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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임천서원, 학봉 김성일을 모신 서원

경북 안동시 송현동에 있는 임천서원(臨川書院)이다. 조선중기 문신 학봉 김성일을 모신 서원이다. 류성룡을 모신 하회마을 병산서원과 비슷한 위상을 가진 서원으로 1607년 임하면 천전마을 부근에 처음 세워졌다. 이후 여러차례 장소를 옮기고 구한말 훼철되었다고 복구하여 외관상 쇠락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구한말 순종 때(1908)에 이곳으로 옮기면서 다시 지어진 것이다. 건물은 강당인 홍교당, 동재와 서재, 사당인 숭정사, 전사청 등이 남아 있다.

<안동 임천서원>
<임천서원 공간배치>

강당인 흥교당(興敎堂)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강당인 홍교당>
<서재>
<동재>
<뒤에서 본 모습>

학봉 김성일(1538∼1593)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초유사로 의병활동을 지원하는 등 큰 역할을 했으며, 진주성에서 항전하던 중 병사했다. 광해군 때 (1618) 임천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사당>
<서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낙동강>
<마을에서 보이는 임천서원>

호계서원은 퇴계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처음으로 세워진 서원으로 인조대(1625년)에 학봉 김성일과 서애 류성룡을 추가 배향하면서 이황의 왼편에 누구를 모시느냐는 논란이 크게 벌어진 것으로 유명하며 이를 ‘병호시비( 屛虎是非)’라 한다. 두사람의 학덕과 업적이 비슷하기 때문에 류성룡의 제자들은 관직의 높낮이로 따져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이, 김성일의 제자들은 연장자를 왼쪽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류성룡을 왼쪽, 김성일을 오른쪽에 배향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고 한다.(반대로 정해졌다고 설명되는 자료도 있어 헷갈리는 면이 있음)

<안동 호계서원>

안동 임천서원
서원은 조선 시대에 세워진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에 대한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임천서원은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학봉 김성일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며,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낸다. 김성일은 퇴계 이황의 수제자로 퇴계 학맥의 중추 역할을 하였다. 선조 23년(1590)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온 후 일본이 침입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고 보고하여 임진왜란 초에 파직되었으나 곧 사면되어 다시 경상도 초유사에 임명되었다. 경상도 지역에서 의병을 모으고 군량미 확보에 힘썼으며, 곽재우 등 의병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진주대첩 승리의 기반을 만들었다. 선조 26년(1593) 진주성에서 항전하던 중에 병사했다. 선조 40년(1607) 임하면 서쪽 옛 서당에 사당을 세우고 김성일의 위패를 모셨으며, 광해군 10년(1618) 임천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헌종 13년(1847)에는 석문정사 서편 엄곡촌으로 옮겼다가, 고종 5년(1868) 서원 철폐령으로 헐려서 치워졌고, 이후 순종 2년(1908) 지금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경내에는 정문,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강당인 홍교당, 내삼문, 사당인 숭정사, 전사청 등이 있다. (안내문, 안동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23년
  2. ‘임천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4년
  3. ‘임천서원’, 위키백과,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