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양동면 용당리 감은사지에서 출토된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엄장구'(보물)이다. 1956년 서삼층석탑을 해체.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사리엄장구는 청동으로 만든 사리함(외함)과 사리를 넣었던 사리기로 구성되어 있다. 사리함은 옆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으며, 짐승얼굴모양의 고리가 사천왕상 옆에 달려 있다. 청동으로 만든 사리기는 기단과 몸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탑에서 출토된 사리구(보물)와는 달리 닫집형태를 만드는 기둥과 지붕이 남아 있지 않다. 사리함을 장식하고 있는 사천왕상은 경주 사천왕사에서 출토된 사천왕상과 비슷하며 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근거로 사천왕사를 건축하는데 큰 역할을 서역출신 양지스님이 감은사지 사리엄장구를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면에 사천왕상이 새겨 있는데 사실적이고 생동감있는 표현이 특징으로 당시의 빼어난 조각수법을 보여준다. 사천왕사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한 서역인 양지스님이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리구 외함 바깥에는 4면에 사천왕상을 새겨 놓고 있다. 그 중 탑을 들고 있는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이다. 돋을새김으로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있는 사실적인 표현과 조각수법 등이 상당히 우수하며 서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양쪽에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는 문고리가 있다.
불국사, 황룡사와 함께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가장 큰 사찰 중 하나였던 사천왕사에서 출토된 녹유사천왕상을 만든 조각가 양지스님이 이 사리함을 조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사천왕상의 표현 기법이 중앙아시아의 것과 비슷한 형태라고 한다.,
내함은 닫집형태을 목조건축물을 모방하고 있다. 동탑에서 출토된 사리기와는 달리 지붕과 모서리에 있는 기둥, 기단 모서리를 장식하고 있는 사자상 등 훼손된 부분이 많은 편이다.
전각 모양 사리기의 윗부분 네 모서리에는 동발, 요고, 북, 횡적(피리), 비파를 연주하는 천인상이 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에서는 동탑과 서탑에서 사리갖춤이 따로 출토되었는데, 동탑에서 출토된 사리갖춤은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사리(舍利)는 부처나 성자의 유골을 의미하며, 사리를 숭배하는 신앙은 불교가 처음 생긴 이래로 성행했다. 석가모니가의 사리를 8등분하여 인도 각지에 탑을 세운 것이 불탑의 시초이며, 아소카왕이 이를 세분하여 84,000개의 탑을 인도 각지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불교가 동아시아로 전래되면서 불상이 신앙의 중심이 되기 이전에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탑이 신앙의 중심 대상이었으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까지는 탑을 중심으로 사찰의 가람을 배치하였다. 삼국시대 이래로 전국적으로 세워졌던 많은 탑에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사리갖춤과 각종 공양물들이 탑 내부에 많이 모셔졌으며, 이들 사리구들은 오늘날까지 석탑을 해체.보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사리장엄구, 통일신라 682년, 경주 감은사터 서삼층석탑
감은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682년경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다. 감은사 터에는 같은 모양의 동서 삼층석탑이 있는데, 각 석탑에서 발견한 사리장엄구도 모양이 비슷하다. 1959년 서삼층석탑을 해체 수리하면서 3층 탑 몸돌 윗면에서 발견한 사리기는 수정 사리병, 사리 내함, 사리 외함 3중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정 사리병은 사리 내함인 전각 모양 사리기 중앙에 놓이며, 복발 모양 뚜껑을 덮었다. 전각 모양사리기는 다시 상자 모양의 사리 외함 안에 넣는다. 전각 모양 사리기의 네 모서리에는 동발, 요고, 북, 횡적, 비파를 연주하는 천인상이 있다. 사리 외함의 4면에는 사천왕상을 부조로 만들어 붙였는데, 사천왕상의 섬세하게 표현한 조각 기법과 따로 만들어 붙인 다양한 장식 등은 신라의 뛰어난 금속공예기술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24년)
<출처>
- 안내문, 경주박물관, 2011년/2024년
- ‘보물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