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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호계서원(虎溪書院), 퇴계 이황을 모시기 위해 처음 세워진 서원

안동시 임하면 임하댐 아래 공원에 있는 호계서원(虎溪書院)이다. 이곳은 퇴계가 죽은 후 그를 모시기 위해 1573년(선조 6년)에 세워진 서원이다. 퇴계를 모시는 서원으로 잘 알려진 도산서원은 원래 퇴계가 후학을 양성하던 강당으로 호계서원이 세워진 이듬해인 1574년에 사당을 갖춘 서원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퇴계의 위패를 모시다 1620년(광해군12)에 제자인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 2분의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 이후 1626년(숙종2)에 ‘호계(虎溪)’라는 이름과 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안동 호계서원>

영양과 청송에서 흘러내려온 반변천을 막아 조성한 임하댐 아래 공원으로 옮겨졌다. 원래 와룡면 도곡리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최근에 안동지역 유림들의 의견을 모아 호계서원을 원래 위치에서 가까운 안동댐 주변지역으로 옮겨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앞에서 본 모습>

호계서원은 퇴계 이황을 모시는 서원으로는 처음 세워진 곳이지만, 같이 모셔진 류성룡과 김성일 제자들 간에 서열에 관한 시비가 있었다. 이후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 서애 류성룡은 병산서원, 학봉 김성일은 임천서원에 따로 모셔지고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강당만 복원되었다.

<호계서원 담장>

건물은 앞면 5칸 규모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자형으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지붕 양쪽끝이 정면을 보고 있는 ‘ㄷ’자형을 하고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7년뒤 강당건물만 새로 지었다. 원래는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와룡면 도곡리에 있었던 것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임하댐 아래 공원이 있는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향후 관광객이 많고 원래 위치와 가까운 안동댐 아래로 이전할 예정이라 한다.

<호계서원 강당>

<왼쪽에서 본 모습>

<서원 관리인이 사는 살림집>

<옆에서 본 모습>

호계서원은 퇴계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처음으로 세워진 서원으로 인조대(1625년)에 학봉 김성일과 서애 류성룡을 추가 배향하면서 이황의 왼편에 누구를 모시느냐는 논란이 크게 벌어진 것으로 유명하며 이를 ‘병호시비( 屛虎是非)’라 한다. 두사람의 학덕과 업적이 비슷하기 때문에 류성룡의 제자들은 관직의 높낮이로 따져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이, 김성일의 제자들은 연장자를 왼쪽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류성룡을 왼쪽, 김성일을 오른쪽에 배향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고 한다.(반대로 정해졌다고 설명되는 자료도 있어 헷갈리는 면이 있음) 이후 순조대인 1805년 류성룡, 김성일, 정구, 장현관을 문묘에 모시고자 청원하는 과정에서도 서열문제가 제기되어 안건이 폐기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배향된 인물들의 성품들을 볼 때 본인들은 크게 중요시하지 않았던 일이 후대에 감정적으로 대립하게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후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 학봉 김성일은 임천서원, 서애 류성룡은 병산서원에 모셔졌다.

* 재미있는 현상으로 ‘병호시비’를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검색하면 2곳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병호시비」라는 제목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두사람의 이름 중 항상 류성룡의 이름이 앞쪽에 언급되고 있으며 호계서원에 최종적으로 류성룡이 왼쪽에 배향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에 『답사여행길잡이10-경북북부』에서는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과 병호시비」라는 제목에서 부터 김성일을 앞쪽에 언급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김성일이 왼쪽에 배향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퇴계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

원래 퇴계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도산서당에 후학들이  1574년(선조7)에 사당을 건립하였고, 1575년에 국왕으로부터 도산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멀지 않은 낙동강변에 위치한 병산서원>

1614년(광해군6)에 류성룡을 모시는 사당인 존덕사를 세웠으며, 1863년(철종14)에 국왕으로부터 ‘병산서원’이라는 이름을 받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학봉 김성일을 모신 임천서원>

1607년(선조40)에 세워졌으며 1618년(광해군10)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안동 호계서원(虎溪書院),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이 건물은 조선 선조 8년(1575)에 백련사 절터에다 건립하여 그 이름을 여강서원(麗江書院)이라 하였다. 이 곳은 퇴계 이황의 위패를 봉안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선조 38년(1605)에 대홍수 유실되어 다시 지었으며, 숙종 2년(1676)에 호계로 이름을 바꾸고 사액을 받았다.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강당만 새로 지었다. 강당은 정면 6칸이 대청이고 양쪽에 각 2칸의 온돌방이 있다. 우측에는 주사가 있다. 1973년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이곳으로 옮겼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5년)

<참조>

  1. 안내문, 안동시청, 2015년
  2.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년
  3. 문화재청,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