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보물)이다. 통일신라 승려 행적을 기르는 탑비로 고려 광종 때 (954년) 경북 봉화군 태자사에 세워졌다. 김생(金生, 711~791년?)의 행서를 집자해서 새긴 것으로 유명하다. 비문은 최치원의 사촌동생인 최인연이 지었고 글씨는 낭공대사의 제자인 승려 단목이 김생이 행서를 집자한 것이다. 오늘날 김생의 글씨는 전하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낭공대사 비석은 어느 작품보다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정식 명칭은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白月栖雲塔碑)’이다.
행적(行寂, 832~916)은 통일신라 후기 선종 굴산산문의 승려이다. 시호는 낭공대사(朗空大師), 이며 탑호는 ‘백월서운(白月栖雲)’이다. 통일신라 효공왕과 신덕왕 때 국사(國師)를 지냈다. 봉화 태자사에서 머물다 입적했다.
고려초 9세기에 세워진 비석으로 통일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비석 앞면에는 낭공대사의 일생과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의 서성(書聖)’, ‘신라의 왕휘지’로 추앙받던 통일신라 시대 명필 김생이 쓴 글씨를 집자하였다. 오늘날 김생의 글씨는 전하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낭공대사 비석은 어느 작품보다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글씨에 힘이 있고 기운이 넘친다.
뒷면에는 승려 순백이 쓴 후기가 새겨져 있다.
태자사 낭공대사 비석, 고려 954년, 행서 김생 글씨 집자, 보물
이 비는 신라 말의 선승인 낭공대사 행적(832~916)을 기리고자 고려 광종 5년(954)에 세워졌다. 앞면에는 낭공대사의 생애와 그 찬시가, 뒷면에는 본 비의 건립과정이 각각 새겨져 있다. 비문은 최치원의 사촌동생인 최인연이 지었고 글씨는 낭공대사의 제자인 승려 단목이 김생이 행서를 집자한 것이다. 김생은 신라 최고의 명필이자 우리나라 신품사현의 하나로 높이 평가 받는데, 특히 ‘신라의 왕희지’로 불릴 정도로 중국의 서성 왕희지의 글씨에 뛰어났다. 오늘날 김생의 글씨는 전하는 것이 거의 없기 떄문에, 신라 말 서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태자사는 경북 안동에 위치했던 사찰로, 오늘날 터가 전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5년/2024년
- ‘보물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4년
- ‘행적 (行寂)’,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