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에 있는 ‘부여 부소산성 서복사지’이다. 부소산성 중턱 경사면에 부지를 조성하고 사찰을 세웠다. 높이 10여미터의 급경사로 이루어진 계단을 통하여 절로 진입하는 산지구릉상의 가람입지를 하고 있다. 규묘는 비교적 작은 편이며 목탑자리에서 금동제 과판(銙板)이 출토되어 백제왕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말기에 건축되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절이름이 남아 있지 않아 지형을 반영한 부소산 서복사지라 불린다.
부소산성 서문 밖 서남측 방향에 해발고도 47m 정도의 경사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남북 52m, 동서 35m 규모로 평탄한 대지를 조성하고 그곳에 중문.목탑.금당을 배치하였다.
절터 북쪽에 위치한 금당지는 이중의 석조기단을 조성하였으며, 기단 각 사면에 각각 1개씩의 계단지가 있다. 금당지의 규모는 동서 15.9m, 남북 12m이다.
금당지,
사지 중심에서 북쪽에 위치한 금당지는 이중의 석조기단을 조성하였으며, 기단 각 사면에 각각 1개씩의 계단지가 있다. 금당지의 규모는 동서 15.9m, 남북 12m이다. (안내문, 부여군, 2024년)
목탑지는 전체적으로 잘 남아 있다. 기단 남북면에 각각 1개의 계단을 두었던 흔적이 있다. 사각형 형태로 규모는 약 7.95m, 8.05m이다.
목탑지
금당지 남쪽에 위치한 목탑지는 동남쪽 모퉁이가 지형상 일부 유실된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잘 남아 있다. 기단 남북면에 각각 1개의 계단을 두었던 흔적이 있다. 탑지는 사각형 형태로 규모는 약 7.95m, 8.05m이다. (안내문, 부여군, 2024년)
중문지는 목탑지 남쪽 언덕의 경사면에 조성하였다. 경사지 일부에 터를 넓히고 기단을 조성하였다.
중문지
중문지는 목탑지 남쪽 언덕의 경사면에 조성하였다. 문지로서의 면적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경사지 일부에 터를 넓히고 기단을 조성하였다. 중문지는 기본적으로 전면과 측면을 높인 담장형의 석축대를 구축하였다. (안내문, 부여군, 2024년)
금당의 좌우에 있는 남북방향의 동서회랑과 중문에 연결되는 남회랑이 있다.
회랑지
화랑지는 금당의 좌우에 있는 남북방향의 동서회랑과 중문에 연결되는 남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남회랑지의 길이는 6.5m ~ 6.7m정도 된다. 서회랑지는 평평한 기와를 5~7단 중첩하여 기단을 조성하였다. (안내문, 부여군, 2024년)
서복사지에서는 치미, 금동판, 소조불두, 금동제 과판, 청동제 등개, 벽화편 등이 출토되어 백제왕실의 원찰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여 부소산성 서복사지
부여 부소산성 서복사지는 목탑지 기단 심초석에서 금동제과판이 출토됨에 따라 왕실의 기원사찰로 여겨지는 백제시대 사찰터이다. 이 절터는 중문지, 탑지, 금당지가 남북일직선상에 배치한 방식으로 주위에는 금당지의 좌우에 있는 동서회랑과 중문지에 연결되는 남회랑이 구회된 형태이다. 이곳에서는 소조불상, 연화문 수막새, 벽화편 등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부여군, 2024년)
<출처>
- 안내문, 부여군, 2024년
- 안내문, 정림사지박물관, 2012년
- ‘부여 부소산성 서복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