 검으로 자루에는 도금된 은장식에 터키석이 박혀 있다. 검집은 붉은 벨벳 바탕에 허리춤에 끈으로 매기 위한 두 개의 고리가 달려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도검 제작 과정이 장식된 칼(1816년, 왼쪽), 정교하게 장식한 칼(17세기 중엽, 오른쪽),

17~19세기에 만들어진 칼이다. 동양의 칼에 비해 장식성이 뛰어나다.

도검 제작 과정이 장식된 칼, 1816년, 샤브르의 칼날에 1816년 요제프 크라프트(Joseph Kraft)가 베스테르체바너(Beszterocebanya)의 공장에서 헝가리산 철광석으로 제작했다는 명문이 남아 있다. 강철로 제작된 칼집에는 광석을 캐는 인물, 소총, 헝가리 문장, 합스부르크 문장 등 8가지 모티브가장식되어 있다. 정교하게 장식한 칼, 17세기 중엽, 헝가리 특유의 사브르로 16세기 말 ~17세기 초에 활동했던 도검 장인 요한 분데스(Jahann Wundes)의 인장과 “KAMUTHI”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어, 1606년에 죽은 커무티벌라주(Kamuthy Balazs)를 위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헝가리 왕의 모습이 장식된 칼, 1860년 경,

페르시아어와 조지아어 명문이 새겨진 사브르이다. 십자형 칼날의 중앙에는 라코치 죄르지 2세(Rakoczi Gyorgy II), 칼자루에는 이슈트반 1세(Istvan I)와 후녀디 마차시(Junyadi Matyas), 칼집에는 아틸라(Attila)와 러요시 1세(Layos I) 등 헝가리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이 새겨져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황제의 갑옷과 투구.방패, 1630년경,

중무장한 중세 기사들이 사용했던 판금갑옷이다. 중장기병의 역할의 거의 없어진 17세기에 의식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합스부르크의 황제가 사용했던 의식용 갑주와 방패이다. 투구는 12개의 철판을 이어 만든 것으로 뒷면에는 장식 깃털을 꽂기 위한 홈이 있고, 목보호대가 리벳으로 연결되어 있다. 흉갑과 등판에는 넝쿨에 잎과 꽃이 달린 좌우대칭의 문양이 도금되었고, 그 아래에는 8개의 금속판을 접을 수 있게 연결한 넓적다리 가리개가 달려 있다. 방패는 끝이 뾰족한 타원형의 모양이며 검은색 표면에 아칸투스 잎과 넝쿨에 감싸져 있는 꽃이 도금되었다. 방패 중앙에는 12개의 뾰족한 끝이 있는 별모양의 장식단추와 큰 리본 장식 단추가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사슬갑옷,17세기 중엽,

갑옷은 중장기병과 기사가 쇠퇴한 근대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세 기사를 연상시키는 장식용 갑옷이다.

카로이(Karolyi) 가문의 장식용 사슬갑옷으로 은제 또는 은을 힙힌 청동고리를 무수히 엮어 만들었다. 갑옷에는 별, 태양, 달 모양의 장식이 부착되었고, 목걸이 중앙에는 날개를 편 독수리 장식이 매달려 있다. 갑옷의 아랫단은 날카로운 톱니 모양으로 마무리되었고 각 톱날에는 별모양의 장식용 단추가 달려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헬레르 페렌츠 백작의 칼, 1840년

소총과 화포가 보편화되면서 칼이 의장용으로 사용되었던 19세기에 만들어진 칼이다.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놓고 있다.

