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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성박물관 한대화상석(漢代画像石)] 충효를 강조한 고사(古事)를 그린 그림과 사당(祠堂)

산동성박물관 한대 석실고분에서 출토된 화상석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그 중에는 충효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역사적인 사건이나 일화 등을 표현한 그림들도 많이 발굴되어 전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내용으로는 “공자가 노자를 만나는 장면(公子见老子画像)’, 주나라 문물제도를 정비한 주문공이 어린 성왕을 돕는 장면(周公辅成王), 춘추전국시대 관중과 제환공 사이의 일화를 보여주는 ‘소백을 활로 쏘는 관중(管仲射小白)’, 진시황이 순행중 사수에서 주나라 솥을 건지는 장면(泗水捞鼎) 등이 유명하다. 이들 그림들은 여러 고분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보이며 당시 국가적으로 장려했던 충효사상을 잘 보여준다. 또한 한나라 이전의 목조건축 양식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지난시 샤오탕산사당(孝堂山祠堂)도 볼 수 있다, 

<한대 화상석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

산동성박물관 1층 2번째 전시실 중 한대에 조성한 사당과 충효문화와 관련된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수레를 탄 인물(车马人物画像石), 동한,

말과 수레가 있는 행렬을 그렸다. 전형인 거마행렬도이다.

인물그림(人物画像), 동한, 린이시(临沂市) 출토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만나는 유명한 장면을 그린 그림.

공자의 일생을 그린 “공자성적도” 중 ‘문례노담(問禮老聃)’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문례노담은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문물제도를 보고, 또 노자에게 예문의 절차를 물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내용은 한대부터 널리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장면이며, 후대에도 많은 화가들이 그림으로 표현한 유명한 주제이다.

공자가 노자를 만나는 장면(公子见老子画像石), 동한,

주공이 어린 무공을 돕는 장면을 그린 그림.

주공(周公)은 주왕조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중국 주나라의 정치가이다.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른 무왕의 아들 성왕(成王)을 도와 섭정이 되어 주왕조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예약(禮樂)과 법도(法度)를 제정해 주나라 제도와 문물을 세웠다. 왕실과 공신을 배치해 전국을 다스리는 봉건제를 실시했으며, 그는 노나라에 봉건되었다. 왕위를 찬탈한 당태종이나 조선의 태종, 세조 등과 많이 비유되는 인물이다.

주공(周公)이 성왕을 돕는 장면(周公辅成王), 공자가 노자를 만나는 장면(公子见老子画像石)을 그린 화상(Image of Lord Zhou assisting King Cheng, and Confucius meeting Laozi), 동한


공자가 노자를 만나는 장면(公子见老子画像石)과 여희(骊姫) 고사.

여희는 중국 춘추시대 진(晉) 헌공(獻公)의 비(妃)로, 헌공의 총애를 받아 왕비가 된 뒤 태자인 신생(申生)을 모함하여 죽이며 정치의 혼란을 가져왔다.

여희(骊姫) 고사


공자가 노자를 만나는 장면. 동한, 쟈상현(嘉祥县) 출토.

계찰괘검(季札挂剑), 이도살삼사(二桃杀三士)를 그린 그림, 동한, 쟈상현(嘉祥县) 출토.

 계찰괘검(季札挂劍)은 춘추전국시대 오나라 계찰이 사산으로 가는 중 서국(徐國)을 지나는데 그 나라 임금이 계찰의 칼을 보고 갖고 싶어 하므로 돌아가는 길에 주겠다고 마음이었는데, 그나라 임금이 죽어 돌아가는 길에 칼를 무덤 옆 나무에 걸고 갔다는 고사(古事)이다. 신의(信義)를 중시함을 의미한다.  이도살삼사(二桃杀三士)는 두개의 복숭아로 세 장수를 죽였다는 고사(古事)이다. 중국 제나라에 세선비가 있었는데 그들이 교만하여 안자(晏子)가 복숭아로 그들을 분열시켜 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공자 소백을 활로 쏘는 관중(管仲射小白), 동한, 쟈상현(嘉祥县) 출토.

관중이 공자 규(糾)를 모시던 당시 규의 정적인 소백(小白)을 활로 쏘는 장면이다. 가운데 활을 들고 있는 사람이 관중이고 넘어져 있는 사람이 소백이다. 다행이 소백은 살아남았으며, 관중을 용서하였다. 소백은 즉위하여 춘추전국시대를 처음으로 제패한 제환공(濟桓公)이다. 제환공의 넓은 도량을 표현하고 있는 내용이다.


