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 남쪽 기슭에 있는 봉정사(鳳停寺)이다. 신라 문무왕 때(682년) 능인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안동과 화회마을이 있는 풍산 그리고 영주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 불교를 이끌었던 화엄십찰이나 구산선문에 포함되지는 않지 안동 지역을 대표하는 큰 사찰로 손꼽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극락전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건축 양식을 고루 갖추고 있다. 각 건물들은 안동지역 한옥과 정자의 건축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7곳의 사찰 중 하나이다.
봉정사는 주불전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요사채인 무량해회와 공덕당을, 서쪽에는 극락전을 두고 있다. 마당에는 작은 요사채인 고금당과 강당인 화엄강당이 있고 앞쪽에 신도들이 잠깐 쉴 수 있는 누각인 만세루가 있다. 동쪽편 언덕에는 영산암이, 서쪽 언덕에는 지조암이 있다.
들어가는 길
봉정사는 안동에서 영주를 거쳐 죽령으로 연결되는 교통로(5번국도)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안동지역 교통요지였던 고려시대 사찰 제비원도 부근에 있다. 들어가는 길은 영주 부석사나 예산 수덕사처럼 언덕을 따라 이어진 숲속길이다. 봉정사를 올라가는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호젓한 산길을 걸어 올라 간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산사는 한반도 남쪽 지방에 위치한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등 7개 산지승원을 일컫는 것이다. 7세기에서 9세기에 창건된 이들 7개 사찰은 신앙과 수행,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한 한국 불교의 역사적인 발전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한국 선불교이 특징인 자급자족이 가능한 사찰 관리, 승려 교육, 수행과 교리 학습뿐만 아니라 한국 불교의 무형적, 역사적 측면도 확인할 수 있다. 경내에는 한국의 다양한 불교신앙이 수용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다수의 구조물과 전각, 유물, 문서 등은 한국 불교의 포용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산사는 조선시대 억압과 전란으로 많은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오늘날 신성한 자소로서, 신앙과 일상적인 종교적 실천이 살아 있다. (안내문, 안동 봉정사, 2023년)봉정사
봉정사는 672년(문무왕 12) 능인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능인대사가 터를 정하기 위해 종이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지금의 자리에 머물렀다고 하며, 사찰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극락전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건축 양식을 고루 갖춘 전통 사찰이다. (안내문, 안동 봉정사, 2023년)
만세루는 대웅전 마당을 출입하는 2층 누각 형태의 문루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가운데 출입문이 있는 2층문루의 격식을 잘 갖추고 있다. 내부는 상당히 넓은 편이며 사찰을 찾은 신도들이 경치를 감상하면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공간이다.
대웅전 영역 (중심영역)
봉정사 중심영역은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쪽에 요사채인 무량해회와 공덕당이, 서쪽에는 화엄강당이, 앞쪽에는 신도들을 위한 공간인 만세루가 자리잡고 있다. 건물이 웅장하지 않고 공간도 넓은 편이 아니지만 질서 정연한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주불전인 대웅전(국보)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다. 건물 앞에는 축대를 높이 쌓고 그 뒷면에는 좁은 마루를 깔고 난간을 세웠으며 내부도 마루를 깔았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다포계 공포이며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다포계 공포의 구성이나 건물의 형태 등에서 조선초기 이전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화엄강당(보물)은 승려들이 공부하는 강당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을 사용한 이 건물은 극락전과 비슷한 건축 양식을 하고 있다.
승려들이 생활하는 요사채는 대웅전 마당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로는 앞쪽에 무량해회와 뒷편 공덕당이 있다. 건물들은 일반적인 사찰 요사채와는 약간 다르게 안동지역의 사대부 저택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하고 있다. 팔작지붕의 사랑채와 툇마루, 안채같은 분위기는 이 지역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안동 봉정사
봉정사는 672년 능인대사가 창건한 신라고찰이다. 본당 영역은 우리나라 최고의 건물이자 고려시대의 간결하면서도 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극락전과 조선시대 최고인 대웅전, 고금당과 화엄강당, 무량해회, 스님들이 기거하는 공덕당, 만세루, 종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정사는 질서 정연한 건물배치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산사이다. (안내문, 안동 봉정사, 2023년)
극락전이 있는 공간
대웅전 서쪽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국보)이 있다. 마당에는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 극락전과 비슷한 건축양식을 하고 있는 작은 요사채인 고금당(보물), 화엄강당(보물)이 양쪽에 자리잡고 있다. 앞쪽에는 우화루와 종각이 있었는데 우화루는 다른곳으로 옮겨졌다. 뒷편 언덕에 삼성각이 있다.
극락전(국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대장전이었는데 후에 극락전으로 바뀌었다. 공포는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통일신라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내부에는 가운데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다포계양식으로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바닥은 마루인데 원래 전돌이 깔려 있었다.
삼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 각면의 모서리와 가운데 기둥모양을, 탑신 1층 몸돌에는 문모양을 새겨놓고 있다. 형식적이고 정형화된 고려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고금당(보물)은 극락전 앞 동향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원래는 불상을 모시는 불전이었으나 지금은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작은 건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불상을 모시는 불전으로 격식을 갖추어 꼼꼼하게 지은 것으로 보인다.
영산암(靈山庵)
영산암은 봉정사 경내에서 동쪽 약 100m 떨어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나한전을 중심으로 삼성각, 염화실, 송암당 우화루, 관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와 소나무를 중심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안마당 정원이 유명하다. 앞쪽이 개방된 형태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1969년 고금당과 화엄강당을 해체, 수리하면서 앞쪽에 있던 우화루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봉정사에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이다. 봉정사에 남이 있는 ‘대웅전관음개금현판’과 중수원문에 따르면 1199년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러개의 나무를 접합한 접목조기법(接木造技法)을 만들어졌다. 이국적 풍모, 높게 땋아 올린 보계(상투), 보발의 표현, 조각기법이나 균형미 등 중국 남송 불상 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 12~13세기 불교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불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봉정사(鳳停寺)
천등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능인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어느날 능인이 도력으로 종이로 만든 봉황을 날렸는데, 이 종이 봉황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황이 앉은 자리’라 해서 봉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1363년(고려 공민왕 12) 극락전을 중수한 이후, 1625년(인조 3), 1809년(순조 9), 1863년(철종 14), 1972년 등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특히 1972년 극락전 해체 보수 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극락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확인되었다. 봉정사는 안동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사찰로 국보 제15호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국보 제311호인 대웅전, 화엄강당(보물), 고금당(보물) 등의 건물들이 잇는데, 고려시대의 건물과 조선시대의 목조건물들이 나란히 있어 우리나라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외에도 삼층석탑, 만세루,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 등이 있다. 1,300년 이상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켜온 종합 승원으로서 2018년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봉정사를 포함한 7개 사찰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유네스크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안내문, 안동 봉정사, 2023년)
<출처>
- 안내문, 안동 봉정사, 2023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4년
- ‘봉정사’, 위키백과,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