헝가리 군인들이 근위대 대장인 헬레르 페렌츠에게 선물로 증정한 은장식 사브르이다. 칼날에 근위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손잡이 부분에는 헬레르 가문의 문장 장식이, 은으로 된 칼집에는 기병, 경기병, 용, 아칸투스 잎이 돋을새김으로 장식되어 있다. 헬르 페레츠는 옛 트란실바니아 귀족 가문 출신으로 1860년 기병대 대장에서 은퇴하였고, 대타협(Ausgleich)이 이루어진 1867년 왕의 경호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후사르, 용맹한 헝가리의 경기병
헝가리가 세 개의 나라로 분활되어 있던 시기에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군주베틀렌 가보르(Bethlen Gabor, 1580~1629년)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헝가리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신.구교간 갈등으로 발발한 30년 전쟁에 신교국의 일원으로 참전한 트란실바니아공국은 구교국을 대표하는 합스부르크에 대항한 자유 전쟁의 지도자 역할을 맡아 헝가리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자 하였다. 이 전쟁에서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지략과 용맹으로 무장하여 전공을 드높인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경기병들은 ‘후사르(Huszair)’라는 이름으로 그 명성이 유럽 전체에 널리 퍼졌다. 이 헝가리의 경기병들이 사용한 독트한 모양의 사브르(Sabre)는 18세기 이후 유럽 각지로 퍼져 유행하였고, 헝가리의 구족들 역시 경기병들의 사브르를 본 떠 자신의 장식용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귀족들의 샤브르는 로코코 잎사귀문양, 전리품, 전투장면, 신화속의 인물들이나 서술적인 그림 등의 문양으로 장식되었다. 헝가리 경기병들은 마구를 세심하게 관리하였으며 내구성 향상과 용맹성의 과시를 위해 도금하거나 은박을 입혀 장식하기도 했다. 헝가리 경기병의 명성을 익히 잘 알고 있었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Maria Theresia)은 각국에 흩어져 있던 120명의 헝가리 경기병을 모아 근위대를 구성하여 항상 호위하도록 하였다. 이 근위대는 옛 헝가리 경기병들의 제복과 칼을 모방한 복식을 착용하였는데, 이때 사용한 칼의 은판에는 근위대의 문장을 새기고 칼집은 붉은 벨벳을 감싸 장식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헝가리 경기병, 하인리히 파핀, 1820년경,

헝가리는 우크라이나 평원과 흑해 일대에서 이동해오는 유목민과의 끊임없는 투쟁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몽골을 비롯한 동방 유목민들의 영향을 받아 유럽에서는 경기병이 빠른 시기에 받아들여졌으며, 여러 차례의 전쟁과정에서 큰 명성을 떨쳤다.

빈 출신 석판화가인 하인리히 파핀(Heinrich Papin)이 제작한 헝가리 경기병 대장을 표현한 작품이다. 헝가리 경기병 부대 ‘후사르(Huszar)’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동안 매우 유명해져 다른 유럽국가들도 후사르의 뛰어난 전술을 배웠으며 제복마저 본보기가 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가방, 18세기말,

에스테르하지(Esterhazy) 가문 출신의 귀족이 소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 가죽 가방으로 왕관과 헝가리ㅣ 문장을 돋을새김한 은판이 부착되어 있고, 그 주위로 금사와 진주로 화려하게 수놓은 식물 문양이 배치되었다. 사브르와 함께 착용하는 기병용가방이다. <출처:고궁박물관>

마구, 17세기, 가벼운 무장을 하고 있는 경기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말을 타거나 부릴 때 쓰는 마구로 안장, 굴레와 가슴걸이, 등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은 전쟁이나 사냥할 때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이동 수단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마구 역시 꼼꼼하게 관리했으며 귀한 판금이나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하였다. 안장은 도금된 다양한 문양의 은판과 둥근 터키석으로 장식되었다. 붉은 가죽으로 된 굴레와 가슴장식에는 에메랄드, 루비, 터키석으로 장식된 은판과 도금판이 덮여 있고, 굴레와 가슴걸이가 나뉘는 부분에는 장미문양이 조각되었다. 끈 아래로 드리워진 긴 술 장식은 이 마구의 독특한 특징이다. <출처:고궁박물관>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장으로 장식한 말편자(17세기 초,왼쪽), 트란실바니아식 등자(17세기 전반,오른쪽)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장으로 장식한 말편자, 17세기 초, 말발굽을 보호하기 위하여 발굽바닥에 장착하는 편자이다. 합스부르크의 문장과 다양한 장식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으며 가운데 부분은 개폐가 가능하다. 양쪽 날개 부분에는 용과 싸우는 성 게오르기우스(Saint Georgius)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트란실바니아식 등자, 17세기 전반., 등자는 말을 탈 때 두발로 밟고 디디는 것으로 대개 안장에 달아서 양쪽 옆구리로 늘어뜨린다. 터키풍으로 주조된 이 등자는 고리 부분과 측면에는 도금 처리된 넝쿨 문양 장식이, 바깥쪽 면에는 장미 문양의 리본 프리임 안에 터키석이 박혀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말안장 깔개, 17세기 중엽,

