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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를] 랑글루아 다리, 고흐 작품 배경이 되었던 개폐식 다리

빈센트 반 고흐가 아를(Arles)에 머무는 동안 남겼던 대표작 ‘아를의 랑그루아 다리’와 ‘아를의 다리와 빨래하는 여인들’의 되는 아를의 랑그루아 다리(Ponte de Langlois)는 도심 남쪽편 평야지대를 가로지르는 운하에 놓여진 목재로 만든 작은 개폐교로 그의 고향 네덜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리이다. 아마도 파리에서의 생활에서 벗어나 아를에서 본 이런 운하와 개폐교가 그에게 향수와 희망을 불러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아를의 다리는 그의 그림과 함께 관광명소 남아 있어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들이게 하고 있다. 실제로 본 아를의 다리는 고흐의 작품에서 보이는 노란색의 이미지는 없고 다리와 운하를 배경으로 한 푸른 프로방스 지방의 하늘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아마도 그의 눈에 비친 느낌을 색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랑글루아 다리(Ponte de Langlois)>

고흐가 프랑스 남부 아를(Arles)에 9주 동안 머무는 동안 그렸던 많은 작품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랑글루아 다리(Ponte de Langlois)’이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지방 곡창지대를 흐르는 론강(River Rhône)과 연결되는 수많은 다리 중 하나로 실제 그림의 무대는 아니지만 그를 기념하기 위해 남겨 놓은 다리이다.

<반대편에서 본 모습>

기차가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등장하기 이전 광할한 평야지대에서 고속도로와 같은 역할을 했던 운하는 유럽 주요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고흐의 출신지인 네덜란드는 유럽국가 중에서도 운하가 가장 발달한 나라이다. 고흐는 밝은 태양을 찾아서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아를(Arles)을 찾아왔지만, 고향풍경과 비슷한 이곳을 배경으로 한 많은 그림들을 남겼다.

<고호의 ‘아를의 랑그루아 다리’>

 고흐는 아를에 있던 다리를 배경으로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이곳에는 ‘아를의 다리와 빨래하는 여인들’을 대표작으로 그림과 실물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흐는 이 작품 이외에 ‘아를의 랑그루아 다리’라는 제목의 그림도 남겨 놓고 있다.

<그림에서처럼 정면에서 본 ‘랑글루아의 다리’와 수로>

<옆에서 본 모습>

운하를 건너는 이 다리는 목재로 만든 개폐교로 배가 운하를 지나갈 때 다리를 들어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운하가 많이 네덜란드에서는 지금도 많이 볼 수 있는 다리 형태이다. 다리는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마차가 지나갈 수 있는 규모이다.

<운하를 통해 배가 지나갈 수 있는 수로>

<배가 운항하고 있는 운하>

지금도 ‘랑글루아의 다리’가 있는 아를 지방의 운하에는 배가 운항을 하고 있다.

<배가 지나갈 수 있는 다리>

아를(Arles) 지방에 있던 많은 개폐식 다리들은 거의 없어지고 다리를 높게 쌓아 배가 항상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를의 다리 아래로 흐르는 운하>

아를은 론강 하구의 넓은 평야 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로 지중해와 운하를 통해서 선박들이 오가고 있다.

<반대쪽 수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을 비롯하여 많은 유럽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프랑스남부 지중해 연안 프로방스 지방의 아를(Arles)은 원형경기장을 비롯하여 고대 로마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유서깊은 도시이지만, 고흐가 많은 작품을 남겼던 도시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고흐는 이곳에 9개월 정도 머물렀다고 하며 200여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대부분 그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 병원의 정원’, ‘아를의 다리와 빨래하는 여인’ 등을 들 수 있다.

<‘랑글루아의 다리’가 있는 곳>

고흐 그림의 배경이 되었던 ‘랑글루아의 다리’는 지금은 고흐의 흔적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어있다. 아를 도심에서 택시로 10여분쯤 들어가면 찾아가 볼 수 있다.

<아를의 랑글루아 다리(Ponte de Langl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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