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계곡에 위치한 오대산 사고(史庫, 사적)이다. 이곳에 오대산 사고가 설치된 것은 임진왜란 직후인 1606년(선조39)이다. 처음에는 상원사가 선정되었으나 이후 월정사 부근에 사고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오대산 사고를 책임지는 관리로 참봉(參奉)을 두었으나 실제로는 월정사 주지가 사고 수호의 책임을 맡고 승병들을 배치하여 사고를 지켰다고 한다. 오대산 사고에는 실록각.선원각.별관 건물과 수호사찰인 영감사(靈鑑寺)가 있었으며, 참봉 2명과 군인60명, 승려 20명이 사고를 관리하고 지켰다. 건물들은 한국전쟁으로 모두 불타버렸으며, 1992년에 사각(史閣)과 선원보각(璿源譜閣)을 복구하였다. 오대산 사고에는 1606년 태조부터 명종까지 실록을 봉안한 이후 ‘선조실록’을 비롯하여 후대 왕들의 실록들과 중요한 문서 등을 보관하였다. 오대산 사고에는 소장되었던 실록들은 조선총독부에서 일본 동경대학 부속 도서관으로 보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었다. 이때 대출되었던 45책만이 화를 면했으며, 일부인 27책은 서울대학교로 이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평창 오대산 사고(사적)>
조선후기 5대 사고 중 한곳이 오대산사고(사적)이다. 월정사에서 4km정도 떨어진 높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물.불.바람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상서로운 곳으로 여져졌다. 처음에는 상원사가 선정되었으며, 풍수지리난 지형여건상 이곳이 양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고를 수호하는 책임은 월정사에 있었으나 실제로는 사고사(史庫寺)라 불렸던 영감사에서 그 책임을 맡았다.
<사각과 선원보각>
앞쪽에 실록을 보관하는 사각(史閣)을, 뒷쪽에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璿源譜閣)을 두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린 것을 1992년에 복원하였다.
<오대산 사고로 들어가는 길>
월정사에서 약 4km 정도 떨어져 있다.
<사고 출입문>
<역대왕의 통치를 기록한 실록을 보관하는 사각(史閣)>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다. 문서가 습기 등으로 훼손되지 않도록 바람이 잘 통하는 2층에 보관한다. 1층은 앞면 4칸, 2층은 앞면 2칸으로 되어 있다. 환기를 고려하여 판벽으로 사방을 막아두고 있으며,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옆에서 본 모습>
<문서를 보관하던 2층 사고 내부>
조선왕조 역사를 기록한 ‘실록(實錄)’은 조선전기에는 서울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전주.성주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에 보관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불타 없어져 버렸으며, 1606년(선조39)에 다시 인쇄하여 춘추관.태백산.묘향산.마니산.오대산에 사고를 짓고 다시 보관하였다. 병자호란 이후 손실된 것을 다시 인쇄하여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보관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실록은 태백산과 정족산에 있던 것이며, 적상산에 있던 것은 한국전쟁 중에 없어졌다고 한다. 오대산 사고에 보관하던 것은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중종대왕실록과 성종대왕실록>
일제강점기 동경대학으로 반출되었던 것이다. 오대산사고본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대출되었던 74책이 남았다. 일제강점기와 2006년에 서울대학교 규장각으로 반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종대왕실록은 조선 11대왕 중종의 재위 기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1506년 10월부터 1544년 12월까지 중종 재위 38년 3개월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정식 이름은 ‘중종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실록’이다. 성종대왕실록은 조선 9대왕 성종의 재위 기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1469년 11월부터 1494년 12월까지 성종 재위 25년2개월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정식 이름은 ‘성종강정대왕실록’이다. <출처:고궁박물관>
<왕과 왕세자의 도장 제작에 관한 의궤(보인소도감의궤), 1876년, 오대산사고본>
사고에는 실록 외에도 의궤를 비롯한 중요한 문서들이 같이 보관되어 있었다.
