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석조반가사유상’이다. 높이 125cm의 석조불상으로 커다란 화감암 하나로 조각하였다. 6~7세기에 유행했던 반가사유상을 표현한 불상으로 경주 송화산에 있던 것을 옮겨 왔다고 한다. 머리와 두팔이 파손되어 전체 모습을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부분의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우수한 편이다.
반가사유상, 경주 송화산, 신라, 높이 125cm
한쪽 다리를 내리고 다른 다리를 무릎 위에 올린 반가 자세와 한쪽 손을 뺨에 대고 생각에 잠긴 사유 자세를 결합한 반가사유상 형식은 인도에서 창안되었습니다. 인도에서는 특정 존상에 한정하지 않고 싯다르타 태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보살과 마왕을 표현할 때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5~6세기에 활발히 제작되었으며, 한국에 이르러서는 미륵보살 신앙과의 관련 속에서 크게 유행했습니다. 비대칭의 미학과 생각에 잠긴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의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에서 6~7세기에 꽃피우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일본에도 전해져 7~8세기에 일본에서 많은 반가사유상이 제작되었습니다. 이 불상은 커다른 돌 하나로 조각한 반가사유상입니다. 머리와 두 팔은 파손되었지만 남아 있는 부분의 높이로 보아 건장한 성인 남자의 신체에 가깝습니다. 의자에 앉아 오른발을 왼 무릎 위에 올리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윗몸에 목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하체에 걸친 치맛자락은 서로 겹치어 주름지고 끝자락에서 물결을 이룹니다. 발가락과 발톱까지 정성 들여 표현한 왼발은 연꽃을 딛고 있습니다. 조각하기 까다로운 화강암에 신라 장인의 불심으로 생명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없어진 머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요. 이처럼 훌륭한 작품을 조각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잠시 이 반가사유상처럼 안자 사유에 잠겨 보시기 바랍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출처>
-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