말안장 아래에 늘어뜨리는 천으로 네 모퉁이에 꽃나무가 자수로 장식되었다. 꽃나무의 잎이 달린 큰 줄기에는 카네이션이, 구불구불한 가지의 끝에는 석류가 달려 있다. 이러한 장식은 군주를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출처:고궁박물관>

사냥용 권총, 18세기 후반, 화려하게 장식된 사냥용 권총이다.

상아탄약통, 18세기 중엽,

상아로 만든 탄약통으로 사슴, 양 등의 동물이 장식되었다. 둘로 분리하여 탄약을 보충하고, 양 머리가 있는 입구 쪽을 총에 대어 장전하여 사용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도끼가 달린 총 (토포르, Topor), 17세기 후반,

도끼와 대구경 총이 결합된 무기이다. 슬레지엔(Schlesien)에서 제작된 것으로 도끼날에는 보병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나무 자루에는 동물 뼈와 자개로 사슴을 사냥하는 장면이 상감되어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사냥용 칼과 허리띠, 19세기 전반,

사냥용 칼로 허리띠와 칼집이 함께 남아 있다. 칼 손잡이는 청동에 금도금을 하였고 아칸투스 잎과 개 문양이 장식되었다. 검은 가죽으로 된 칼집에는 포도넝쿨이 새겨진 도금판이 달려 있고 벨트는 금으로 장식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사냥용 총(18세기 후반, 위쪽). 쌍발 사냥용 총(1840년경),루돌프 황태자의 사냥용 총(1870년경, 가운데),

소총이 개발된 후 유럽에서 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발달된 무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기 조선에서는 화승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사냥용 총, 18세기 후반, 도금 장식한 사냥용 총이다. 쌍발 사냥용 총, 1840년경, 총구가 2개인 쌍발총으로 자루는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고 총신은 강철로 제작항렸다. 2연발이 가능하도록 제작된 이 총은 19세기 중반부터 왕실과 귀족들의 사냥용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루돌프 황태자의 사냥용 총, 1870년경, 프란츠 요제프1세(Franz Joseph I)의 외아들인 루돌프 황태자(Rudolf)가 사용했던 사냥용 총이다. 루돌프 황태자는 황제의 적장자로 황휘계승 1순이였으나 보수적이고 엄격한 합스부르크 왕가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결국 1889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들소 사냥용 총, 17세기 후반,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소총으로 당시 헝가리 귀족들의 화려한 취향을 볼 수 있다.

들소를 사냥할 때 쓰는 총으로 8각형 총신과 나무자루가 결합되어 있다. 나무자루에는 동물뼈로 넝쿨, 석류 문양 등이 상감되었으며, 개머리판에는 넝쿨과 과일문양, 사슴과 토끼가 장식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사냥용총, 1670년,

8각형의 총신을 갖춘 사냥용 소총이다. 방아쇠 부분에는 총을 든 2명의 남자와 성의 모습을, 나무 자루에는 동물의 뼈와 자개, 은실 등으로 사냥 장면을 표현했다. 특히 방아쇠울에 남편의 엉덩이를 때리는 여자의 모습이 흥미롭다. <출처:고궁박물관>


