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경주 명활성비’이다. 경주 동쪽을 방어하던 명활성을 축성하면서 세운 비석으로 1988년 인근 포도밭에서 발견되었다. 비석은 높이 69.8cm 정도이며, 땅에 묻혀 있어 보존상태가 좋다. 비석에는 총 148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첫머리에 ‘신미년’이란 글자가 있어 남산신성비로 여겨졌지만 그 구성과 내용이 다르고 내용 등으로 볼 때 명활성을 쌓으면서 세운 비석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주 월지 출토 명활성비’이다. 이 비는 월지 내 석축으로 사용된 것이 조사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명활성을 쌓으면서 세웠던 비석이 월지를 조성하면서 석축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길이는 30.0cm 정도로 일부만 남아 있다. 내용은 ‘명활성비’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명활성(明活城, 사적)은 경주 동쪽 명활산에 있는 둘레 약 6 km의 신라 산성이다. 남산성, 선도산성, 북형산성과 함께 경주를 방어하는 외곽의 주요 산성 중 하나이다. 성을 쌓은 내력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삼국사기>에 405년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처음 쌓았음을 알 수 있다. 7세기 선덕여왕 때 비담이 이곳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다.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 ‘경주 명활성비’, 한국고대금석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 2024년
- ‘경주 월지 출토 명활성비’, 한국고대금석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