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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서화관]불교 회화

불교 교리를 표현한 불교회화는 우리나라 회화(繪畵) 중 오래된 분야이다. 불교회화는 불상처럼 불전에 걸어놓고 예배를 올리기 위해 부처와 보살을 그린 불화(佛畵) 또는 탱화(幀畵)을 말하지만 넓게는 불전의 안밖 벽면을 장식하는 다양한 그림이나 경전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 등을 포함한다. 불화는 부처와 보살을 그린 그림, 수행자의 모습을 그린 나한도(羅漢圖),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그린 신중도(神衆圖)도 다양한 대상을 그렸다.

<극락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 아미타극락회도, 축연, 조선 19~20세기, 비단에 색>

극락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 아미타극락회도, 축연, 조선 19~20세기, 비단에 색
모란꽃을 든 아미타불과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무리를 그린 아미타극락회도이다. 꽃을 든 부처의 모습은 연꽃을 들어 가르침을 전했다는 석가모니불에서 주로 나타나는 도상으로, 꽃을 든 아미타불은 독특한 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미타불 주변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비롯한 여섯 명의 보살, 열명의 제자와 사천왕, 천자, 동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불단 뒤쪽에 아미타불을 에워싸고 있는 제자들과 사천왕의 얼굴에 뚜렷한 그림자를 표현한 것은 시대적 경향을 보여준다. 아미타불이 앉아있는 불단에 연꽃과 모란꽃이 꽂힌 청화백자, 향로, 책갑 등의 기물이 놓여 있다. 가로로 길게 확장된 불단과 그 위에 기물을 그려 넣는 표현은 근대기 불화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근대기 대표 화승 고산 축연의 개성있는 도상과 강한 음영이 반영된 그림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불교회화는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부터 존재했으며 그 성격상 서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석탑, 고분 벽화 등으로 유추해 볼 때 우리나라 회화 수준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 호류사 벽화를 그린 ‘담징’, 황룡사 금당의 늙은 소나무를 그린 ‘솔거’ 등 그 이름을 떨친 화가들이 역사기록에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도 불화는 많이 그려졌으며 아미타삼존도(국보)를 비롯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수준높은 고려시대 불화들이 아직까지 여러 점 남아 있으며, 대부분 전국 사찰이나 민간에서 소장하고 있다. 중앙박물관에서는 우리나라 회화의 한 분야로 불교회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대표적인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중앙박물관에서는 전국 사찰에서 소장하고 있는 어려운 대형 괘불들을 테마전 형태로 전시하고 있다. 이들 그림들은 일반인들이 감상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중앙박물관 서화관 불교회화>
<지옥을 다스리는 지장보살 밑그림, 지장보살도 초본, 보현, 20세기, 종이에 먹>

