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임신서기석’(보물)이다. 1934년 경주시 현곡면 석장서 절터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돌의 길이는 34.0cm 정도이고 앞면에 74자를 새겼다. 글자가 또렷히 남아 있어 판독에 이견이 없다. 당시 젊은 학생들이 다양한 고전을 읽으면서 공부를 했다는 내용도 있다. 6~7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비석은 신라 화랑을 미화하는 측면에서 상당히 강조되었다. 진흥왕순수비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비석이라 할 수 있다.

서체는 해서체이며 예서의 느낌도 있다. 순수한 한문식 문장이 아니고 우리말 순서로 되어 있다.

임신서기석, 경주 석장동, 신라 6~7세기
임신년 6월 16일 두사람이 함께 맹세하여 기록한다. 하늘 앞에 맹하여,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성스런 도를 지키고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맹세를 잃으면 하늘로부터 큰 죄를 얻을 것을 맹세한다. 만약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지면 가히 행하는 것을 용납함을 맹세한다. 또한 따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였다. 시(詩), 상서(尙書), 예기(禮記), 춘추전(春秋傳)을 차례로 3년 동안 습득하기로 맹세하였다.
비석의 첫 머리에 ‘임신(壬申)’이라는 간지와 충성을 서약하는 글귀가 보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1934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 터 부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임신년이라는 간지가 어느 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비문 내용 중에는 신라 국학의 주요한 교과목이 등장하는 점이나 화랑도의 근본정신을 강조한 점 등을 들어 화랑도가 융성하였던 시기의 임신년인 552년 또는 612년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신라 융성기에 청소년들의 강렬한 유교도덕 실천사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출처>
-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 ‘임신서기석’, 한국고대금석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 2024년
- ‘보물 임신서기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