주공(周公)이 성왕을 돕는 장면(周公辅成王)과 솥을 건지는 장면을 그린 화상(周公辅成王, 捞鼎), 동한, 쟈상현(嘉祥县) 출토.

사수노정(泗水捞鼎)은 진시황이 전국을 순행할 때 서주(徐州) 팽성(彭城)에서 사수(泗水)에서 주나라때 만들어진 세발솥(鼎)을 꺼내고자 천여명을 물속에 보냈으나 찾지못했다는 내용이 사기(史記)에 기록되어 있다.


사수에서 주나라 솥을 건지는 장면(泗水捞鼎画像). 동한, 쟈상현(嘉祥县)

사마천의 『사기(史期)』 「진시황본기」에는 주나라 솥을 찾지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한대 화상석에는 솥(鼎)을 건져올리는 장면이 많이 있다

사수에서 솥을 건지는 장면을 그린 그림(泗水捞鼎),

사수노정(泗水捞鼎)은 진시황이 전국을 순행할 때 서주(徐州) 팽성(彭城)에서 사수(泗水)에서 주나라때 만들어진 세발솥(鼎)을 꺼내고자 천여명을 물속에 보냈으나 찾지못했다는 내용이 사기(史記)에 기록되어 있다.


솥을 건지는 장면,공자가 노자를 만나는 장면, 주공이 성왕을 돕는 장면이 있는 화상석, 동한, 쟈상현(嘉祥县)

공자가 노자를 만나는 장면을 그린 화상석, 동한, 지난시

그림은 얕은 부조로 새겨져 있다.

누각과 인물이 그려진 그림(楼阁人物画像石),동한, 텅저우시(滕州市)

쌍궐이 있는 누각에 주인이 손님을 모시고 연회를 하는 장면을 그렸다.

사람을 그린 그림(人物画像), 동한, 쟈상현(嘉祥县)

쌍궐이 있는 누각에서 주인이 손님을 맞는 장면이다.

송산사당(宋山祠堂, Songshan Shrine), 쟈상현(嘉祥县)

송산사당 뒷벽에 그려진 그림


“邪相刘” 글자가 새겨진 돌기둥, 한대,

朱鲔(wei)석실화상석, 동한, 진상현(金乡县, Jīnxiāngxiàn) 출토.

샤오탕산사당(孝堂山祠堂),

샤오탕산사당은 지난시 샤오탕산에 있는 후한시대에 만들어진 사당이다. 샤오탕산에 있는 무덤에 부속된 것으로 북송(北宋)때 조명성의 『금석록』에 수록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벽과 대들보, 기둥, 기와 등을 청석(靑石)을 사용하여 만든 석조사당이다. 건물은 목조건축물의 형식을 하고있는데, 현존하는 한대 이전 목조 건축물이 없기 때문에 그 가치가 매우 높은 유적이다. 내부에는 한대 석실고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화상석들로 장식하고 있다.

사당에 새겨진 글씨

충효문화(忠孝文化)
서한(西漢) 왕조대에는 유학이 제자백가의 모든 학파들을 대신해 국가적인 학문으로 지위가 격상되었으며, 충신과 효자의 정신은 크게 장려되었다. 충신, 열녀, 용감한 전사, 뛰어난 현자나 효자들은 그림 등의 예술적 작품으로 표현되었다. 한나라에서는 정부관리가 뛰어난 효자를 추천하도록 하였다. 그결과 ‘효(孝)’사상은 크게 장려되었으며, 많은 무덤이나 사당에는 그들의 충효사상에 대해서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이런 관점에서 그들은 역대 충신이나 효자, 현자 등과 관련된 고사(古事)들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무덤석실이나 사당을 장식했다. <출처:산동성박물관>

Loyalty and Filial Piety
In the Western Han dynasty, Confucianism gained dominance over all the other schools of thoughts, its ethics of loyal officials and filial sons much promoted. In practice the rules commemorated in visual arts loyal officials, meritorious general, virgin martyrdom girls, and brave warriors, and honored living sages and filial sons. The Han government especially stressed the ethics of “final piety. While the central governments bore the responsibility of recommending outstanding “filial sons” to the court. As a consequence, the “filial piety” ethic was widely adopted and the populace spent lavishly on tombs and shrines to display their virtue. In this line of thinking, they often place on the stones historical figures and stories that embody the final and loyal virtues. <출처:산동성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