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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충효당 (보물)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 있는 ‘하회 충효당(河回 忠孝堂, 보물)’이다. 조선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서애 류성룡 후손들이 지은 종택이다. 손자인 류원지가 사랑채와 안채를 짓고, 증손자인 류의하가 17세기에 크게 중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사랑채 대청마루에 걸려 있는 ‘충효당’이라 적힌 현판은 이름난 서예가 허목이 쓴 것이라 한다. 17~18세기에 지은 건물 원형이 남아 있어 당시 권문세가 대저택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마당 앞에는 1999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1세가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구상나무를 볼 수 있다.

<안동 화회마을 충효당 (보물)>
<대문 앞에 심어진 구상나무>

충효당은 낙동강이 보이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안채는 북쪽에, 사랑채는 남쪽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앞쪽에는 일반 한옥에서는 보기 힘든 12칸의 긴 행랑채를 두고 있다. 안채는 ‘ㅁ’자형 건물배치를 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자형 사랑채를 달아 내었다. 사랑채가 있는 영역과 안채는 담장으로 분리하고 있으며, 별도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 내부에는 출입문을 통해 안채와 사랑채를 드나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남녀구별이라는 유교의식에 충실한 면도 있지만, 이 집을 방문하는 손님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솟을대문>
<대문 사이로 보이는 사랑채>

행랑채는 앞면 12칸의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유성룡의 8세손인 유상조가 병조판서에 임명되면서 부하 군사들이 묵을 수 있도록 지었다고 한다. 평소 손님이 묵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에서 나누어 사용하고 있다.

<행랑채>
<사랑채 마당 행랑채>
<외양간>

사랑채는 안채 남쪽으로 달아내어 놓은 ‘-‘자형 건물이다. 앞면 6칸의 큰 건물로 가운데 2칸은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오른쪽에는 안채와 연결된 온돌방으로, 왼쪽에는 누마루나 정자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마루와 방이 있다.

<사랑채>
<남쪽에서 본 모습>

대청마루는 앞면 2칸 규로로 문중회의가 열렸던 종택인 양진당에 비해 약간 좁은 편이다. 주로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청마루에 걸린 현판은 조선후기 유학자이자 명필로 유명한 미수 허목이 쓴 글씨라고 한다. 많은 유명 인사들이 이집에서 묵었음을 알 수 있다.

<대청마루>
<천장>

오른쪽 2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데, 안채와는 내부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주인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인다.

<오른쪽 온돌방>
<난간이 있는 툇마루>

왼쪽 2칸은 옆면을 나누어 1칸은 방으로, 1칸은 마루로 사용하고 있다. 손님을 접대하거나 중요한 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방으로 보인다.

<왼쪽 2칸>
<옆에서 본 모습>

사랑채는 낙동강이 보이는 남쪽 방향으로 뚫려 있으며 마당에는 작은 정원을 조성해 놓았다. 사랑채 뒷편에는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과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영모각이 있다.

<사랑채 마당>
<사당>
<영모각>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담장을 두어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가족들은 마당 출입문과 건물내부의 통로도 함께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담장>

안채는 ‘ㅁ’자형으로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안채는 대청, 안방, 건넌방, 부엌 등 많은 생활공간들이 있다. 중문이 있는 행랑채는 아래쪽에는 부엌이나 출입문, 작은 행랑방을 두고, 위쪽에 크고 작은 다락방을 두고 있어 2층건물처럼 보인다. 안채는 지금도 생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어 일반인이 접근하기는 어렵다.

<담장 바깥에서 보이는 안채>
<안채를 출입하는 대문>
<작은 중문이 있는 안채 옆면>
<안마당>
<안채 앞면>
<안채 마당 행랑채>
<남쪽에서 본 안채>

안동 하회 충효당, 보물
충효당은 조선 중기 때 재상이자 학자였던 유성룡 가문의 종택으로, 손자 유원지가 유성룡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유림과 제자들의 뜻을 모아 지었다고 한다. 유성룡은 벼슬을 마치고 귀향한 후에 풍산현에 있는 작은 초가집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쪽을 앞면으로 하여 긴 행랑채를 두고, 안쪽으로 ㅁ자 모양의 안채와 -자형의 사랑채가 연이어 있다. 12칸의 긴 행랭채는 유성룡의 8세손인 유상조가 병조판서에 임명된 뒤 부하 군사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충효당이란 이름은 유성룡이 평소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고 강조한 데서 유래하였다. 현판의 글씨는 이름난 서예가 허목이 썼다. (안내문, 안동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23년
  2. ‘보물 안동 하회 충효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