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옥연정사(玉淵精舍)’이다. 서애 유성룡이 만년이 <징비록>을 집필한 유서깊은 장소로 1586년에 지어졌다. 원래 있던 하회마을 원지정사가 마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편안하게 독서를 하면서 즐길 여유를 찾지 못하여 마을 건너편 부용대 아래 외진 곳에 터를 옥연정사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곳의 강물의 깨끗하고 맑은 물빛이 옥과 같아서 정사의 이름도 ‘옥연’이라 하였다고 한다.
옥연정사는 류성룡이 독서를 즐기며 후진을 양성할 목적으로 세운 서당 건물이다.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마을의 저택들과는 ‘-‘자형으로 된 정자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은 독서를 할 수 있는 사랑채 형식의 사랑채와 별당채, 부엌이 있는 살림집인 안채와 대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의 규모가 다른 정자나 서당들에 비해 큰 편인데, 가족들이 같이 머물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안채는 ‘-‘자형 건물로 가운데에 부엌을,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서당을 찾은 손님을 접대하고 출입을 쉽게하기 위해 건물 양쪽에 출입문과 툇마루를 두고 있다. 또한 식구들도 낙동강과 하회마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낙동강 방향으로 툇마루와 출입문을 내어 놓고 있다.
별당채는 앞면 3칸으로 온돌방 2칸, 작은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집주인이 머물면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다. 유성룡이 이곳에서 <징비록>(국보)를 집필했다고 전해온다.
사랑채는 후진양성을 하기 위해 지은 서당건물이다. 앞면 4칸 규모로 가운데 2칸은 넓은 대청마루이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주로 옥연정사를 찾는 손님이나 후학들이 머물면서 공부를 하는 공간이다.
안동 하회마을 옥연정사
옥연정사는 유성룡이 만년에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었다. 관지기에서 물러난 유성룡이 임진왜란 당시의 경험을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을 쓴 장소이기도 하다. 유성룡은 조용히 거처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하회마을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갈 수 있는 부용대 기슭에 터를 잡아 1576년에 집을 지으려고 하였지만 가난하여 공사를 하지 못하다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승려 탄홍의 도움으로 1586년 마침내 옥연정사를 완성하였다. ‘옥연’이라는 이름은 부용대와 하회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깨끗하고 맑은 물빛이 마치 옥과 같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옥연정사는 대문채, 안채, 사랑채, 별당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부엌이 가운데에 있고 양옆에 온돌방을 둔 독특한 구조이다. 별당채는 유성룡이 <징비록>을 집필안 서재이고, 맨 안쪽의 사랑채는 서당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안내문, 안동시청, 2023년)
<출처>
- 안내문, 안동시청, 2023년
- ‘안동 하회마을 옥연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