지옥을 다스리는 지장보살 밑그림, 지장보살도 초본, 보현, 20세기, 종이에 먹
<지장보살도>를 제작하려고 그린 밑그림이다. 목탄으로 전체 구성을 그린 후 먹선으로 세부를 그리고, 색을 참조할 수 있도록 각 부분에 한글로 ‘양녹’, ‘옥석’, ‘삼청’, ‘진홍’, ‘장단’을 적거나 한문으로 ‘백’, ‘황’ 등을 적었다. 지장보살 주변을 가득 메운 광선과 구름사이로 흐릿하게 목탄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며, 보살의 신광 여백에는 입과 턱수염을 연습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초본과 화면 크기, 도상이 같은 화승 보경 보련이 출초하고 수사 한제민이 수를 놓은 <지장암 자수지장보살도>(1917)가 있다. 근대기에 제작된 자수 불화의 밑그림이 화승에 의해 조성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 관음보살도, 도순, 조선 1854년, 종이에 색>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 관음보살도, 도순, 조선 1854년, 종이에 색
바다 속에서 솟아오른 암반 위에 관음보살이 편안히 앉아 있다. 초록색 둥근 두광과 신광 주변에서 상서로운 구름이 뻗어 나오고 있다. 관음보살은 하얀 옷을 머리 끝부터 드리운 백의 관음이다. 보살 뒤쪽 바위에 정병과 대나무가 그려졌고, 화면 앞에는 관음보살에 예배하는 용왕과 선재동자가 배치되었다. 화면 아래쪽 기록으로 1854년 화승 도준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도순은 고창 선운사, 순천 선암사, 순천 송광사, 구례 화엄사 등 전라남북도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이 그림은 도순이 처음 수화승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 관음보살도,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 관음보살도,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파도치는 물결 위로 솟아오른 암반 위에 관음보살이 편안히 앉아 있다. 보살 뒤로 초록색 두광과 금빛 찬란한 신광이 듸워져 있다. 관음보살이 앉아 있는 암반 양 뒤쪽에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과 대나무가 그려져 있고,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화면 왼쪽 물결 위로 용왕이 나타나 관음보살에게 예배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선재동자가 공손히 두손을 모으고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선지식을 찾아디니던 선재동자의 기나긴 구도의 여정 중 한 장면을 담았다. 자신을 찾아온 선재동자를 그윽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고려의 수월관음도와 달리 조선시대 관음보살을 주로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 밑그림, 관음보살도, 조선 19세기말, 종이에 먹>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 밑그림, 관음보살도, 조선 19세기말, 종이에 먹
바다 한가운데에서 솟아오른 암반 위에 관음보살이 편안히 앉아 있다. 관음보살의 배경에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이 있는데, 이는 화면의 중심과 주제를 강조하는 구획 역할도 한다. 관음보살의 신광 주변은 위쪽과 아래쪽 2단으로 나뉜다. 아래쪽에는 파도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용왕과 선재동자가 예배하고 있으며, 위쪽에는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아미타삼존과 보살상이 있다. 이 밑그림에서 관음보살의 배경이 하늘과 바다 2단으로 나뉘는 구도, 구름을 탄 화불과 보살.천인 등 권속의 표현, 머리 끝까지 덮은 백의 표현 등 19세기 관음보살도의 특징이 보인다. 또 관음보살의 몸 전체를 두르는 거대한 원형 신광는 <광화 현등사 관음보살도>, <서울 보문사 관음보살도> 등 19~20세기 서울.경기 지역 관음보살도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예념미타도량참법'(보물)은 경전을 읽으면서 죄를 참회하는 불교 의식인 미타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을 적은 의식집이다. 복판에 글을 새겨 종이에 찍은 것으로 권1~권5를 1책으로, 권6~권10까지를 1책으로 묶었다. 책끝에는 판각과 간행에 참여한 사람들의 직책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왕실 주관으로 출간되어 목판 인쇄물로서는 당시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503년에 해인사에서 다신 간행되었으며 현재 해인사 대장경판(국보)에 포함되어 있다.

<예넘미타도량참법, 조선 1474년, 종이에 목판 인쇄, 보물>

책 끝에는 1474년에 김수온이 쓴 글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판각에 참여한 당시의 유명한 승려와 왕실 종친, 간행에 참여한 사람들의 직책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예넘미타도량참법, 조선 1474년, 종이에 목판 인쇄, 보물>

