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남산신성비’이다. 591년(진평왕13) 신라 왕경인과 지방민을 동원하여 경주 남산에 신성을 쌓고 건립한 비석이다. 비문에는 성을 서약 부분으로 시작하여 성을 쌓은 것과 관련된 사람들과 공사한 거리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는 국가정책 등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글자를 새겨놓은 비석을 많이 활용했는데, 그 내용은 법의 시행, 국왕의 순시, 댐과 성 등 토목사업의 과정과 책임소재 등을 기록하고 있다. 신라영역 전체에 걸쳐 고루 분포되고 있어 국가운영의 중요한 수단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현재까지 10개가 발견되었는데 경주박물관에는 그 중 9개가 전시되어 있다. 그 중 제1, 제2, 제3, 제9비가 비석으로 완전형태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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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비는 1934년에 발견된 것으로 화강암의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비문에는 9행 169자가 새겨져 있다. 지금 함안 일대의 아량阿良촌의 지방민이 남산 신성 축성에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신라의 지방통치 체제를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적갈색을 띤 화강암 재질로 높이 91.0cm이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글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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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비는 2개로 갈라진 상태로 남아 있다. 경주 남산 서쪽 일성왕릉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전체 길이 121.0cm 정도이다. 비문은 총11행, 약 183자가 새겨져 있다. 제1비와 마찬가지로 완성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성벽을 쌓는 작업이 촌(村)단위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글자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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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비는 경주 배반동 사천왕사 절터 부근 민가에서 발견되었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으며, 상하로 두 동강 나 있다. 전체 길이 80.5cm 정도이다. 비문은 6행 120자 정도이다. 제3비는 왕경 왕경 6부민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지방의 촌(村)을 기준을 작성된 다른 비석과 약간 다른 점을 보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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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비는 경주 남산 서쪽 일성왕릉 부근에서 제2비와 함께 발견되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51.0cm 정도이다. 비문은 총 10행에 약 55자 정도이다. 상단부가 파손되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드나 다른 비석과 비슷한 내용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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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비는 경주시 사정동 영묘사지 부근 옛 집터에서 발견되었다. 비문의 글자수는 약 41자 정도이다. 이 비석도 상단부 일부만 남아 있어 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다른 비석과 비슷한 내용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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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비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고물상에게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경주 탑동 민가에서 사용하고 있던 작은 돌이었다고 한다.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다른 비석과 비슷한 내용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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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비는 남산신성 해목령 아래 성벽 안쪽에서 발견되었다. 1985년 이전에는 남산신성에서 발견된 최초의 비석으로 여겨졌다. 앞부분에 ‘신해년’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어 남산신성비의 일부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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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비는 1987년 남산신성을 답사하던 중 북분지 부근 등산로에서 발견되었다. 2 글자만 있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으나 남산신성 성내에서 발견되어 남산신성비로 간주되고 있다. 길이 22.5cm의 작은 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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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비는 1994년 남산신성 서쪽 성벽 안쪽 통로에서 주민에 의해 발견되었다. 비석의 거의 완형으로 남아 있으며 글자가 새겨진 부분이 성안을 보고 있어, 원래 건립된 위치에 그대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글자가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어려우나 전체 글자가 모두 남아 있다. 비문의 구성은 제1, 제2비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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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신성비는 591년(진평왕13) 신라 왕경인과 지방민을 동원하여 경주 남산에 신성을 쌓고 건립한 비석이다. 현재까지 10개가 발견되었으며, 비문에는 “신해辛亥 2월21일에 남산신성을 쌓을 때 법에 따라 쌓은지 3년 안에 무너지면 죄로 다스릴 것을 널리 알려 서약하게 한다.”라는 서약 부분으로 시작하여 성을 쌓은 것과 관련된 사람들과 공사한 거리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제1비는 1934년에 발견된 것으로 화강암의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비문에는 9행 169자가 새겨져 있다. 지금 함안 일대의 아량阿良촌의 지방민이 남산 신성 축성에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신라의 지방통치 체제를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 ‘경주 남산신성비’, 한국고대금석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