1876년(고종13) 11월 4일에 경복궁의 큰 화재로 인해 소실된 왕과 왕세자의 보인(도장)을 새로 만들거나 보수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보인소’는 왕이나 관청의 보인을 제작하는 임시기관이다. 새로 제작된 11종의 보인에 대한 제작 과정, 형태 및 세부 규격, 제작에 필요한 물품과 경비, 기간, 인력 등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고궁박물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약 788책이 일본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되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되고 74책만 남았다. 1932년 당시 서울의 경성제국대학으로 27책이 이관되었고 나머지 47책은 동경대에 보관하고 있었다. 2006년 ‘조선왕조실록 환수추진위원회’가 출범하여, 그 해 7월에 나머지 47책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기증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옆쪽에서 본 사각.일제 강점기 도서정리사업
일제는 을사늑약 이후 통감부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던 도서정리사업 또한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다. 먼저 일제는 한일강제병합 직전 통감부를 통해 홍문관, 집옥재, 시강원, 북한산 이궁, 강화 정족산 사고 등이 보유하고 있던 도서들을 규장각으로 모았다. 그리고 원래 있었던 규장각 소장 도서들과 함께 ‘제실도서’로 명명하고 면밀한 도서 정리 작업을 실시하였다. 1911년에는 조선총독부 취조국에서 이를 강제로 인수하고 태백산 사고, 오대산 사고, 적장산 사고 등의 도서들도 점유하였다. 이로써 서울의 규장각과 지방의 사고, 외규장각 등으로 철저하게 관리되던 조선 전통의 왕실도서 관리 체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1912년 취조국의 폐지 이후, 일제는 참사관분실 등에서 도서목록작성, 도서카드 작성, 일부 도서 해제 등의 도서정리사업을 수행하였으며, 이러한 작업을 통해 식민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를 구축하였다. <출처:고궁박물관>
<선원보각>
뒷편엔 조선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건물인 선원보각이 있다. 건물의 규모나 형태난 앞쪽 사각과 비슷하다.
<선원보각 1층>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다.
<선원보각 2층 내부>
<조선왕실 족보(선원계보기략), 1883년(고종20)>
선원보는 왕실의 족보로 매우 중요시 된 문서이다.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에 따라 1966년 먼저 반환된 도서 163종 852점 중의 하나이다. ‘통감부 채수본’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왕실 족보 중의 하나로 1679년(숙종5)부터 1932년까지 약 250여 년 동안 114회나 간행되었다. 그 중 이 도서는 1883년(고종20)에 간행된 것이다. <출처:고궁박물관>
<선원보각 출입문>
<뒤에서 본 오대산 사고>
<영감사(靈鑑寺)>
사고 뒷편에는 이곳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은 영감사(靈鑑寺)가 자리잡고 있다. 645년 자장(慈藏)이 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로 사고 설치 이후에는 사고사(史庫寺)라 불렀다.
오대산 사고(史庫), 사적,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이곳은 조선시대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략(璿源譜略)」을 보관하던 사고(史庫)가 있던 자리이다. 오대산 사고는 1606년(선조39)에 이곳이 물.불.바람의 재화(災禍)를 막을 수 있는 길지(吉地)라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역사서를 보관하기 적절한 곳이라 하여 건립되었다. 사각(史閣)과 선원보각(璿源譜閣) 등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불에 타서 모두 없어졌고,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92년에 남아 있는 자료를 통하여 복원된 것이다. 부근에는 역사서를 지키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사고사(史庫寺)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초기에 춘추관(春秋館).충주.전주.성주에 1부씩 보관되었으나 임진왜란(1592) 때 전주실록만 내장산으로 옮겨져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불타 버렸다. 1606년(선조39) 3부가 다시 제작되어 춘추관.태백산.묘향산에 보관되었고, 전주본은 강화 마니산에, 그리고 교정본은 이곳 오대산 사고에 보관되었다. 그후 병자호란과 이괄의 난(1624년)으로 인하여 춘추관본.마니산본이 물에 타거나 파손되었으므로, 다시 사부의 실록이 작성되어 강화도 정족산.태백산.무주 적장산.오대산에 1부씩 보관되었다. 오대산에 보관되었던 실록은 일제강점기에 동경제국대학으로 옮겨져 1923년 관동대지진 때 거의 불타 버렀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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