예념미타도량참법, 조선 1474년, 종이에 목판 인쇄, 보물
염불하며 참회하는 의식인 미타참법(彌陀懺法)의 방법과 절차를 적은 의식집이다. 이 의식은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고 시방삼세의 부처를 청하여 죄업을 참회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경전은 마지막의 발문을 통해 세조비 정희대왕대비가 1474년 성종비 공혜왕후 한씨가 죽은 후 그의 명복을 빌고, 돌아가신 여러 선왕과 선왕비를 기리기 위해 지충추부사 성임에게 명하여 간행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주자 명단에는 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를 비롯한 왕실 여성들과 종친, 고승의 명단이 기록되어 국가적으로 큰 사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조선 1636년, 종이에 목판 인쇄, 이건희 기증>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조선 1636년, 종이에 목판 인쇄, 이건희 기증
물과 땅을 떠도는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펼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 의식인 수륙재의 절차를 정리한 책이다. 수륙재관련 의식집은 그 종류가 8종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주로 약칭을 사용하는데,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는 줄여서 ‘중례문’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수륙재의 유래와 이를 베푸는 이유를 쓴 <설회인유편>에서부터, 모든 절차를 끝내고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내용이 <보신회향편>까지 총 54편의 글이 실려 있다. 또한 수륙재를 개최할 때의 모든 단계의 절차와 게송, 찬문을 순서대로 소개하고 있다. 여러 수륙재 의식집 중에서도 내용이 지세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수륙재 의식의 기본 서적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전라도 및 경상도의 개별 사찰들을 중심으로 수륙재가 크게 성행하면서 다양한 판본이 간행되어, 현재 36종에 이르는 판본이 전해진다. 이 책은 숭정 9년(1636) 전라도 남원 지리산 감로사에서 간행한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불교의식과 불화
불전은 부처의 세계를 재현한 공간이자 불교의식을 행하는 장소다. 따라서 불전 안을 장엄하는 불화는 예배의 대상으로서 뿐 아니라 불교의식의 주체로서 의식의 거행을 위해 봉안된다. 조선시대의 불교의식은 전각 안에 삼단을 설치하여 각 단에 예배하고 공양을 올리는 절차로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불화도 어느 단에 봉안하였는가에 따라 상단, 중단, 하단불화로 명명하면서, 각 단에 맞은 불화를 조성.봉안하였다. 상단은 불단으로 영산회상도 또는 아미타불도, 비로자나불도 등을 봉앙하였으며, 중단은 의식의 실질적인 주존을 위한 단으로 삼장보살도와 지장보살도, 신중도 등을 봉안하였다. 맨 아래 하단은 영혼의 천도를 위한 영단으로, 수륙재용 불화인 감로도를 봉안하였다. 야외의식에서는 괘불과 함께 팔금강도와 사보살도, 사직사자도 등을 번의 형태로 걸어 도량을 장엄하고 보호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불화에 봉안한 복장물, 복장물, 조선 1829년, 비단, 종이 등>
<불화에 봉안한 복장물, 복장물, 조선 1829년, 비단, 종이 등>
<불화에 봉안한 복장물, 복장물, 조선 1829년, 비단, 종이 등>

불화에 봉안한 복장물, 복장물, 조선 1829년, 비단, 종이 등
불화를 그린 후 종교적 의미와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해 납입하는 복장물이다. 이 복장물은 1829년 신겸 등 10명의 화승이 조성한 <중흥사 시왕도.사자도>에 봉안한 것이다. 종이로 납작한 방형 후령통을 만들고 안에는 종이를 말아 색칠한 오보병을 일렬로 넣었다. 오보병 내부에서는 광물, 보석, 씨앗, 곡식, 약재, 향료 등이 발견되었다. 복장물을 넣는 의미와 목록, 의식 절차를 자세히 다른 경전인 <조상경>에 나오는 법식을 충실히 지킨 예로 주목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불화 밑그림, 불화초본, 20세기, 종이에 먹>

불화 밑그림, 불화초본, 20세기, 종이에 먹
화폭에 먹으로 권속의 모습을 빼곡하게 그린 불화 밑그림이다. 완성된 형태이 불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형태의 연습을 위해서 혹은 제자에게 본보기로 그려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화면에 그려진 인불들은 동자상, 옥졸, 천, 판관 등 명부 관련 그림에 등장하는 이들로, 시왕도나 지장보살도, 감로도, 신중도 등을 그리기 위한 습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근대 불화승의 일상적인 작업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산신과 호랑이, 산신도, 약효, 조선, 면에 채색>

산신과 호랑이, 산신도, 약효, 조선, 면에 채색
깊은 산과 골짜기를 배경으로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을 그렸다. 큰 눈과 음영으로 처리된 주름은 산을 호령하는 위엄있는 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매서운 눈빛의 산신과 대조적으로 호랑이는 민화풍의 해학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산을 다스리는 명물보다는 익살스러운 애완동물처럼 보인다. 이 그림은 한국 근대 불화계를 대표하는 화승 금호 약효가 단독으로 그린 산신도다. 약효는 그림을 그리는 승려가 후한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불화에 입문했고, 18세기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 유성의 초본을 모방하여 수천장에서 수만장을 연습했다고 한다. 그 결과 화승이 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여러 화승을 거느리고 불사를 주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으며 불화를 그려 벌어들인 재화를 마곡사에 시주하기도 했다. 약효가 조성한 불화는 100여 점이 넘게 남아 있으며, 현대까지 그의 화맥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인물 밑그림, 인물도 초본, 약효, 19세기 말 ~ 20세기 초, 종이에 먹>

