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부여 나성'(사적)이다. 백제의 수도 사비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중요한 외곽 방어시설이다. 당나라 장안성이나 조선의 한양 도성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둘레 8km 정도의 도성(都城)이다.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하기 위해 538년을 전후하여 쌓았다. 전체적인 구조는 부소산성 동문에서 시작하여 청산성에서 남쪽 석목리 필사봉을 거쳐 금강변까지 이어진다. 동쪽과 북쪽으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고, 남쪽과 서쪽은 백마강이 자연적인 방어벽을 이루고 있다.
동시대 백제 성곽과 마찬가리로 흙으로 쌓았는데, 남쪽 금강변 염창리 부근에 일부만 남아 있었다. 최근에 능산리 백제 왕릉원(사적) 부근을 중심으로 성벽을 재현해 놓고 있다.
부여 왕릉원이 있는 능산리 남쪽 필서봉에서 능산리 절터 뒷편 언덕까지 약 1.5km정도 성벽을 복원해 놓고 있다.
성벽은 흙을 다져서 쌓은 토성인데 바깥쪽에 석축이 일부 있는 형태로 복원해 놓고 있다. 안쪽벽은 완만하며 성위에는 말이 달릴만한 길이 있다.
‘부여 청산성'(사적)은 부산산성에서 동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성으로 부여 나성의 일부이다. 사비에서 웅진으로 연결되는 북동쪽 교통로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나성과 부소산성의 방어능력을 보완하기 위한 곳이다.
부여나성
부여 나성의 백제의 수도 사비를 보호하고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부소산성의 북문 동쪽 지점에서 시작하여 청산성을 거쳐 남쪽으로 석목리 필서봉을 지나 염창리 금강변까지 이어지며, 현재까지 확인된 길이는 약 6.6km이다. 평형한 땅과 산등성이에 흙을 높이 다지거나 다듬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성벽을 만들었다. 나성은 사비도성 천도를 전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성 안에는 왕궁을 비롯해 관아. 민가.상가.절 및 수도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 시설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를 5개 지역으로 나누는 오부제도가 실시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나성과 관련된 옛 지표층에서 백제 사비기까지의 유물만 출토되어 백제 멸망 이후로는 나성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에는 남아 있는 나성의 형태가 반달과 같다 하여 반월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부여 나성은 일제강점기에 역사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1938년 고적으로 지정되었고, 해방 후 1963년에는 사적 제58호로 고시되었다. 그리고 2015년 국제 연합 교육 과학 문화 기구에 ‘백제 역사 유적 지구’로 등재되었다. (안내문, 부여군, 2024년)
<출처>
- 안내문, 부여군, 2024년
- ‘사적 부여 나성’,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4년