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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회포, 포신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화포

선회포(旋回砲)는 선회포는 ‘Y’자 형태의 정철과 결합하여 포신을 상하좌우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화포이다. 15세기 유럽에서 등장했으며, 배 위나 성위에 설치하여 사용했다. 선회포는 가볍고 이동이 쉬우며 성벽 위에서나 돈대에서 사용하기 적절해 조선후기에는 기존 총통들을 대체하였다. 조선후기 주력 화포인 불랑기포도 선회포의 하나이다. 조선은 구한말까지 선회포를 제작하여 사용했다.

<동남아에서 사용한 선회포, 선회포, 동남아시아 15~19세기, 육군박물관>

동남아에서 사용한 선회포, 선회포, 동남아시아 15~19세기, 육군박물관
포이와 정철 덕분에, 상하좌우로 기동할 수 있는 화기이다. 15세기에 유럽에서 등장했으며, 배 위나 성 위에 설치하여 사용했다. 이 청동선회포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태의 선회포는 렌타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동남아시아는 이슬람과 중국의 영향으로 이른 시기부터 화기를 사용했다. 그리고 대항해시대에는 유럽 세력의 등장으로 유럽제 무기도 빠르게 유입되었다. 렌타카는 한 발의 탄환이나, 다랑의 작은 탄환을 쏠 수 있었으며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쓰였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벌집의 이름을 가진 화포, 일와봉총, 조선후기, 중앙박물관>

벌집의 이름을 가진 화포, 일와봉총, 조선후기, 중앙박물관
청동으로 제작한 대형화기이다. 포이가 달려있고 투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랑기포와 같은 선회포로 추정된다. 포신에 ‘일와봉’이라는 이름이 남겨져 있어 일와봉총임을 알 수 있다. <고사신서>에 따르면 정철(단조)로 만들었으며, 길이는 2척3촌 (45.32cm), 구경은 2촌(4.12cm)이며 좌우에 췌철(포이)가 있다고 한다. <정조실록>에는 100발의 탄환을 쏘았다고 하며, <고사신서>에는 연환 하나를 쏘았다고 되어 있다. 본래 중국의 병서인 <무비지>에 수록되어 있던 것으로,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1711년(숙종 37) 1좌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어 18세기에는 조선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철을 두드려 만든 선회포, 선회포, 조선 19세기, 광주박물관>

철을 두드려 만든 선회포, 선회포, 조선 19세기, 광주박물관
철을 단조하여 만든 선회포이다. 전반적인 형태는 포이와 정철이 달려 있어 불랑기포와 유사하다. 해남읍성에서 9점이 출토되었다. 함께 출토된 레밍턴 롤링블럭 소총으로 보아 19세기 말에 사용됭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갑인명포, 쌍포, 을축명포>

갑인년에 제작한 화포, 갑인명포, 조선 1854년, 고궁박물관, 전반적인 형태와 재질, 제작 연도가 쌍포와 같은 화포이다. 본래 쌍포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의 유리 건판 사진에서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두 개의 포신을 결합한 화포, 쌍포, 조선 1854년, 중앙박물관, 고궁박물관. 두 개의 포신을 결합한 화포이다. 포신을 결합하기 위한 결합장치를 포이처럼 활용하여 양륜거(수레)에 실었다. 포신은 넓적한 칼국수 모양의 동판을 두들겨서 만들었는데, 청동이 아니라 순동으로 만든 점이 독특하다. 기존의 화포와 달리 심지가 아니라 화약접시를 이용해 점화한 것으로 보인다 <훈국신조군기도설>에는 쌍포 양륜거라고 불리며 그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을축년에 제작한 화포, 을축명포, 조선 1865, 고궁박물관, 형태와 재질이 갑인명포와 유산한 화포이다. 일제강점기의 유리건판 사진에서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출처>

  1. 안내문, 진주박물관 특별전, 2024년
  2. ‘선회포’, 위키백과,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