인물 밑그림, 인물도 초본, 약효, 19세기 말 ~ 20세기 초, 종이에 먹
두 인물의 모습을 그린 밑그림이다. 화면 오른쪽 위에 ‘약효가 초를 내다’라고 적혀 있어 화승 금호 약효가 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 인물의 윤곽과 옷 주름 부분에는 희미하게 목탄으로 밑그림을 그린 흔적이 남아 있으나, 그 외에는 대부분 목탄 밑그림 없이 가는 붓으로 한번에 그려냈다. 인물의 얼굴은 매우 가는 선으로 능숙하게 표현했고, 거친 붓으로 옷주름을 자유롭게 그렸다. 불화 초본을 제작할 때 바탕천을 위에 덮고 베껴 그릴 수 있도록 선을 또렷하게 표현하는데 비해, 이 작품의 필력은 좀더 자유롭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극락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 아미타삼존도, 한규, 조선 1888년, 비단에 색>

극락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 아미타삼존도, 한규, 조선 1888년, 비단에 색
극락정토에서 가르침을 전하는 아미타불, 협시인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표현한 삼존도이다. 부처와 보살 사이에는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작게 그려져 있다. 아미타불은 과거에 법장이라는 보살이었는데, 무수한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 아미타불의 이름만 불러도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아미타정토신앙은 사람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아 성행하였고, 이 내용을 담은 불화 또한 많이 제작되었다. 이 삼존도는 1888년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 한규가 그렸다. 본존아미타불 뿐만 아니라 보살들도 연꽃대좌 위에 앉은 모습인데, 이는 조선 19세기경 화면이 가로로 길어지면서 나타난 특징이다. 화면 위쪽은 오색구름으로 가득 메워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십육나한, 십육나한도, 긍법, 계웅, 조선 19세기 후반, 종이에 색>

십육나한, 십육나한도, 긍법, 계웅, 조선 19세기 후반, 종이에 색
나한은 부처가 열반에 든 뒤 미륵불이 나타날 때가지 이 세상에 머물며 불법을 수호하도록 위임받은 제자들이다. 궁극의 깨달음을 얻은 존재로, 가사를 입은 수행승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나한도에는 나무와 암석, 폭포로 이루어진 산수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다섯 나한과 그를 따르는 무리를 그렸다. 상단에 제2, 4, 6, 8, 10존자의 이름이 확인되어, 여러 점으로 구성된 십육나한도 중 한 폭임을 알 수 있다. 이 나한도는 19세기 후반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 활동한 보암 긍법과 계웅이 그렸다. 긍법이 대표 화승으로 불사를 주도하여 조성한 남양주 불삼사 <십육나한도>에서도 유사한 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화승 축연이 그린 쌍월당 대선사 초상, 축연, 조선 19~20세기, 비단에 색, 이홍근 기증>

화승 축연이 그린 쌍월당 대선사 초상, 축연, 조선 19~20세기, 비단에 색, 이홍근 기증
20세기 초 ‘불화의 명인’으로 불릴 만큼 명성이 높았던 화승 축연이 그린 쌍월당 성활의 진영이다. 화면 왼쪽에 드리워진 붉은 족자에 선사를 기리는 찬문이 적혀 있다. 혜산은 축연이 1910년경까지 썼던 당호이다. 일반 문인화가처럼 개인의 이름을 명확하게 그림 안에 남기는 모습은 전통적인 불화 제작 관습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현상이다. 변화하는 근대의 흐름 속에서 창작 주체로서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만으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승려 장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승려 진영 밑그림, 김은호, 20세기>

승려 진영 밑그림, 김은호, 20세기
앉아 있는 승려의 모습을 그린 밑그림이다. 조선시대 승려들의 초상화인 진영에 나타나는 것과 같이 비스슴하게 오른쪽을 보는 자세를 취했다. 승려는 가사와 장삼을 입고 모자를 썼으며 오른손에는 석장, 왼손에 염주를 들었다. 먹선은 가늘고 간결하다. 염주를 쥔 왼손과 어깨의 옷자락, 그림 위쪽 빈 공간 등에 부분부분 스케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그림은 근대의 전통 화가 김은호의 밑그림으로 추정된다. 김은호의 인물화는 사진에 기반한 사실적인 얼굴표현과 세밀한 북종화의 필선이 특징적이다. 이 그림은 전통적인 조선시대 승려 진영의 표현 방식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특유의 세밀한 인물 표현을 더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묘법연화경’ 권제2의 내용을 그린 그림, ‘묘법연화경’ 변상도, 고려 1385년, 백색종이에 금니>
<그림 부분>
<글이 있는 부분>