곰 사냥용 창, 19세기,

곰 사냥에 쓰이는 나뭇잎 모양의 창으로 니켈로 만들어졌다. 창의 자루에는 사슴뿔로 만들어진 윙(wing)이 부착되었고, 가죽 끈을 서로 교차시켜 감아 손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했다. 창으로만 곰을 사냥하는 것은 왕실과 귀족들의 용맹함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요제프 2세의 어린 시절 연습용 총(18세기 중엽), 아동용 칼(18세기 후반)

요제프 2세의 어린 시절 연습용 총, 18세기 중엽, 요제프2세(Joseph II, 1741~1790)가 어린 시절 연습용으로 사용했던 총이다. 어린 병사를 위한 연습용 총은 1754년에 제식화되었다. 총신은 단순한 장식의 나무자루와 동판으로 결합되었다. 후에 요제프 2세의 교관이었던 버챠니 카로이 요제프 백작(Batthyany Karoly Jozsef)에게 증정되었다. 아동용 칼, 18세기 후반, 은에 도금한 장식이 있는 아동용 사브르이며 죄르(Gyor)지방의 금세공업자가 제작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칼날에는 금색 바탕에 머리가 둘인 왕관을 쓴 독수리가, 칼자루에는 인물이 조각되어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철퇴(17세기 중엽, 왼쪽), 철퇴(17세기 전반, 오른쪽)

철퇴, 17세기 중엽, 귀족들이 사용하던 철퇴로 머리부분에는 9개의 금동판이 결합되었고 그 아래에는 비늘문양이 새겨져 있다. 손잡이의 중간 부분은 검은 염소 가죽으로 감쌌으며, 붉은 실과 은실로 된 2개의 술이 달려 있다. 철퇴, 17세기 전반, 귀족들이 사용하던 철퇴로 머리 부분에는 리본과 데이지꽃으로 된 프레임 안에 큰 터키석이 박혀 있다. 손잡이 부분은 은으로 주조되었고 표면에는 아라베스크 문양과 상어 가죽 문양에 준보석들이 박혀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전쟁의 영광, 17~19세기 헝가리 왕실과 귀족의 무기
국내외의 전란이 잦았던 17~19세기 헝가리의 왕과 귀족들은 전쟁에서 승리를 기원하고, 용맹함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몸에 항상 무기를 장식하고 다녔다. 이러한 무기들은 대부분 진귀한 보석으로 꾸며졌는데, 터키석이 가장 유행했고 왕실이나 부유한 가문에서는 루비, 에머랄드, 다이아몬드로 장식하기도 했다. 휘어진 칼날이 특징인 샤브르(Sabre)는 17~19세기 헝가리의 전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무기였다. 왕실이나 귀족의 아이들 역시 어릴 때부터 장남감 칼이나 어린이용 갑옷을 착용하도록 교육받았다. 1896년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기념행사가진행되었는데, 이때 헝가리 전통 의상과 함께 샤브르가 대규모로 생산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오랜 전쟁의 역사에 걸맞게 갑옷도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가장 일반적인것은 작은 고리를 연결하여 만든 쇠사슬 갑옷이며 철제갑옷과 폴란드에서 유래한 동제 갑옷도 착용하였다. 왕실과 귀족들의 갑옷은 모두 다양한 크기의 단추와 보석, 금박 꽃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헝가리 왕실과 귀족들은 다양한 화약무기도 사용하였는데, 자개와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18세기에는 권총과 사냥용 소총이 가장 유행하였으며, 사냥용 단도와 함께 착용되었다. 19세기에도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사냥의 인기는 계속되어 귀금속과 상아로 장식된 쌍발 소총을 주로 사용하였다. 또한 창 하나로만 곰을 사냥하는 것이 크게 유행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위험한 사냥은 진정한 남자로서의 능력과 귀족의 용맹함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출처: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