<묘법연화경> 권제2의 내용을 그린 그림, <묘법연화경> 변상도, 고려 1385년, 백색종이에 금니
부처가 왕사성 밖 영취한에서 한 설법을 기록한 <묘법연화경> 권 제2의 내용을 그린 그림이다.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많은 보살과 청중이 모여든 장면을 그렸다. 설법하는 부처 앞에는 승려 여러 명이 꿇어앉아 두 손을 모으고 부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있다. 부처가 있는 단 주위에는 이 책에 실린 부처의 가르침이 여러 장면으로 묘사되었다. 화면 왼쪽 위에는 불이 난 집에서 어린이들이 노느라 피하지 않자, 대문 밖에서 장난감으로 유인하여 탈출시키는 장면이 있다. 부처의 가르침 중에 듣는 사람게게 꼭 맞는 것이 있으며 그 가르침에 이끌려 간다는 비유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관세음보살보문품’ 내용을 그린 그림, ‘관세음보살보문품’ 변상도, 중국 명, 1432년, 감색 종이에 금니>
<가운데>
<오른쪽>
<왼쪽>

<관세음보살보문품> 내용을 그린 그림, <관세음보살보문품>변상도, 중국 명, 1432년, 감색 종이에 금니
부처가 왕사성 밖 영취산에서 한 설법을 기록한 <묘법연화경> 중 마지막 부분인 <관세음보살보문품>을 그린 그림이다.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많은 보살과 청중이 모여든 장면을 묘사했다. 한 손을 들고 설법하는 부처 앞에는 보살의 모습을 한 인물이 꿇어앉아 두 손을 모으고 부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있다. 이 경전은 1432년 중국 명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로 보아 우리나라에도 15세기경 부처 앞에 혼자 꿇어 앉아 설법을 든는 보살의 모습이 전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불교회화
불교회화는 불교의 교리와 가르침을 표현한 그림이다. 좁은 의미로는 법당에 걸어놓고 예배하기 위한 부처와 보살 그림을 일컫지만, 경전의 내용을 설명적으로 나타낸 그림과 법당의 내외부를 장식하는 그림도 넓은 의미에서 불화라고 할 수 있다. 부처와 보살, 나한 또는 여러 신을 그린 그림은 예배용 불화에 해당한다. 그들은 혼자 표현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많은 인물이 함께 나타난다.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여러 보살과 인물을 표 현한 영산회상도, 수행자의 모습을 그린 나한도,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신을 묘사한 신중도 등이 있다. 그 밖에 부처의 전생 이야기나 일대기를 그린 불화, 경전의 내용을 묘사한 사경변상도는 어려운 불교 교리를 그림으로 나타내 쉽게 전달해 준다. 또한 법당을 엄숙하고 위엄있는 예배 공간으로 만드는 용이나 연꽃 등의 장식 그림도 오늘날 불화로 감상하기에 손색이 없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삼보를 나타내는 위패, 삼보패, 조선 18세기, 나무에 채색>

삼보를 나타내는 위패, 삼보패, 조선 18세기, 나무에 채색
삼보패는 부처나 보살의 이름 또는 발원 내용을 적어 불단에 봉안하는 불교의식구이다. 불교에서 숭배하는 대상인 삼보, 즉 불보.법보.승보의 존명을 적어 모시는 위패이다. 사각형이 대좌 위에 연꽃과 연잎이 솟아올라 펼쳐지고 그 위에; 광배형의 위패가 우뚝 섰다. ‘시방삼보자존’이라 적힌 구획을 따라 꽃과 구슬장식을 늘어뜨린 듯 입체적을 조각하였다. 뒷면에는 암산으로 둘러싸인 전각과 봉황, 용, 호랑이 등을 조각하여 정토를 표현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5년/2023년/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